[책]<인생은 짧고 고양이는 귀엽지>인생의 모든 일에 대해 고양이처럼.
"왜 지붕에 살까?"
숙대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길 중에 슬레이트 지붕의 골목길이 있다. 단순한 풍경의 일부였던 이 곳이 숨겨진 보석 같은 곳으로 보이게 될 줄은 몰랐다.
상업용 건물 옆에 자리잡은 계단은 약간 경사져 올라가고 그 아래로 보이는 널따란 지붕 위에 새끼 고양이들이 말 그대로 데구르르 '굴러 다니고' 있었다. 그들의 평온한 장난은 주변 길거리의 분주함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생물인 고양이는 놀랍게도 인간의 시야에 생각보다 쉽게 들어오는 곳에서 신변의 위안을 찾고 있었다. 장난기 많은 새끼 고양이들 사이에서 어미 고양이를 발견한 나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자극도 간섭도 주지말고 무시하고 가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일단 내 눈에 보였다는 이유 하나로)내가 보기엔 그다지 안전하다고 생각되진 않았지만, 고양이 입장에서는 생존의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되었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학교 도서관에 가면 보통 실내에만 줄곧 갇혀있는 나는 머잖아 캠퍼스 곳곳에 이와 비슷한 '은신처'가 흩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고양이 방랑자들을 위한 안식처였다.
도서관 1층 로비의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통창의 유리벽 바깥으로 비치는 수수한 정원은 마치 동물원 우리에 스스로 걸어들어간 것 마냥 대담한 고양이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창문은 폐쇄형이고 정원도 정해진 환경미화 직원분들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순전한 관상용이다). 아마 도서관 담벼락을 넘어들어온 고양이 중 현명한 개체가 인간의 눈에는 잘 보이지만 인간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되어 있는 이 장소를 선책한 것으로 보였다. 이 영리한 종이 얼마나 본능적으로 주변을 꿰뚫어 잘 탐색하는지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펫로스 이후, 나는 지난 5년 동안 개를 키우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반평생 이상을 함께 채워온 아이들의 얼굴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반면에 고양이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다. 15년 전 네로처럼 온통 검정칠이었던 길고양이가 주차장으로부터 따라와서 집에 들어온 적이 있다. 어디선가 고양이는 목욕을 안한다고 들어서(거짓 정보) 씻기지도 못한 채 아이를 집 안에 두다가 밤중에 잠깐 일어난 사이 불 꺼진 거실 속 에어컨 위에 앉아 있던 칠흑같던 고양이(이 때 이미 심장 내려앉았다)의 빛나는 눈을 마주치자 뜨악하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고양이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만 평소에 주로 시선을 아래로만 향하게 되는 강아지만을 키워왔던 내가 시선을 천정으로 두고 높은 어딘가에 숨어있는 고양이를 찾는 그 '낯설고 기묘한 체험'이 당시에는 신선함보다는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왔던 걸로 기억한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게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길고양이 임보를 포기했고 미안함과 죄책감 속에 네로와 작별을 고했다.
그 뒤 앞으로도 좀처럼 친밀해질 일이 없을 것 같았던 고양이에 대해 애정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뭔가 우애를 쌓기도 전에 이미 이해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매일 하루 한 두번 이상 산책 중에 마주치는 동안 고양이는 나의 세계 속에서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의문은 계속 남아있다.
왜 그들은 그런 삶을 견뎌야 하는 걸까?
내가 목격한 고양이의 행동 하나하나는 호기심, 경외심, 감탄, 심지어 후회까지 무수히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길고양이의 생활방식은 비록 본질적으로 고될 수 밖에 없지만 그들의 생존력과 회복력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평온한 가운데 탄력이 있는, 길고양이가 삶에 접근하는 자세를 모방하고 싶어졌다.
고양이와의 뜻밖의 만남은 언제나 처음에는 훈훈하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내 안에 '걱정의 샘'이 고이기 시작한다. 이 거칠고 험난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그들의 안녕에 대해 연이어 떠오르는 걱정을 쉽사리 떨쳐 내지 못한다.
고양이들이 (생각보다 자주)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대부분 '황송'하지만, 아주 많은 경우 '미안한' 감정으로 가득 차게 한다.
고양이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하고 깊다.
길고양이들과의 조우가 죄책감을 동반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몽글몽글해지는 것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것이 세상에 이제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은 어쩌면 도시 동물을 대표하여 도시 인간들에게 공존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고양이에 대해서 아주 조금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고양이와 개 사이의 유사점을 찾아냈다. 둘은 비슷한 발달 이정표를 갖고 있었다. 고양이와 강아지는 모두 태어난 뒤 최소 8주 동안은 어미와 형제들과 함께 사는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기간 동안 고양이와 강아지 모두 어미로부터 필요한 사회적 기술(일반적 의미의 '친교'가 아니라 동물, 인간,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방법)과 생존 기술을 배우고 터득하게 된다.
고양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그들이 직면한 현실은 더 가혹하게 느껴진다. 악천후를 견딜 수 있는 장비가 있는 유목민이나 캠핑족과 달리 길 잃은 고양이에게는 그러한 도구와 공간 모두가 부족하다. 때문에 수천 년 동안을 인간의 서식지와 얽혀 살아온 고양이들의 생존은 순전히 개별적인 적응성(5%와 95%의 행운)에 달려 있다.
역사를 통틀어 인간은 설치류를 제거하는 동물이자 마녀 사냥의 희생자이자 소시오패스적 범죄의 대상으로써 고양이에게 어마어마한 빚을 져왔다. 빚은 여전히 갚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이는 인간의 집단적 무지 중 대표적인 증거다.
<인생은 짧고 고양이는 귀엽지>은 매혹적인 사진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끼 고양이의 성장과 자립과정에 대해 소개한다. 단순한 귀여움을 넘어 도전적인 환경 속에서의 '아깽이'들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삶의 여정과 회복력을 섬세한 필체로 묘사하고 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이 책을 읽으면 새끼 고양이가 어른 고양이로 살아남기까지 겪어야 하는 지극한 어려움의 시간들을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길고양이들의 삶은 비록 하루하루 투쟁과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 안에서도 고양이들의 삶에 대한 의지와 생명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으려 하면서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생존해가며 때로는 사람들과의 소소한 교감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심과 정성을 가득 담은 사진과 글로 가득 채운 이 에세이는 고양이를 매개체로 하여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단순한 포토북 에세이를 넘어,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 ,그리고 고양이들이 우리 삶에 더해주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해주는 그야말로 '묘(妙 빼어나고 훌륭하다)한' 책이다.
“언제나 나는 그런 고양이와 함께하는 게 좋았고, 그들이 곁에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것에 대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