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 짧고 강렬한 인간 존재의 문학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는 단순한 비극이 아니다.
'작은 인간'의 존엄과 체제의 무정함, 그리고 환상적 복수까지 담아낸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렬하게 살아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말한 “우리는 모두 외투에서 나왔다”는 문장의 진실을 함께 탐색해보자.

외투 한 벌이 만든 존재의 무게
도스토옙스키는 말했다.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이는 단지 문체적 영향이 아닌, 인간 존재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이 작품에서 비롯되었다는 뜻이다.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는 짧지만 깊고도 서늘한 잔상을 남기는 소설이다.
19세기 러시아 제국이라는 배경을 넘어,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강렬하게 어필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단순한 감정의 소비를 유도하는 비극이 아니라, 인간 조건의 핵심을 찌르는 통찰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바슈마친은 말단 서기관으로 살아간다.
말수가 적고 욕망도 없으며, 다만 성실하게 문서를 베끼는 일에만 몰두한다. 주변의 조롱과 무시에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저 묵묵히 존재한다.
그런 그가 낡아빠진 외투를 새로 맞추기 위해 절약과 희생을 감내하며 고된 생활을 이어가는 과정은, 이 단조로운 인물에게 처음으로 생긴 삶의 희망이자 작은 빛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새 외투를 입은 날,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짧은 찰나의 존재감을 경험한다.
투명한 인간과, 지워지는 이름
하지만 그 외투는 금세 강도에게 빼앗기고 만다. 아무도 그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고, 도움을 요청한 관청의 고위 인사조차 그를 무시하고 내쫓는다. 아카키는 병을 얻어 결국 생을 마감하고, 그 후 도시에는 외투를 훔치고 다니는 유령이 나타난다는 괴담이 퍼지게 된다. 그 유령이 바로 아카키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환상과 현실을 교묘하게 넘나드는 고골 특유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외투는 이 소설에서 단순한 겉옷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존엄성의 가장 작은 단위이자,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상징한다. 아카키에게 외투는 추위에서 몸을 보호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세상이 자신을 인식해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우리는 종종 학위, 직위, 외모, 옷, SNS 팔로워 수 등 외적 껍질로 존재를 증명받는다.
아카키가 외투를 잃고 무너졌듯, 그것이 사라질 때 삶의 기반도 함께 붕괴된다.
이처럼 외투라는 사소한 물건이 인물의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는 결정적 계기로 등장하는 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은유로 읽힌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옷 한 벌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온 생애를 건 간절함일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고골의 시선은 단순한 동정이 아닌 깊은 연민으로 전환된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인간'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결핍과 열망이 숨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유령이 되어 돌아온 자, 체제를 조롱하다
고골은 아카키의 무명성과 몰락을 통해, 존재가 얼마나 쉽게 무시되고 지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그가 언제 관청에 들어왔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는 문장은, 존재의 투명함과 체제 속 익명성의 공포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소설 속의 이러한 설정은 곧 고골 자신의 혼종적 정체성과도 겹친다. 우크라이나계이면서도 러시아 작가로 활동했던 그는, 제국의 중심이 아닌 변방 출신으로, 정체성과 소속감에 혼란을 겪었다. 그런 그가 창조한 아카키는,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한 가장 정확한 문학적 복제물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이 가진 풍자적 매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고위 인사'가 아카키의 외투 도난을 외면했던 장면 이후, 유령이 되어 돌아온 아카키에게 외투를 강제로 빼앗기고 공포에 떠는 모습은, 억눌린 자아의 유쾌한 복수극처럼 읽힌다. 이 고위 인사는 이름조차 명시되지 않으며 (끝까지 안 나온다) , 이는 그가 단지 권위와 계급의 상징물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이후 그는 태도를 바꾸고 온화해졌다는 묘사는, 문학을 통한 윤리적 경고이자 체제의 이중성을 풍자하는 고골식 유머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고골은 생전, 제정 러시아 체제의 억압과 모순을 직접 고발하기보다는, 우회적인 비판과 환상적 장치를 통해 사회의 실상을 드러냈다. 이러한 표현 전략은 당시 정치적 검열을 피하면서도 강력한 울림을 남길 수 있는 방식이었다. 아카키가 죽고 난 뒤에야 세상이 그의 존재를 눈치채는 아이러니는, 고골이 예술가로서 겪었던 인정 욕망과 창작의 절망이 교차된 순간처럼 읽힌다.
당신의 '외투'는 무엇인가?
러시아 고전 문학이 유독 가난하고 비참한 인물들을 자주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혹독한 날씨나 지역적인 특성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오랜 농노제의 잔재, 제국주의적 억압, 종교적 고난의 미덕화,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억제된 사회 속에서, 인간의 존재와 고통을 문학이 유일하게 말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모두 이러한 전통 안에서, 불행을 묘사하면서도 인간의 구원을 탐색하는 문학을 써 내려갔다.
고골 개인의 삶 역시 『외투』와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정체성의 혼란, 종교적 광신, 예술가로서의 좌절을 겪었다. 자신의 작품을 불태우고 단식을 감행하다 죽음에 이르렀던 그 말년의 행보는, 외투를 잃고 무너진 아카키의 운명과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다.
『죽은 혼』 2부의 소실과 아카키의 유령화는, 실상 작가의 개인적인 절망이자 또 다른 형태의 귀환이라 할 수 있다.『외투』는 바로 그런 흐름의 출발점이자, 결정적 기점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단편은 그저 '비참할 정도로 불쌍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체제 속에서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인간 존재의 존엄성에 대하여, 감추는 듯 은유적이면서도 날선 지적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 모든 비극을 고골이 병적으로 우스꽝스러운 문장으로, 그러나 절대로 가볍지 않은 깊이로 표현했다는 사실이다.

정리.
『외투』는 짧은 분량 안에 삶의 무게와 인간 본성의 비틀림, 체제의 무정함과 존재의 절박함을 담아내고 있다.
살아 있을 때는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던 이가, 죽고 나서야 외투를 빼앗으며 존재를 증명한다는 결말은, 슬프면서도 묘한 시원함을 남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외투』는 한 인간의 개인적인 비극을 넘어서, 우리 모두가 걸치고 있는 사회적 껍질에 대해 묻는 듯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울림을 남기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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