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최고의 발라드 <Save the Best for Last>, 사랑도 인생도 '타이밍'이 다가 아닌 이유

90년대 명곡 Save the Best for Last는 바네사 윌리엄스의 재기를 알린 감성 발라드다.
가사 해석과 사회적 배경, 음악적 특징을 함께 살펴본다.

 

 

 

마지막에 남겨진 것의 의미 – Save the Best for Last

 

1992년 초, 팝 발라드 시장에는 예상 밖의  돌풍이 일었다.
화려한 댄스곡과 R&B가 주류를 차지하던 당시, 피아노 한 대와 절제된 스트링, 그리고 조용히 이야기하듯 부르는 한 여자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바네사 윌리엄스(Vanessa Williams)의 “Save the Best for Last”가 바로 그 곡이다.


이 노래는 열정적이거나 격한 감정을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모든 걸 다 겪은 사람이 조용히 되짚듯, 지나간 사랑에 대해 찬찬히 회고한다.
“눈이 6월에 내리고, 태양이 달 주위를 돈다”는 첫 구절은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의 비유를 통해, 사랑에서는 종종 그런 불가능이 일어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사랑이 논리와 시기,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흐름 속에서 결국 ‘나에게 올 사람은 온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

노래가 발표됐을 즈음 미국은 80년대의 물질주의 열풍이 끝나고, 90년대의 개인성과 내면을 중요시하는 분위기로 전환하던 시기였다.

팝음악에서도 표면적인 것보다는 ‘속의 이야기’가 먹히기 시작했고, 특히 여성 보컬리스트들의 감성 발라드는 상업성과 공감력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장르로 떠올랐다. 바네사 윌리엄스는 이 흐름을 정확히 짚어낸 가수였다.

사실 윌리엄스는 가수보다는 ‘미스 아메리카 스캔들’로 먼저 세상에 알려졌다. 흑인 최초의 미스 아메리카로 당선된 그녀는, 곧이어 유출된 누드사진 논란으로 퇴위당했다(미국 또한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게 새삼스럽다). 당시 언론은 잔혹했고, 그녀의 경력은 그대로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후 그녀는 배우와 가수로 천천히 복귀했는데, 이 곡이 바로 그 ‘구원의 한 방’과도 같았다.

“Save the Best for Last”는 1992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했고, 그래미상에도 노미네이트되며 그녀의 재기를 상징하는 곡이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때때로 제일 마지막에 나타난다는 이 노래의 메시지가, 그녀 본인의 삶과도 맞아떨어졌던 셈이다.

음악적으로는 절제된 피아노 선율과 단출한 현악 편곡, 그리고 윌리엄스의 맑고 안정된 음색이 특징이다. 오버하지 않는 감정선이 오히려 더 많은 공감을 끌어낸다.
‘파워 보컬’보다는 ‘파워 감성’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가사의 서정성도 돋보인다. “Sometimes the very thing you're looking for is the one thing you can't see(때로는 당신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게 바로 눈앞에 있었던 것)”라는 대사는 연애뿐 아니라 삶 전반에 걸쳐 울림을 준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멀리 돌아다녔지만, 결국 내 바로 옆에 있던 것을 알아보게 된다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현실적 통찰이다.

이 곡은 수많은 드라마, 예능, 광고에 삽입되었지만 특히 미국 드라마 "Ally McBeal"과 몇 편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등장하면서 다시금 회자되었다. 국내에서도 90년대 후반 라디오나 TV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들을 수 있었기에, 7080세대에게는 익숙한 멜로디로 남아 있다.

 

 

흥미롭게도, 이 곡을 “인생에서 가장 애정하는 곡”이라고 밝힌 유명인 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도 있다. 공식 석상에서 “가장 인상 깊은 사랑 노래 중 하나”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의외의 감수성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노래가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랑은 타이밍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담백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두르다 잃는 사람도 있고, 포기한 순간에 다시 마주치는 인연도 있다. 그런 점에서 "Save the Best for Last"는 단순한 러브송이 아니라, 인생에서 ‘늦게 오는 것들’에 대한 위로로 읽히기도 한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이, 어쩌면 가장 마지막에 남겨진 '최고의 것'일지도 모른다. 이 노래가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는, 그 잊고있던 사소한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