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의 진짜 이유는 의지 부족이 아니다. 『나는 결심하지만 뇌는 비웃는다』는 우리가 스스로를 탓하기 전, 뇌의 작동방식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방향 없는 노력이 무의미한 이유, 뇌가 왜 자꾸 도망치고 착각하는지를 담담하고 깊이 있게 풀어낸 책이다.
나는 결심하지만 뇌는 비웃는다
- 그 결심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땐, 솔직히 살짝 실망스러웠다.
요즘 자기계발서들이 으레 그렇듯 자극적인 제목과 굵은 활자들, ‘한 방’의 팁을 주는 듯한 분위기.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잠시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꽤 뼈 있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이 책은 '당신의 의지는 약하지 않다'고 말한다.
다만, 우리가 갖고 있는 뇌라는 장치가 그렇게 작동하도록 만들어져 있을 뿐이라고 바꿔 말한다. 이 단순한 전제를 중심으로 책은 여러 실험과 사례를 들어 우리의 종종 간과하고 있는 점들을 해부해 나간다.
읽다 보면 문득, 나는 얼마나 자주 '나의 뇌'에게 속아왔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중요한 일을 미루고, 한 번의 실패에 '역시 나는 안 되나보다'라고 단정짓고,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내 선택을 정당화해왔던 수많은 순간들이 떠올랐다.
모두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뇌가 그렇게 작동하기 쉬운 '구조' 때문이었다.
[무작정의 노력은 뇌에게 무의미하다]
어떤 일을 시작했을 때, 도무지 ‘이 자리가 나와 맞는지’를 가늠조차 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능력과 역할이 어긋난 채로 반복하는 상태가 거듭되면, 뇌는 방향 없이 에너지를 소진하는 상태에 빠진다.
앤더스 에릭슨 교수가 말한 ‘주도면밀한 연습’이란, 단순한 노력이나 시간 투입이 아니라 정확한 방향성과 구체적인 계획 아래 이뤄지는 집중 연습을 말한다.
5만 시간을 투자해도 방향이 틀리면 결국 ‘쓸모없는 반복’일 뿐이다.
뇌는 이처럼 성과 없는 고투에 쉽게 지치고, 끝내 포기를 정당화해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뇌는 즉각적인 보상을 좋아하고, 반복을 선호하며,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면 뇌는 그 계획 자체에 만족해버리고, 막상 실천은 미루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운동을 결심한 날에는 일단 운동화를 사러 가고,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은 날에는 예쁜 노트를 산다.
실질적인 변화보다 '시작했다는 기분'이 뇌에게 더 큰 보상이기 때문이다.
책이 특별한 건 이걸 어떻게 ‘이겨낼지’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비장하거나 대단한 방식이 아니라, 아주 작고 단순한 방식으로 말이다.
목표를 쪼개고, 결과보다 과정을 기록하며, 의욕이 생기지 않아도 시작하는 쪽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당장의 '회피 충동'을 피하는 법에 대해 알려준다.
[신뢰는 때때로 뇌의 착각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신뢰를 보이고, 그에 대한 보상 욕구를 느낄 때 뇌에서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를 ‘토마스 회로’라고 부르는데, 강력한 유대감과 충성심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뇌 회로는 가끔 틀린 사람에게 작동한다.
통계적으로, 우리가 만나는 사람 중 약 2%는 신뢰에 보답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우리 뇌는 때때로 좋은 사람을 잘못 인식하고, 그로 인해 상처받을 가능성이 꽤 크다는 것이다.
뇌는 늘 믿고 싶은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진짜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뇌의 자동 반응’일지도 모른다.
읽으면서 내가 오래전 관두었던 일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엔 그 일에 대한 나의 적성이나 역량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 뇌의 작동 방식에 너무 휘둘렸던 것 같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방향을 못 잡았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또한 두려워서가 아니라, 확신이 없어 보류했던 일들이었다.
뇌는 늘 자신의 특징대로 움직이고 있었을 뿐인데 나는 그걸 내적 원인으로만 돌리고 있었다.
책 후반부로 갈수록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인지체계’ 안에서 살아가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 비극이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이게 된다.
완벽해지려 애쓰기보다, 자꾸 속아넘어가는 나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고 이 책은 짚어주고 있다.
여기서, 기억에 남는 구절 하나.
열심히만 하지 말고, 머리를 좀 써.
뇌는 적당히 똑똑하다. 하지만 그 뇌를 똑똑하게 쓰는 건 결국 우리 몫이다.
그렇게 보면, 이 책은 ‘나를 이해하는 법’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단단한 의지가 없어서 무너졌던 사람이 아니라, 단지 ‘도구 사용법’을 몰랐던 나를 위한 안내서로 보아도 좋다.
그리고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보려는 모든 이들을 위한, 조금은 현실적인 응원처럼 느껴진다.
[많은 시간보다 중요한 것]
'1만 시간의 법칙'은 성공의 상징처럼 회자되지만, 저자는 이 말을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시간은 시작점일 뿐, 완성 조건이 아니다. 무작정 시간을 쏟는다고 전문성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잘못된 연습을 계속할 경우, 그건 TV 앞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핵심은 열망, 집중, 방향감각이다.
그리고 때로는 일시정지의 여유도 필요하다. 뇌는 쉬지 않고 몰아붙일수록 도망치고 싶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저자 간략 소개]
데이비드 디살보(David Disalvo)는 뇌과학을 바탕으로 자기계발의 허상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심리과학 저널리스트다.
그는 과학의 언어로 ‘달콤한 거짓말’을 걷어내고, 인간이 왜 스스로를 속이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나는 결심하지만 뇌는 비웃는다》로 전 세계 독자에게 ‘생각하는 법’을 다시 가르쳐준 실용적 사유의 안내자다.
© Ophelix, 2025
텍스트와 이미지의 모든 권리는 작성자에게 있습니다.
#뇌과학자기계발
#작심삼일심리학
#뇌의작동원리
#실용심리도서
#나는결심하지만뇌는비웃는다서평
'[BOOK] 풍부의 추월차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투≫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 짧고 강렬한 인간 존재의 문학 (3) | 2025.06.04 |
---|---|
무라카미 하루키, 위스키로 말하다 –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감성위스키에세이 (1) | 2025.06.02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부처 이야기? 아니, ‘스스로 길을 걷는 모든 이들’을 위한 책. (0) | 2025.05.31 |
나를 갉아먹는 피로, 관계, 감정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법'. <일단 피곤하지 않게 살아보겠습니다> (1) | 2025.05.24 |
<와일드가 말하는 오스카>진심은 오해를 낳는다-오스카 와일드의 말에서 배우는 자기표현의 용기 (0) | 2025.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