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BT9t5vwpLKjnDbQ-9V3X99BD75B5tgA74Y15Fyq_bHY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부처 이야기? 아니, ‘스스로 길을 걷는 모든 이들’을 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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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부처 이야기? 아니, ‘스스로 길을 걷는 모든 이들’을 위한 책.

by Ophelix 2025.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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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부처 삶의 이야기가 아니다.
『싯다르타』는 스스로 삶을 건너는 한 사람의 여정이다.
빠름보다 느림, 가르침보다 경험이 빛나는 책.

 

 

 

영혼이 자라는 강가에서

-『싯다르타』를 읽고

 

 

오해에서 출발한 책

『싯다르타』는 ‘불교 소설’도 아니고, ‘부처의 전기’도 아니다.

하지만 책 제목, 표지, 줄거리 요약만 보면 착각을 하기에 딱 좋다. 싯다르타라는 이름, 부처를 떠올리게 하는 일러스트, 그리고 영적인 여정이라는 홍보 문구 등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이 책이 ‘고타마 붓다의 삶이나 가르침을 소설 형식으로 재현한 것’이라 기대하고 읽는다. 하지만 정작 책은 다른 방향을 향해 흘러간다.

 

 

한마디로 『싯다르타』는 부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부처의 삶을 차용한 허구이며,
오히려 ‘부처와는 다른 길’을 걸어보려는 한 인물의 이야기다.

작중 주인공 싯다르타는 실제 붓다와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구조는 오히려 서구식 ‘자기 구원의 서사’에 가깝다.

 

 

 


 

깨달음은 남이 줄 수 없다

싯다르타는 브라만의 아들로 태어나, 고타마 붓다를 실제로 만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는 붓다의 말에 감동받으면서도,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진짜 깨달음은 ‘남이 준 지침’으로는 얻을 수 없으며, ‘스스로의 삶을 통해 경험하고 얻어야’ 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싯다르타의 이 선택은 책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이다.

 

깨달음의 ‘불가해성’에 대한 인정, 정답 없는 여정을 그 자체로 수용하는 주인공의 태도는 책 후반부, 나룻배 사공 바사데바와 함께 강가에서 보내는 시간을 통해 더욱 깊어진다.

어떤 교리도, 어떤 스승도 정답이 아니며, 삶 그 자체가 길이며 교과서라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싯다르타』는 그래서 철저히 '경험의 책'이다.

어린 브라만의 아들이 출가하고, 사마나가 되고, 다시 세속에 발을 담그고, 부를 쌓고, 쾌락에 빠지고, 절망에 다다르고, 마침내 강가에서 나룻배 사공이 되어 강물의 소리를 듣는다. 단순히 영적 각성을 향한 수직적 상승이 아니라, 깊게 떨어졌다 다시 올라오는 곡선의 여정이다. 세속적인 욕망조차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과정 속에서 주인공은 조금씩 깨달음에 가까워진다.

 

 

 

말 아닌 침묵, 가르침 아닌 귀 기울임, 흘러가는 강물의 리듬 속에서
싯다르타는 마침내 깨달음에 닿는다.
무엇을 찾기보다, ‘다만 흐르는 것’ 안에서 삶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게 된다.

결국, 헤르만 헤세가 말하고 싶었던 건 ‘찾지 말라’는 것,
찾으려 하면 놓치게 된다는 역설이었다.

 


 

솔직하게 느낀, 아쉬운 것들

하지만 동시에, 책의 한계도 분명하다.

중반 이후의 방황기는 흐름이 다소(매우) 단조롭고 반복적으로 느껴지며, 사건보다는 ‘상태’ 중심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이야기'로서의 구조에 익숙한 독자라면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번역의 문제인지, 감정선이 뚜렷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게다가 등장인물 대부분은 한순간 등장하고 사라지는 상징적 도구로만 기능한다 (고빈다, 카말라, 카마스와미는 모두 그의 여정에 일회성으로 등장해 ‘잠깐 영향을 주고 퇴장’한다).

인간관계의 깊이나 사건의 역동성보다는 ‘메시지 전달’에 집중한 소설이라는 인상을 준다.

감정선이나 인간관계의 깊이보다는, 각각의 인물이 전하려는 교훈이 더 중요하게 묘사된다. 그래서 이들은 현실적인 인물이라기보다, 싯다르타가 통과해야 하는 각각의 ‘관문’처럼 느껴진다.

이런 점으로 인해 ‘소설로서의 몰입감’은 확실히 떨어진다. 다만, 그 상징성이 워낙 명확하다 보니, 읽는 중간 중간 성찰의 여지를 남기는 지점도 있다.

 

 

 

 

 

 

그 밖에, 문체는 간결한 편이지만 철학적 알레고리와 상징 같은 관념적 표현이 많아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연금술사』와 비슷하다는 평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단순한 문장 안에 무거운 의미를 담아내려는 방식, 목적지보다 ‘여정 자체’에 집중하는 구성, 그리고 결국은 독자 스스로 자기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방향성까지 닮았다.

다만, 『연금술사』가 비교적 친절하게 ‘희망’을 건네주는 책이라면, 『싯다르타』는 훨씬 덤덤하고, 결말조차 설명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흘러가 버린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더 와닿을 수 있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다소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지금 시대에 더 맞지 않는 책일 수도 있다. 요즘 독자들이 선호하는 속도, 흥미, 서사 구조와는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또 평소 영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이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이 책을 ‘흥미롭게’ 만든다는 보장은 없다.

 

 

 


 

강물의 소리이자,

말 없는 스승

 

 

하지만 동시에 바로 이것이 『싯다르타』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싯다르타』는 ‘쉬운 말로 깊은 것을 이야기하려는 시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찾지 말라. 찾으려 하면 놓치게 된다.”는 싯다르타의 핵심 메시지는, 자기계발서들이 쏟아내는 ‘성공’이라는 키워드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책이 인도적 배경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서구적 인간 내면 탐구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점은 이질적이면서도 흥미롭다.

독일 작가인 헤세는 왜 이토록 인도의 고대정신을 진지하게 사유했을까?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는 서구 문명의 공허함을 돌파할 단서와, 자신의 분열된 내면의 갈등을 치유할 실마리를 동양에서 찾고자 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문화적 오독이나 차이, 불교적으로는 완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헤세는 삶의 공통된 본질—고통, 욕망, 혼란, 그리고 깨달음—에 대해 충분히 진지하게, 진심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이 책은, 특정 한 인물의 삶을 따라가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삶이라는 강을 건너는 모든 사람’을 위한 은유적 안내서에 가깝다. 그 안내자는 스승도, 신도 아니다. 그저 흐르는 강물, 그리고 그 강물의 소리를 오래 들어준 한 사람의 이야기다.

 

『싯다르타』 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의 정답은, 스스로 사는 것 외엔 없다.”

 

 

 

누군가에겐 허무하고, 누군가에겐 오래 남는 책.
빠르게 읽을 수도, 쉽게 넘길 수도 없는 책.
추천보다는 질문을 남기는 책,
정답보다 묵음의 사유를 권하는 책.

『싯다르타』는 그런 책이다.

 

 

 

 

 

© Ophelix, 2025  
텍스트와 이미지의 모든 권리는 작성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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