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BT9t5vwpLKjnDbQ-9V3X99BD75B5tgA74Y15Fyq_bHY <와일드가 말하는 오스카>진심은 오해를 낳는다-오스카 와일드의 말에서 배우는 자기표현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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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와일드가 말하는 오스카>진심은 오해를 낳는다-오스카 와일드의 말에서 배우는 자기표현의 용기

by Ophelix 2025.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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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SNS도 없던 시대에 스스로 스타가 된 오스카 와일드.
『와일드가 말하는 오스카』는 진심과 오해 사이, 자아 탐구에 목숨을 건 한 천재의 삶과 문장을 담는다.
시대를 앞선 언어, 파격적인 자기표현, 그리고 몰락까지—와일드가 남긴 말은 지금도 살아 있다.
명언 이상의 울림, 예술처럼 살다 간 그의 고백을 읽는다.

 

 

 
와일드가 말하는 오스카
『와일드가 말하는 오스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물론 자기 홍보(PR)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았을 19세기에 이미 스스로의 힘으로 사교계의 스타이자 예술계의 총아로 발돋움했던 오스카 와일드의 세련된 자기표현, 심오한 자아 탐구를 명확히 드러내 보이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저자
오스카 와일드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16.11.25

 

 

오스카 와일드라는 수수께끼,

이미지와 진실 사이의 균열을 들여다보다

 

우리는 종종 인물을 평가할 때 그의 '작품'보다 '평판'을 먼저 알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도 그런 인물이었다.

날카로운 언변과 화려한 사교성, 파격적인 행보로 회자되는 그의 삶은 때때로 작품 그 자체보다 더 큰 이슈가 되었다.

『와일드가 말하는 오스카』는 그에 대한 오해와 진실 사이의 틈을 조명하는 기록이다.

19세기 후반, SNS가 전무했던 시절, 그는 오직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 하나로 세상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시대를 앞지른 언어, 

시대에 밀려난 인간

 

그의 언어는 지나치게 날카롭고, 때로는 고의적으로 도발적이다. 단순히 ‘자신감 넘치는’ 수준이 아니라, 말 하나하나가 폭탄처럼 터진다. 당시 사회와 대중은 그의 발언을 감당하기 어려워했고, 와일드는 결국 자신의 시대와 불화하며 퇴장해야 했다.

"나는 오직 어리석은 자들만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우리가 태어났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난 오해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

이 문장은 그의 유쾌함 속에 자리한 슬픈 직감을 드러낸다. 와일드는 단지 선을 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그 시대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이른 감각과 시선을 지녔다.

 

그는 삶의 전형적인 노선—노력, 인내, 성실—을 일축했다. 대신 스스로의 고유한 방식으로 삶을 설계하려 했다.


"정상에서 시작해서, 그곳에 머무르시오."

 

겉으로는 오만해 보이는 이 말도, 사실은 진심으로 청춘에게 던진 조언이다. 가능성을 자신 안에서 먼저 인정하라는 선언이다. 이런 메시지는 단순한 자만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스카 와일드 명언 모음 에세이 책


나르시시즘인가, 자기 구원의 기술인가

세간의 평대로, 그는 나르시시스트였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허세 가득한 자기애가 아닌, 뿌리 깊은 자아 탐구의 결과로서의 자기중심성이었다. 와일드는 자기 자신을 일생 동안 탐험한 사람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세상에서 '속속들이 알고 싶은' 사람은 나 자신밖엔 없다."

그의 이 발언은 자기애의 선언처럼 들릴 수 있으나, 실은 누구보다 인간의 복잡성과 고통을 내면화한 자의 고백이다. 그는 세상을 향한 궁금증보다 자신을 향한 탐색에 더욱 집중했다.

 

 

고통의 예술화, 그리고 감당하지 못한 몰락

 

와일드는 스스로의 삶을 하나의 예술로 간주했다. 찬란한 영광도, 잔인한 몰락도 모두 예술적 표현이었다. 그러나 사회는 그의 고통을 감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동성애 소송 패소 후 그는 사회적, 재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졌고, 이 몰락은 단지 도덕적 심판이 아닌 감정과 사회적 편견이 낳은 폭력이었다.

그가 처한 현실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성소수자, 예술가, 혹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세상의 냉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와일드는 그 모든 것의 원형이었다.

2025년의 세계에서라면, 오스카 와일드는 아마도 (일부분 역시나) '불호형 인플루언서'가 되었을 것이다. 독설과 자기 확신, 감각적 언어로 논란을 몰고 다니면서도, 동시에 열렬한 지지층을 거느릴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그가 현재의 세상에 살았더라면,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당시보다는 훨씬 더 많았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는 조금 덜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진심은 늘 오해를 동반한다

『와일드가 말하는 오스카』는 단순한 명언 모음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냄새, 그 시대와 불화했던 존재의 호흡이 담겨 있다. 그의 말들은 지나치게 자극적이지만, 동시에 날 것 자체로 극도로 솔직하다. 그는 언제나 그 안의 진심과 진실을 표현하면서도, 그것이 오해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또 그것이 바로 그의 천재성의 비극이자, 매력이었다.

와일드는 우리에게 감정이 죽은 형식적인 공감보다, 불편하지만 진실한 자기표현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진심이란, 때로는 가장 위험한 언어다. 그것은 때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오해의 빌미가 되며, 때로는 그 사람 자체를 파괴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오래 남는 문장, 가장 깊이 마음에 박히는 말 역시 언제나 진심에서 비롯된다.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들이 그렇다. 
시대를 넘어 여전히 반짝이는 그의 말들은, 당대의 편견 속에서도 자신을 표현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한 인간의 흔적이자, 삶을 온몸으로 살아낸 존재의 기록이다.
그의 문장은 한 세기를 훌쩍 넘은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해와 진실 사이를 유영하며,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읽히고, 또 다른 방식으로 다시 이해된다. 결코 잊히지 않는 문장. 그것은 결국, 어떤 삶이 진실했는가에 대한 가장 깊은 증거이다.

 

 

 

 

©관대한 미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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