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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 걷거나 타거나-국내

[서울광장]돈주고 보는 공연 그 이상!<2023서울거리예술축제>고퀄리티공연과 설치작품들/서울이야,외국이야?추석에여행온 느낌

by 돌냥 2023.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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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국군의 날 행사도 우연히 서울광장을 지나가다 봤던 것처럼 이번 서울거리예술축제도 의도해서 간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올해 본 공연(?)중(생각해보면 제대로 본 공연이 하나도 없다는.) 가장 퀄리티 있고 흥미롭고 신났던 공연들이었습니다.

서울광장이 과거처럼 비워만 있거나 특정 단체의 시위 장소로 쓰여지지 않고 오며가는 수많은 시민들(물론 덕수궁, 광화문광장, 경복궁 등 인근에 놀러온 관광객들에게도!)에게 볼거리와 즐길 거리 등 문화적으로 유용한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주는 것은 매우 긍정적으로 여겨집니다.

 

올해 봄부터 여름은 일요일마다, 현재 가을은 목~일요일 운영되고 있는 <2023 책읽는 서울광장>을 기본 행사로 최근은 국군의 날 기념행사, 서울거리예술축제, 장애인인식 개선 체험행사 등등 다양한 행사들이 서울광장에서 펼쳐졌습니다.

 

 

 

 

이번 09.29(금)-10.1(일)까지 열린 서울거리예술축제는 서울광장, 청계광장, 무교로 일대를 무대로 한 야외 공연예술축제입니다. 안내책자와 프로그램 일정표를 봐도 알 수 있듯 그야말로 다양한 예술 장르가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던 특별한 기회였습니다. (행사 포스터는 바로 이번 주에 열리는 ‘달리기 대회’를 다소 연상시키지만..)

 

미리 알고 찾아간 게 아니었지만 폐막 직전의 공연과 마지막날 피날레를 운 좋게 볼 수 있었습니다. 어둑해진 시간이어서 설치작품은 <순간-아틀리에 시수>와 <걸어가는 일상, 걸어가는 역사- 금민정 >을 볼 수 있었고, 공연은 <니나내나 니나노-천하제일탈공작소X프로젝트 날다>, <재생-엘디피 LDP> 를 볼 수 있었습니다.

 

 

<순간 Evanescent - 아틀리에 시수 Atelier SISU>

<순간>은 일시적이고 덧없는 것의 개념을 시각적 형태인 '버블'로 포착하려는 의도로 제작된 몰입형의 빛과 소리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영감을 받았다고 하며 당시는 세상이 멈추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모든 것이 사라지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Atelier SISU는 이 덧없는 아름다움과 순간에 살아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버블'이라는 개념을 통해 전달하려 노력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단지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걸어서 어슬렁 찾아간 서울광장에서 너무 먹고 쉬고 하다보니 찌뿌둥해진 몸도 풀고, 예기치 않은 도파민까지 발산할 수 있었던 굵고 짧았던 두 시간 반. 광장 곳곳에 펼쳐지는 공연과 설치작품들 모두 돈주고 보는 그 이상의 퀄리티에 아무 기대없이 갔다가 뭔가 공짜로 호사를 누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광장과 무대 앞을 인파들이 가득 채운 것을 보며 바르셀로나의 스페인광장에서 군중들 틈에 끼여 구경한 축제의 기시감이 들고, 이색적인 공연들과 그에 소리와 제스쳐로 환호하는 외국인들(족히 삼분의 일은 거의 외국인들)의 모습은 여기가 서울인지 어디인지 헷갈릴 정도로 실시간으로 해외여행에 온 착각이 들게하기 충분했습니다.

 

 

예전 중국 유학했던 시절에 설이나 추석이면 한국의 몇 배로 대번에 황량해지는 풍경과 죄다 닫힌 상점과 건물들 때문에 한층 더 무료하고 외로웠던 기억이 있었는데, 한국 친구나 동료들이 죄다 고향이나 여행을 간 외국인들(근로자+여행자) 입장에서는 이런 행사로 인해 단체로 모이고 더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습니다.

 

한가위 시즌과 K문화의 중심지 서울로 몰려든 외국인들을 노린(?) 것인지 모르지만, 이번 예술축제의 핵심 의미는 ‘다채로움(variety) 과 다양성(diversity)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추석에 사람과 사람이 맞잡은 손으로 보름달을 만들 듯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른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며 자신만의 행복과 색다른 감동을 찾아가도록 하려는 메시지를 담은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서울광장, 청계광장, 무교로 일대에서 진행된 행사는 코로나 시기 후 거리예술이 다시 부활하는 어쩌면 상징적인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겪었던 어려운 시기를 넘어 다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날을 만들기 위한 공연 참가자들과 기획자분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재생 Recycling -엘디피LDP>

2001년에 설립된 'Laboratory Dance Project(실험실 무용 프로젝트)'의 약자인 'LDP'는 한국의 춤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험실'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현대 예술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정신을 지닌 LDP는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젊은 무용수들로 구성되어 있으며대담한 실험과 체계적인 작업 체제를 마련하여 한국 및 국제 춤 시장에서 선두주자 역할을 하려고 만들어진 예술단체입니다.

 

 

범상치 않은 박자와 단번에 보아도 노련한 한국무용 전공자분들로 보이는 무용수들의 노련하고 멋진 몸놀림은 한동안을 자리에 붙박혀 관람하게 했습니다. 그림으로 따지자면 추상화일 것이 분명한 "Recycling(재생)"이라는 공연작품은 일상에서 발견되는 언어를 재조립하고, 바꿔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몸이란 우리 인생의 기본적인 토대입니다. 몸은 생명체의 중심으로, 여기서 모든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됩니다. 데이터 파일처럼 쉽게 지울 수 없는 신체 습관, 그건 근육이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움직임을 통해 경험한 것들을 기억합니다. 깨진 찻잔, 낡은 옷, 매끄러운 물체, 소음, 악취, 쌓인 먼지... 이 모든 것들과 함께 시간은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다양한 은유를 품은 동작들과, 기괴한 듯 신선한 특수음향과 음악이 어울려져 우리가 지금 매일 겪고 있는 평범한 일상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의도로 만들어진 공연이었습니다.

 

 

 

<걸어가는 일상, 걸어가는 역사 - 금민정>

미디어월 스크리닝으로 유명한 아티스트 금민정은 수십회의 개인전 외에도 국립현대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금호미술관 등 다양한 장소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있습니다. <걸어가는 일상, 걸어가는 역사> 스크린은 역사적 현실을 보여주는 벽으로 설정, 시간에 따른 변화와 움직임 그리고 일상의 사람들의 발걸음을 통해 역사와 인간, 광장이라는 장소를 하나의 유기적 요소로 표현했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폐막 전 시간대에는 플라자호텔쪽 가로로 기다란 LED전광판 미디어 스크린에 사람들의 걸어가는 모습과 석양빛이 실감나는 영상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어떤 것이 진짜 사람들이고 어떤 것이 영상인지 잘 구별이 안갈만큼 광장의 현재성이 느껴지는 시각효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서울스퀘어빌딩에 한동안 오래 전시되었던 줄리언오피의 70여M의 걸어가는 사람들 전광판이 잠시 생각이 났습니다. 화사한 원색과 상징적이고 역동적 움직임으로 서울역 앞의 랜드마크를 담당했다면 이번 미디어스크린은 서울광장의 시간의 흐름의 변화와 일상 속 사람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현장에 녹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유기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비디오 아트 하나만으로도 서울광장이 더 화사하고 멋스럽게 포인트업되는 느낌이라 계속 설치해두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쾌지나칭칭나네 재즈락 버전

<니나내나 니나노 You and I Ninano- 천하제일탈공작소 X프로젝트 날다>

<천하제일탈공작소The Greatest Masque>는 탈춤의 원리와 정신을 기반으로 현대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들고 있는 예술단체입니다. 그들은 현시대 이야기와 여러 지역의 탈춤 문화를 혼합해 독창적이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오늘날의 관객을 만나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날다project NALDA>는 공중 공연, 서커스, 공연 기술 등에 집중하며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여 대중의 공간을 활용하는 예술 팀으로, 2018년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 문화공연에도 출연하는 등 국내외의 주요 공연 예술 축제에 초청되었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공중 예술 단체로 성장하였습니다.

 

니나내나 랩버전

 

피날레. 정수리 바로 위까지 내려온 공중무대. '강림'이란 말이 이럴때 쓰는 거란 걸 실감...

 

 

마지막으로 니나내나 공연입니다. 꽤 자주 들었던 사물놀이 소리도, 눈에 익었다고 생각했던 탈춤들도, 예사 민요로 들었던 쾌지나 칭칭 나네 민요도.. 이렇게 신나는 것들 인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냥 처음 등장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좋았고 신났고 간만에 콘서트장을 찾아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즐겼습니다.

 

‘니나 내나’는 경상도 방언으로 너, 너희, 나, 우리를 구분없이 각자의 차이를 존중하며 춤을 춘다해도 큰일 날 것 하나없는, 함께 추고 어울리는 노래와 춤판입니다. 랩이 있는가 하면 재즈 같은 노래도 있고 디지털 악기와 태평소의 조화가 묘하게 신명을 돋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호기심 때문에 광장에 끝까지 남도록 만든, 연예인이라도 온 것처럼 사람들이 벌떼처럼 집결해있던 이유-맞은 편 호텔 높이에 근접한 대형 크레인을 이용한 공중퍼포먼스와 공중합주는 기다린 보람이 있을 만큼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앵콜공연 포함 한시간 반 여 진행되는 동안 공중에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세션과 무용수 분들 모두 진정 리스펙. 하게 됐습니다. 잠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줄 알았는데 악기와 무용 퍼포먼스는 까마득하고도 아슬아슬한 공중에서 내내 이루어졌습니다. 올라가계신 분들은 신기하게 모두 고소공포증이 없으신 건지, 그 상태로 공연에 집중하는 모습 자체로 프로페셔널이 느겨졌습니다. (공연이 너무 멋져서 떠나지 않고 끝까지 계속 올려다보느라 일자목이 거꾸로 ‘ㄱ’자가 될 뻔했지만요..)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서태지를 통해 난생 처음 알게 된 태평소 소리를 공중의 반향을 통해 듣는 동안 태평소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요몇년간의 퓨전 트랜드 때문에 익숙해진 탓인지 아니면 당초 서태지가 대중음악과의 첫 접목을 워낙 잘 닦아놓아서인지 태평소는 귀청이 따갑도록 쨍쨍거리는 특유의 음색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어떤 곡과 어울려도 '따로 또 같이' 어우러져 거부감이 없는 것 같습니다. 듣다보면 알 수 없이 신들리게 되는(?) 태평소 연주소리는 확실히 다른 악기에는 없는 강력하고 독보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앵콜까지 피니쉬. 안녕 이제 진짜 안녕..ㅠ 모처럼 애가 된 기분ㅎㅎ

 

<니나내나 니나노>는 프로그램표에 사전공연 4번과 서울광장 서편무대의 메인공연 2번이 있었는데 마지막 한번만 본 것이 너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책자에는 불쇼(?)사진도 나와있던데 공중불쇼는 또 얼마나 눈이 휘둥그레졌을지..

 

모자와 자켓, 지팡이까지.. 무대의상을 멋지게 갖춰 입으신 이 분은 참고로 공연참가자가 아닙니다..

폐막 후 사람들 한 백명쯤과 일일이 사진촬영을 해주셔서 공연관계자인줄 알았지만 축제를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외국인분이셨던 걸로.

(혹시 아는 분있으면 댓글 달아주세여)후한 인심으로 초상권을 널리 나눔해주셔서 저도 여기 약소한 블로그에 공개해놓도록 하겠습니다ㅎ

 

한글 간판 안보이면 정말 어딘지 모르겠는 서울광장. 지난 십년 외국 이곳저곳 쏘다니고 서울에 오니 서울이 가장 외국스러워졌더라는 아이러니를 요새 참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이젠 관광지뿐 아니라 한적한 우리 동네(현지인 동네)에서도 하루에 수번 외국인을 쉽게 마주칩니다.

아무렴 서울이 이정도로.. 이렇게까지 모일 정도의 곳이 된 거였어? 나만 뒷북 중

 

 

 

끝마치기 전에 가서 많은 오브제 작품과 공연을 보지 못했지만 충분히 독특하고 폭넓고 흥미로웠던 서울거리예술축제의 풍경들. 추석동안 지방에서 올라와 본 분들도 있고 세계 각지의 다양한 외국인들도 함께 하면서 근래 서울에서의 어떤 구경보다 신선하고 즐거웠던 경험이 되었습니다.

 

서울 시민으로서의 오랜만의 자부심(?)도 느끼게 해준 이번 공연처럼 앞으로도 이런 창작예술로서의 공연 문화, 경험으로서의 문화들이 더 다양한 기회로 주어지고 이번처럼 좋은 관광재료로써 지속되었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힙하게' '새롭게' 재탄생된 다양한 거리예술이자 무형문화의 소중함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면서, 다양한 지역에서도 단순 특산물 뿐만 아닌 수준 높은 예술문화들을 알릴 수 있는 축제들(이래서 지역들에 영화제들을 추진하는건가 싶기도)들과 관련 인프라들이 더 많이, 더 창의적으로 생겨날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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