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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 <실컷 오늘을 살 거야>나비의 날개? 더는 안기다릴래 애벌레인 오늘, '맘껏 노래'하고 살래!

by 돌냥 2023.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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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 책은:

 

하마터면 정말 열다섯 살이 쓴 건 줄 알았다

 

청소년 시집과 동시집과 동화를 쓴 성인작가 김미희의 시집이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이 안날 만큼 한참 전, 백석 시인의 <사슴>을 마지막으로

시는 내 인생에 철저히 빠져 있었다

 

오랜만에 읽는 시집이 이 책이라서 다행이다

 

평소에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바퀴벌레처럼 내가 다닐 수 있는 행로만 쳐다보며 살아가다가

이토록 압축된 몇 글자들을 통해 내가 분명히 경험했던 경험과 머릿 속에 잠든 채 꺼내지지 않는 기억들이 되살아날 수 있다니.

시는 글자로 실행되는 연금술이 분명하다

 

 

 

나 같은 사람에게서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있어도 느끼질 못하고 살아가니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뇌 속의 특정 세포, 감각, 상상 이런 것들 것 엄연한 생존을 확인시켜 주는 굉장히 성스러운 작업이다

 

시라는 장르가 가장 민감한 감수성과 섬세한 관찰력이 드러나는 글인 것도 있지만

일단 시인의 눈과 시인의 마음-보이지 않지만 많은 것들을 누구보다 많이 보고있는 그리고, 그래서,

때로 넘치게 풍요하고 가끔 밑 모르게 가난해질- , 시인의 영혼을 잠시나마 내 안에 느끼게 되어서 인 것도 있다

그래서 처음 읽게 된 김미희의 이 시집이 더 고마웠다

 

 

 

 

'열다섯 마음'시집 <실컷 오늘을 살 거야> 김미희 지음

 

 

 

 

추천대상: 

평소 시 속의 단어의 미학과 음악성에 호감과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

깊고 복잡한 감정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싯구를 통해 카타르시스적인 치료를 받고 싶은 사람들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섬세하고 비판적으로 '뇌의 환기'를 시키고 싶은 사람들

가치있는 영감과 통찰력 재고 등 오염없는 창조적인 자극이 필요한 모든 예술 노동 종사자들

 

시를 한번쯤 써보고 싶은데 솔직하고 부담없이 쓸 수 있는 낮은 장벽의 친근한 시를 접하고 싶은 사람들

 

무엇보다, 작가가 빙의한 대상인 삶의 '청소년기(물리적 연령이 아닐 지라도..)'를 지나고 있는 모든 사람들

에게 추천

 

 

 

 

 

 

 

 

 

제목 실컷 오늘을 살 거야<싱싱한 하루>라는 시 속의 한 구절이다

이는 이 시집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면서도 시집에 수록된 모든 시들을 총괄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흡족스럽다

 

시를 읽는 중간 중간 이것은 본인의 과거 경험일까, 혹 자식이 있다면 자식의 얘기일까,

현재 당사자의 얘기일까 매우 궁금해질만큼 화자의 시선은 우리 모두가 겪은 청소년 시절의 한때로 완벽히 빙의되어있다

각자가 모두 특별하고 또 아주 보편적이었던 그날들의 느낌, 마음에 남은 흔적들, 시를 통해 되살아나는 스쳐갔던 생각들. 이런 것들 말이다

 

 

 

시집을 읽으면서 언뜻 유추하긴 했지만 하얀 종이 위에 연필로메모 하며 시를 완성했을 시인의 모습이 충분히 상상이 되었다

서걱서걱한 연필소리가 두근두근한 심장소리를 거치며 한 자 한 자 메모장을 채워가고, 시가 꿈틀대며 태아의 산성을 지르며 세상에 나온다

시인은 바로 그 순간을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쉽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강박이 될 만큼 잦은 아쉬움을 느낀다고 한다

시로 인해 문득 문득 두근댈 수 있는 그런 잠시 멈춤의 시간들-삶의 최고의 기쁨의 순간(창조의 순간)이 숙명적으로 갖는 아쉬움일 것이다

 

 

 

 

 

 

 

 

 

시는 나만의 단어 사전을 만드는 것이다, 숲속의 잠자는 왕자나 공주가 아닌 자신의 사전 속 잠자는 낱말을 깨워 자기 시 속의 주인공으로 만들었으면 한다는 작가의 바람은 얼마나 순수하고 자비로운 것인지 모른다

 

시집을 덮고 난 후 오염되지 않은, 못됨이 하나 없는 마음들로 마음이 깨끗하게 채워진 것 같은 동시에 마치 고해성사를 한 것 같은 해소감과 편안함을 느꼈다

늘 뭔가 제대로’, ‘왕창’, ‘보란 듯이의 허영적 주술에 씌여 살아가는 삶 속에서

작가의 말대로 의 마음에 빙의되어 새싹을 틔운 것 같은 느낌이랄까

 

다람쥐가 두었다 먹으려고 틈틈이 모아둔 도토리들이 울울창창한 참나무 숲을 이룬 것처럼 의 마음에는 이후 자라고 커져서 숲을 이루게 될 시의 씨앗이 들어있다. 그리고 그렇게 커다래진 시의 숲에 싱싱함이, 애벌레들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날개 달린 나비가 되는 순간만 좇기보다 애벌레의 시간을 즐기며 맘껏 노래하겠다는 취지로 이 시집은 세상에 나왔다 

 

나비, 애벌레. 시인도 이런 고전적인(?)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랐지만 그것은 수위가 아닌 적합성의 면에서 모자람 없는 완벽한 표현이다

예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여전히, 날개 자체는 잊고 애벌레의 순간 자체에 몰두하는 마음이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에.

 

 

 

 

 

 

 

 

<최초의 시>

우리가 최초로 쓴 시는 산성産聲

 

잘 도착했어요

열렬히 살아 볼게요

반겨줘서 고마워요

뭐가 될지는 차차 알려 드릴게요

 

신고

기대

떨림

설렘

첫울음에 담긴 말

 

 

 

 

 

<잔소리>

장을 보며 건네 받은 거스름돈도 아니면서

계산한 적 없는데 거슬러 받은 소리

어른은 공정한 거래라 생각하는

나로서는 반갑지 않은

나머지 소리

 

 

 

 

<햇살 유목민>

햇살이 그린 네모난 성역

황제가 왕좌를 차지하듯

침상으로 삼아 햇살 방석에 눕는다

네 다리를 쭉 뻗고 눕는다 왕족 혈통임을 과시하듯

빤히 보는 내 눈길, 사랑이 흐르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걸까?

나노급의 청각을 뽐내며 감긴 눈을 반짝 열었다가 느리게 닫는다

리오 배 속으로 공기가 흘러간 게 보인다.

들락날락, 들숨 날숨으로 만들어진 몸짓 언어

공기는 리오 뱃속을 거닐다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다.

연신 햇살로 데워진 몸속 탐사를 이어간다

리오는 왕좌를 내준 해님에게 배로 불뚝이 춤을 보여 준다

햇살이 또 이사를 간다 리오도 몸을 일으켜 따라가 눕는다

 

 

 

 

<증명하시오>

축구 선수 박지성의 발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골프 선수 박세리의 양말 자국

우등생의 움푹 파인 가운뎃손가락

유명 셰프의 화상 얼룩

 

만년 과장, 우리 아빠의 간

내보일 수 없는 간

 

 

 

 

<쉬운 질문에 답하다>

유명한 건축가가 강연 왔어요

벽돌을 들고

이게 뭡니까?

물었습니다.

저건 누가 봐도 벽돌인데 왜 묻지?

벽돌이라고 대답하면 안 되겠어

청중들이 다들 그런 눈빛으로 입을 다물면

앞에서 말하는 건축가가 얼마나 민망하겠어요

준비한 다음 말로 이어갈 수가 없어요

누군가는 벽돌입니다

말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벽돌입니다

네, 맞습니다. 벽돌입니다.

또 벽돌이지만 벽돌이 아닙니다

바닥이고 교회이고 성벽이 됩니다

 

나는 오늘 징검돌이 되었습니다

강연자가 다음 말로 건너가는 징검돌

오늘 내가 이룬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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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오늘을 살 거야>
지은이 김미희
펴낸이 홍지연 
펴낸곳 (주)우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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