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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 <필경사 바틀비>"안 하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기묘하고 고독한 저항의 페르소나

by 돌냥 202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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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 책은:

한마디로 최근 몇 년간 읽은 소설 중 '가장 기분나쁘고 찜찜한(?) 감정'을 느끼게 했던 작품이다

 

1853년에 발표된 이미 오래된 작품이라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바틀비라는 인물은 현대인에게 흔히 나타나는 우울증적이고 자폐적인 증상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 또는 지인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익숙함을 느끼게 한다

 

소설의 중심이 되는 수수께끼적인 인물과 영구 미제 사건을 다루는 듯한 문체는 마치 스릴러 영화가 미궁의 결말을 맞은 뒤 느닷없이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순간처럼 책을 덮은 후에도 한참 동안 길고 긴 불쾌한 여운을 남긴다

 

절대적이고 명확한 해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고립,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사회적 기대와 개인의 저항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소외와 고립: 바틀비는 그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회와 인간관계로부터 소외된 고독한 개인을 대표한다. 진정한 고립은 위험하고 비참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전달한다는 면에서 과거보다 인간소외화가 훨씬 심해진 2023년의 현재에 더욱 피부로 와닿는 내용이다

 

개성 그리고 저항: Bartleby의 유명한 문구인 "나는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I would prefer not to)"는 모든 현상 유지에 대한 강력한 저항으로 해석된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기대, 규범, 업무의 단조로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바틀비의 모든 순응에 대한 거부 행위는 권위, 자유의지의 한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며 궁극적으로 어떻게 더 의미있는 삶을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연민과 공감: Bartleby의 비참하고 외로운 상황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인간의 고독과 상실감에 대한 동정심을 느끼게 한다. 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바틀비와 소통하기 위한 화자의 고군분투는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담고있다. 갈수록 삭막함 가득한 세상에서 연민과 동정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볼수 있게 하는 여지를 준다

 

자본주의 비판: 19세기 미국 월스트리트 법률사무소라는 배경은 자본주의적인 노동 환경의 비인간적인 특성을 잘 드러낸다. 기계 속 톱니바퀴로 살아가는 각 개인의 지독할만큼 단조로운 노동과 인물들 사이의 감정적 균열을 보여주며 당시 사회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추천대상:

철학과 인간 본성에 관심 있는 사람들 

복잡한 캐릭터 또는 독특한 서술 스타일을 좋아하는 소설 매니아들

근대적 제도(19세기)에 대한 비판적인 탐구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

우울증과 자폐증에 대한 간접 비간접적 경험이 있는 사람들

 

 

 

 

 

 

[책&저자 소개]

소설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의 내레이터(話者)에 의해 진행된다. 월스트리트의 변호사를 맡고있는 화자는 소설 초반 자신의 사무실에 고용된 필경사들인 터키, 니퍼스, 진저 너트의 각각 개성 넘치는 캐릭터에 대해 묘사한다.

어느 날 그는 늘어난 업무로 인해 바틀비라는 새로운 직원을 고용한다. 처음에 바틀비는 조용하고도 근면한 태도로 법률 문서를 필사하며 그의 신임을 받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바틀비는 변호사의 모든 요청과 지시에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거부한다. 나아가 바틀비는 필경사로서의 본연의 업무인 필사 자체를 완전히 거부하며 그저 빈 벽을 응시하며 하루를 보낸다. 바틀비의 노동 파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극단적으로 변해간다. 변호사는 바틀비에 대해 동정심과 의무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업무 효율성, 불복종에 난처함과 분노를 느낀다. 바틀비의 한결 같은 저항(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과 뻔뻔스러운 사무실 무단 거주가 계속되자 변호사는 본인이 사무실을 이전한다. 그러나 새로 입주한 변호사에 대해서도 바틀비의 업무 거부와  퇴거 거부가 계속되고, 바틀비는 감옥에 가게 된다. 이러한 행동은 바틀비의 수동적인 저항을 보여주며, 그의 저항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다.  시간이 흐른 뒤 변호사는 소문을 듣게 된다. 바틀비가 과거 수취인 불명 우편물(Dead Letter)’을 분류하고 소각하는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해고됐었다는 것이다. 사망이나 이사로 갈 곳 잃은 안타까운 사연들을 불태우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가 '안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한 마디로 점점 업무를 거부해가고 연명조차 포기해 버리게 된 뒤에는 자초지종이 있었던 것이다. 변호사의 탄식과 함께 작품은 끝을 맺는다. ", 바틀비여! , 인류여!"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은 19세기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로, 그의 작품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해양 모험 이야기로 명성을 얻었으며,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모비 딕(Moby-Dick)>은 미국 문학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멜빌은 뉴욕에서 출생해 초기에는 선원으로 고래잡이, 상선 선원 등 다양한 일을 했으며 그 경험을 여러 작품에 반영하였다. 초기 작품인 <타이피(Typee)>와 <오모(Omoo)>는 모험소설로 인기를 얻었으나 이후 출간된 <모비 딕>은 당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 후 작품 퀄리티가 일정하게 유지되었음에도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해 점차 문학계에서 소외되었다.
그의 또 다른 중요한 작품 <Bartleby the Scrivener>는 19세기 자본주의 사회가 영리 목적으로 인간을 도구화하는 방식과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철학적으로 조명했다. 그러나 이 작품도 동시대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허먼 멜빌은 20세기 초기에 다시 평가되어 현대 미국 문학의 거장으로 인정 받았으며, 그의 작품들은 인류와 결부된 탐구와 철학적 물음들을 다루고 있어 지금도 많은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돌냥 정리-

 

 

 

 

 

 

<필경사 바틀비>는 형식적인 플롯보다는 바틀비와 그 주변 인물들의 성격 및 심리와 관련된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 이야기는 종종 19세기 자본주의의 비인간적인 반복 작업과 최소 생계 임금을 제공하는 직장 문화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것들이 개인의 목적의식과 정체성에 미치는 소외감으로 해석된다

 

소설에서 바틀비가 가장 많이 내뱉는 대사는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다(I prefer not to-)'이다

일상에서 많이 쓰이지도, 바틀비가 처한 상황에 적합하지도 않은 표현이나 그는 이 말을 계속 반복한다 

비정상적인 행동과 업무 거부 등 바틀비의 상태는 우울증, 거식증 등과 같은 몇 가지 정신 질환으로 진단될 가능성이 있다

 

바틀비는 상사의 질문에 대한 대답 외에 절대로 다른 말을 먼저 하지 않는다 

그는 생강과자로 끼니를 대신한다 업무시간에는 화장실도 가지 않고 자기 자리를 목석처럼 지킨다 

신문을 읽지도, 식당에 가지도, 맥주를 마시지도, 차나 커피를 마시지도 않는다 

소설의 화자인 변호사는 어느 새 무의식적인 분위기에 눌려 그의 기행에 동조하게 된다 

바틀비가 언제나 기척도 없이 칸막이 뒤에서 칙칙한 벽만을 바라본 채 공상을 하며 서 있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변호사는 그에게 아주 사소한 잡일조차 부탁하기 두려워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의 병적인 침울함에 대한 서술자의 진심 어린 동정심은 두려움으로, 혐오감으로 변하게 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안 하는 편을 택하다니." 
나는 크게 흥분하여 일어나 성큼성큼 방을 가로지르며 그의 대답을 되풀이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 머리가 어떻게 됐나? 여기 이 서류의 검증을 도와주게. 자, 여기 있네." 
내가 그에게 서류를 들이밀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나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아무 생각 없는 듯 태연했고, 회색 눈은 흐릿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동요해서 생긴 주름살 한 줄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태도에 최소한의 불안, 분노, 성급함, 무례함이 있었다면, 다시 말해 정상적으로 인간다운 데가 있었다면, 나는 필시 그를 난폭하게 사무실 밖으로 내쫓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더라도 실제로는 소석고로 만든 창백한 키케로 흉상을 내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잠시 그를 응시하며 서 있었다. 그는 쓰던 것을 계속 써나갔다. 나는 곧 내 책상으로 돌아가 앉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야.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까? 하지만 업무가 나를 재촉했다.
나는 이 문제를 다음에 한가할 때 처리하기로 하고 일단은 잊기로 했다. 

 

 

 

 

 

 

 

'필경사(筆耕士)'는 복사기가 없는 과거 원고를 필사해 돈을 받았던 직업이다 소설 속의 필경사는 변호사가 처리해야 할 수많은 서류 작업 및 심부름을 대신하여 해주는 일종의 필기 노동자로, 과중한 업무량에 비해 보수는 극히 적었으며 근무환경도 좋지 못했다.

 

작가 멜빌의 인생은 열두 살에 아버지를 잃은 후 계속된 경제적 어려움과 작품의 실패로 늘 궁지에 시달려야 했다

월스트리트에 실제 성벽처럼 높이 세워졌던 벽, 사무실의 벽, 고층건물의 외벽, 구치소의 벽, 모든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오로지 책상 앞에 꼼짝없이 붙들린 채로 헐값에 글을 쓰던 그의 처지는 주검과 같이 창백하고 기계적인 바틀비와 이미 닮아 있던 건지도 모른다

 

작품 전체에서 서술자는 거의 전지적 시점에 가까운 방식으로 태도와 행동을 서술하지만, Bartleby의 동기와 내면에 대해서는 본인이 그릇된 해석을 할 수 있음을 인정하며 오묘한 관찰자 역할을 맡는다 

애매하고도 열려있는 이러한 문체는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각 인물의 심리 상태와 줄거리 흐름에 대해 각자 더 자발적으로 깊이 더듬어 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바틀비는 죽는다. 마지막 항의 행동으로 바틀비는 먹는 것을 거부하고 감옥에서 굶어죽는다 

단지 더 이상 살지 않는 것을 ‘선호(prefer)’함으로써, 바틀비는 궁극적으로 치명적이고 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개성을 발현한다 그가 선호하는 것이 결국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주어진 삶에서 ‘선호하는 대로’ 살 수 없다면 그는 분명 전혀 살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해보인다.

 

 

 

 "I would prefer not to(하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

<필경사 바틀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반복되는 문구는 바틀비의 거절 문장인 "I would prefer not to"이다.

이 문구는 바틀비가 지시를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사용하며, 작가가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거절하는 행위로 작품의 중심 주제인 개인의 저항감, 비운의 상태, 그리고 권위에 대한 비판적인 도전으로도 해석된다

 

 

 

 

 

 

 

 

내가 최초로 느꼈던 감정은 순전한 우울과 진심 어린 동정심이었다.
그러나 바틀리의 쓸쓸함이 내 상상 속에서 점점 커져갈수록, 그만큼 바로 그 우울은 두려움으로, 그 동점심은 혐오감으로 녹아들었다. 비참함에 대한 생각이나 비참한 광경은 어느 선까지는 우리에게 가장 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몇몇 특별한 경우 그 선을 넘어서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동시에 끔찍한 진실이다.
그 이유가 예외 없이 인간의 마음이 선천적으로 이기적인 탓이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과도한 구조적 악을 고칠 희망이 없다는 데 기인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동정심은 때로 고통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동정심이 효과적인 구제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상식은 영혼에게 동정심을 떨치라고 명한다.
그날 아침에 본 것으로 인해 나는 그 필경사가 선천적인 그리고
치유할 수 없는 장애의 희생자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그의 육신에 물질적인 원조를 줄 수 있겠지만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육신이 아니었다.
고통받고 있는 것은 그의 영혼이었으며 나는 그의 영혼에 닿을 수 없었다.

 

 

 

이 작품은 발표 당시 사람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독특한 설정과 바틀비의 낯선 캐릭터성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삶의 의지를 모두 포기한 것처럼 모든 자본주의적 행위에 수동적으로 저항하는 바틀비의 모습은, 살아생전 소위 '팔리는 글'을 쓰지않는 길을 택함으로써 출판계와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던 허먼 멜빌 자신의 투영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함의와 해석들이 내재되어 있는 작품의 가치가 점차 인지되었고, 20세기 중반 들어 미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는 등 많은 독자들과 비평가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필경사 바틀비 Bartleby the Scrivener>는 지금까지 여러 세대를 관통하며 현대의 슬픈 부조리와 인간의 고립, 정신적 고통에 관한 비유, 자본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여러 철학적 논의 등으로 인정받고 있는 매우 독특하고 복잡한 작품이다

 

 

 

 

 

 

바틀비(Bartleby) 캐릭터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팁들 :

바틀비의 캐치프레이즈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I would prefer not to)" 는 그의 페르소나의 핵심이다
이 발언은 그의 만연한 무반응을 반영하고 그가 사회적 기대와 압박을 느끼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는 말없이 벽을 마주하고 일을 거부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 행동은 그의 이탈, 소외 및 사회적 규범에 대한 저항을 암시한다
작품에서의 벽은 일종의 심볼로 사용된다 벽은 바틀비의 고립, 고통, 순응 거부 등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를 감옥에 가두듯 붙잡고 있다

바틀비는 작품 전반에 걸쳐 조용하고 피곤해 보인다 이는 그의 우울감, 존재감의 부재, 자신의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와 절망을 드러낸다

시간에 따라 바틀비의 고용주인 서술자 변호사의 혼란과 분노가 증가하며 다른 캐릭터들의 반응을 통해 바틀비의 특성이 상대적으로 잘 강조된다
그는 의도적으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캐릭터로 설계되어 보는 이에 따라 바틀비를 각자 고유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된다.

 

 

 

 

 

 

 

질문:

바틀비는 실제로 우울증 또는 자폐증을 앓았던 걸까?

소설 속에서 바틀비의 정확한 정신 상태는 작품에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행동 패턴과 소통의 부재를 근거로 일부 독자와 분석가는 그가 우울증이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 (ASD)와 같은 정신 장애를 앓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바틀리가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라는 말을 후렴구처럼 달고 삼고 식사를 하지 않고 종일 벽을 바라보고 있는 행동은 다소 우울증의 증상(부정적 사고, 에너지 감소, 의욕 상실 등)과 일치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의 특성상 일반적인 질병 카테고리 내에서 바틀리의 정신 상태를 명확하게 분류하기는 어렵다. 바틀리의 의사소통 문제와 사회적 상호 작용의 어색함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특성과 유사하기도 하나 이것 또한 결정적인 증거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작가 허먼 멜빌은 수동적 저항, 개인의 고립 및 사회 경제적 제약과 같은 더 광범위한 주제와 철학에 더 초점을 맞추어 독자들에게 다양한 해석을 위한 의도적인 모호함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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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경사 바틀비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
허먼 멜빌 Herman Melville 지음 / 하비에르 사발라 Javier Zabala 그림/ 공진호 옮김

출판사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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