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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의지에서 놓여난다는 것<삶이 불쾌한가-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성취는 단순한 진통제다/의지 자체를 떠나는 길

by 돌냥 202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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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심오한 통찰력을 살펴보고 의지의 맹목적 움직임의 구속에서 벗어난 삶을 추구해보세요. 인간 존재의 복잡성, 의지의 끊임없는 추구, 내면 갈등의 본질, 의지의 허무함, 불교에서 인식하는 고통 등은 삶의 본질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존재의 본질을 파악하는 쇼펜하우어의 사유를 자극하는 여정에 함께 참여해보세요.

 

 

의지에서 놓여난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을 밖에서 보면 얼마나 무의미하고 보잘것없이 흘러가고, 안에서 갖는 느낌으로도 얼마나 숨 막히고 제정신이 아니게 흘러가는지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이들의 삶은 빛바랜 동경이자 괴로움이고 보잘것없는 일련의 생각을 품고 인생의 사계절을 지나서 죽음을 향해 꿈결처럼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것이다.(58절)

 

인간은 살아있음의 고통 속에서도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 삶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지만 삶이 중단되는 것을 제일 두려워하고 오래 살기를 바란다.

 

의지의 움직임은 인간을 고려하지 않는데, 인간에게는 늘 원하는 방향이 있기에 문제가 된다. 의지의 움직임이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인간은 고통을 겪게 된다. 인간의 문제는 바로, 이 맹목적인 움직임에 대한 이러저러한 판단을 다른 동물보다 훨씬 많이 한다는 것이다. 동물은 본능에 충실할 뿐 자기 자신을 문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을 가진 존재이면서도 스스로 본능에 충실한 행동을 할 때 자괴감을 느낀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언어폭력을 가하는 가족 탓에 힘들다고 해보자. 이 사람은 언어폭력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나는 왜 가족에게 이러한 언어폭력을 당하고 있는가, 가족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나를 가장 이해해주고 격려해주어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가족에게 이러한 언어폭력을 당하는 것은 고통이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고통스럽기도 하다.

 

의지의 내적인 충돌을 인식(1)하고 의지의 본질적인 헛됨을 인식(2)하는 것을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진정제라 한다. 이 두 가지 인식이 의지의 진정제로 작용하는 것인데, 이 인식은 고통으로 인해 가능해진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고통은 인간을 힘들게 하기는 하지만 사태의 본질을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즉 고통에 대해 이 고통은 왜 나에게 오는가 하는 추가적인 생각(표상)을 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맹목적인 의지로 인한 고통이 있음을 수용하면 고통으로 인해 많이 고통스럽지는 않게 된다. 이 지점은 불교와 상통한다.

 

“불교에서는 희로애락이 고통이라고 한다. 이 중 분노와 슬픔이 고통인 것은 모두가 안다. 그런데 기쁨과 즐거움은 왜 고통인가? 기쁨과 즐거움이 고통인 이유는 우리가 기쁨과 즐거움이 ‘그치지 않았으면’하고 바라기 때문이다. 기쁨과 즐거움 자체는 고통이 아니나 이것이 중단될까 봐 두려워지기 때문에 고통이 된다. 이 말은 거꾸로, 분노와 슬픔에 대해서도 ‘이것이 중단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덜 고통스러워진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성취를 이루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성공을 지향한다. 그러나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현실에서의 성취는 진통제에 불과하다. 삶이라는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진통제 말이다. 맹목적인 삶에의 의지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존재는 물론 자기 자신도 파괴할 수 있다. 이기주의는 결국 나라는 개체에 주목하는 것이고, 나와 너의 구분에 매몰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의지의 맹목적인 움직임을 관조하면 나도 너도 결국 의지의 맹목적인 움직임의 대행자일 뿐임을 수용하게 된다.

 

‘저 사람 정말 이해 안 돼!’하면서 우리는 괴로워 한다. 이 경우 저 사람이 나를 괴롭히려고 작정했다고 느끼게 되고, 그래서 더욱 괴로워진다. 그런데 그 사람도 자신을 움직이는 의지의 맹목적인 움직임에 의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나의 경향성이 있듯이 그에게도 어쩔 수 없는 그의 경향성이 있다.(현실에서 법적, 윤리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에게 구현된 의지의 경향성을 의식하고 조절할 의무가 개인에게 있으므로 현실에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즉 그도 의지가 그렇게 구현되어 그렇게 살고 나도 의지가 이렇게 구현되어 이렇게 사는 존재인데 결국 너나 나나 모두 의지의 맹목적 움직임에 따라 고통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의 고통이 나와 무관하게 여겨지지 않는 마음, 즉 동고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유 없이 움직이는 의지의 작용에 따라 기뻐하고 슬퍼하기 마련인 인간의 기본 조건을 파악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이 의지의 맹목성에 휘둘리는 것 자체가 문제임을 알게 된다. 그러면 의지의 작용에 지나치게 영향 받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간수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단순한 정신승리에 그치지 않고 의지 자체를 떠나는 길, 그리고 개체화의 원리에 매이지 않고 동고의 마음을 가지는 길에 나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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