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누구보다 자주 마시는 사람이면서도, 잊고 있었다 차가 개인 취향에 따른 기호식품(커피, 담배 같은)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소화불량이 많았던 나는 차를 필요(진정, 소화작용)에 의해 마시기 때문에 차를 마셔온 기간과 양에 비해 차에 대한 전문성은 기술과 장비면에서 모두 떨어지는 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차에 매일 가까이 붙어있으면서도 나 또한 차를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들과 비슷한 차에 대한 막연함, 어려움을 동일하게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와중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막연함이 있는 와중에 그래도 취향에 대한 재미는 있어서 나름 다양한 차를 시도해왔다는 것,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날 그날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차를 선택해 마시는 ‘즐김’을 누려왔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차를 마실 때 가장 필요한 건 ‘나를 인지하고 지금 이 순간을 더욱 풍요롭게 즐기려는 마음’이기 때문에.
차를 마시는 것을 흔히들 정신을 가라앉히고 숨을 고르는 쉼의 형태로 말하지만 생각해보니 내 경우에는 커피 대용의 용도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차를 계속 찾아왔던 것은 단순히 업무나 학업에 필요한 각성, 집중 효과뿐 아니라 피로와 불안의 중간 중간 본능적으로 환기와 휴식(잠깐 몇 모금 마시는 몇 초에 불과할지라도)을 요구했던 몸의 원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차를 본능적으로 마시는 첫째 이유가 신체적인 이유라면 또 하나는 루틴이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같은 의미가 되겠지만 나 역시 저자와 같이, 또 아침 기상마다 차를 마시는 많은 사람들과 같은 이유로 매일의 고정된 의례, 일상적인 절차로서 차를 마신다. 잊고 있었는데 이것은 신체적 이유와는 다르다. 학창시절부터 지속해온 차를 마셨던 이유와 달리, 아침마다 빈 속에 차부터 마시는 것을 의식적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약 십 년 전, 결혼한 후부터다. 어딘가에서 성공한 사람 또는 일상이 흐트러지지 않고 단정한 삶에는 늘 그들만의 반복된 루틴(아침 침구 정리 등 가장 전형적인 것부터)이 있다는 소릴 어디서 주워들은 후 부터는 그럼 나는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만만한(?) 차를 마시기로 홀로 정하고(새로운 것 같지만 극소음인 특유의 선천적 소화불량에서 기인한 이유는 여전히 미세하게 남아있다..ㅎ)거의 유일하게 깨뜨리지 않고 날마다 반복하는 아침 루틴으로 지속해오고 있다.
나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주는 무료함에 대해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느끼며 굉장히 크게 반응하는 사람인데 내 경우에 차를 마시는 것은 때가 되면 책을 찾아 읽는 것만큼 ‘스스로 원해서 자동적 자발적으로 반복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규칙과 반복이 주는 권태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지 모른다. 그런데 더 가장 큰 이유가 있었으니 흔들리는 마음과 날아다니는 감정을 때마다 차분히 잡아주는 것이 바로 차를 마시는 것이었던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지 않았다.
차를 마신다는 것이 신기한 것은 단순히 따듯한 무언가를 천천히 마시는 행위여서가 아니라 작가의 말처럼 ‘탄탄한 일상을 만드는 도구’라는 것을 매번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곱씹을수록 참 괜찮은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루의 속도를 나에게 맞추는 영점 조절의 시간’이 바로 차를 마시는 순간이다.
그렇게 차를 마시고, 나를 다스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요.
짧은 생이지만 할 수 있는 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서, 그리고 내일 또 다시
최선의 나이기 위해서 차를 마십니다. 좀 더 잘 살아보고 싶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차 하나로 시작해서 인생을 사는 방법으로 마무리되는 묘한 글을 읽고 계십니다.
너무 멀리 간 것 같으니, 찬장에 놓인 차를 꺼내보세요. ‘아무렇게나’ 우려보는 거예요.
나는 차를 주로 혼자 마신다. 쉽게 마실 수 있는 티백 외에 찻잎에 진심이었던 친구가 있었는데 이십대 한창 방황하는 시기에 우리는 술이 아닌 차를 예쁜 찻집을 찾아다니며 그렇게 많이 마셨었다(생각해보니 매사에 느려터진 우린 차에서 만큼은 얼리어답터(?)였던 것 같다).
본문 중에 함께 차를 마실 때면 ‘종종 마주하는 침묵의 순간마저 공기가 어색하지 않아서 좋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개인적으로 정말 많이 공감하게 되었다. 아무 말없이 찻잎을 우려내고 차기에서 찻물을 따라내는 일련의 동작에 침묵이 동반될 때, 담긴 찻물의 영롱한 표면을 들여다보며 찻잔을 천천히 기울여 한 모금을 곱씹어 삼킬 때 그 모든 포인트에 말이라는 존재가 없을 때 그것이 전혀 불안하거나 부자연스럽지 않은 것. 차를 마시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특히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의 생체리듬에 익숙한) 그런 공백이 어색하거나 답답할 수 있겠지만, 차를 스스로 원해서 마시는 어떤 사람이든 그런 여백에서야말로 타인과 함께 있는 순간에서도 자기만의 깊은 상념에 들어갈 수 있는 무의식의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의 주제가 다양해지고 깊이도 집중도 있게 유지되기도 한다.(부작용이라면 그 덕분에 네다섯시간이고 떠들어재낄 수 있다는 것. 각성효과 충만한 커피 또한 마찬가지이겠지만)
디테일하고 친절한 저자의 초대(어떤 초보자라도 큰 거부감이 없을 만한 난이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책의 중반과 후반으로 이어지는 차를 마시는 구체적인 과정과 도구에 대한 호기심 어린 몰입으로 이어진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듣는 인문교양 수업처럼 같기도 하고, 일단은 차의 초심자에 대한 눈높이 ‘전도’ 때문인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변화가 바로 온다는 것이 핵심이다.
일상에 끌려다니지 않고, 주체적으로 나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차를 마시면서요.
나를 위해 정성 들인 차 한 잔은 이제 만족스러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매일의 일용한 양식이 되었습니다. 화려한 소리가 가득한 세상에서 혼자만의 오롯한, 조용한 차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자연스레 다기를 데우고 차를 우리고 내리고 향을 맡는 일상의 순간들,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는 용기. 어쩐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여러가지 영감이 많았지만 책을 보며 내 수준에서 ‘아주 간소하게’ 시도해보기로 한 것은 크게 세 가지다.
머신에서 핸드드립으로 옮겨탄 뒤 매일 줄창 쓰고있는 클레버로 차를 우려본다/ 난이도가 있어보이긴 하지만 한번도 사용해본 적 없는 ‘개완’을 산다(매번 새로 사면서도 결국 귀찮아서 처박아 놓은 다관세트보다는 내 기준에서 더 간편하고 실용적이어 보임->결국 스텐 티 필터로 돌아올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무엇보다 잎차를 우릴 때 냄새를 (쫌..! 성미가 급하고 천박해서 차 마실 때 어째 한번도 향을 깊이 제대로 음미하는 여유조차 스스로 준 적이 없을까 이십년째 차알못이다)맡아 본다, 찻잎을 자세히 관찰해본다 (이제는 차 좀 마시는 사람답게 시각과 후각을 통해서도 차를 음미해본다)
관심은 많았지만 바라본 적은 없다는 이상한 모순의 대상으로 반평생을 함께 해온 차라는 존재. 요가를 백날 영상으로만 보고 하다가 실제로 3개월을 요가원에서 배웠을 때의 느낌이 또 (완전히 )달랐듯 차 또한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취향이 있으면 굳이 정해진 격식이 아니더라도 여러 경로들을 찾아서 더 배우고 더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차를 마시는 시간이 앞으로는 또 어떤 의미로 내 삶의 한 부분을 채워가게 될 지 기대하게 되었다. 내게 차가 그러하듯, 일단 매우 실용적이고도 따듯하고 쉼이 되는 환기를 주는, 차 우려내듯 한페이지 한페이지가 아주 정성스러운 양서였다.
[참고]
리추얼 라이프: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 의례라는 의미의 ‘리추얼(Ritual)’과 일상을 뜻하는 ‘라이프(Life)’가 합쳐진 말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규칙적인 습관을 의미한다 (출처 네이버 시사 상식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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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차를 마신다면,> - 차 한 잔의 루틴 시작하는 법
지은이 맥파이앤타이거
펴낸곳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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