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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 雜記

[미술치료]아이가 '나는 그림을 못그려요'라고 하는 이유/로웬펠드<인간을 위한 미술교육>제2장 초등교육에서 창의적인 활동의 중요성/미술을 통한 자아동일화

by 돌냥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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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외부세계로부터 아무 간섭 없이 성장할 수 있다면 그들의 창의적 작업을 위햐서 어떤 특별한 자극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또 어린이들에게 깊이 잠재되어 있는 창의적 충동을 억제하지 않고 활용하게 하면 자기만의 표현에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창의적 자신감은 문명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광고 만화 교육 등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자유로운 창작에 필요한 자연적인 요소들을 발굴하여 문명화에 의해 파묻혀 있던 것들을 다시 되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린이들이 "나는 그림을 못 그리겠어요"라고 할 때마다 어떤 장애가 그들의 생활 속에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장애는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미술교육의 어려움과 장애는 대부분 어른의 생각과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는 어린이의 방법 사이의 모순 때문에 발생한다. 

교사가 어린이의 경험이 아닌 객관적인 사물에 관련시켜 어떤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어린이 자신의 표현을 크게 방해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문명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어른들의 불필요한 간섭이 없는 에스키모 아이들은 그림 그리기에 대해 못그린다는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린 아이가 나는 그림을 못그려요 라고 말하는 것은 부자연스럽고도 부작용적인 일이다. 왜 현대 문명 사회의 아이들에게 왜 이런 장애가 일어나는 것일까? 조기학습, 조기교육 때문이다. ‘머리’를 너무 빨리 키우는 것이다. ‘눈’과 ‘실제 나의 능력’과의 갭이 크면 클수록 불행하다. 눈은 너무 높고 나는 실제로 그 수준만큼 할 수 없으니 계속 불행할 수 밖에 없다. 갭이 크면 하기 싫어지고 결국 도태된다. 눈이 낮으면 만족을 쉽게 하게 되고 신나니까 더하고 잘하게 된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눈이 높지 않으면 쉽게 만족하고 아이들에게 더 쉽고 자주 칭찬을 주고 아이들의 엄마의 요구와 별개로 더 앞서가게 된다. 어른들 욕심에 의한 선행학습은 머리만 개념만 키우는 불행의 시작이다.

 

 

1. 틀에 박힌 교재의 영향

헤일만(Heilman)의 연구는 도식적인 교재 사용의 해로운 영향에 대해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통계자료는 교재에 제시된 도식들이 창의적인 작업에 의한 일반적인 성장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러셀(Russell)과 와그만(Waugman)의 실험 연구에 따르면, 칠하기 그림책(coloring book)에서 새를 접해본 어린이들 과반수가 처음으로 느꼈던 새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제시된 도식화 양식과 비슷하게 바꿨다고 한다.

많은 교사와 부모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칠하기 그림책을 좋아해요"라고 말하곤 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 타당한 말이다. 그렇지만 어린이들 대부분은 자신들에게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이 항상 그들에게 유익한 것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야채보다는 단 것을 더 좋아하는데 이것이 어린이들의 식사를 달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교사가 어른의 눈으로 아이들의 그림에 계속 간섭하는 것은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색칠하기 책을 그린 아이의 그림이 어떻게 변하였는지를 보면 그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우리 애가 사탕을 좋아해요 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사탕을 계속 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미술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예를 들면 선 안에 색칠하기)을 편식하는 것이 꼭 유익하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다만 아이들에게 환경(넛지)로서 제공하고, 아이들이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필요하다.

 

 

2. 어린이의 자기표현

여기서 이 용어의 자기표현(self-expression)은 일반적인 아이디어와 사고의 표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내용이 아니라 표현양식에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표현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표현하느냐'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구체적 표현대상이나 의미가 없는 난화(scribble)나 옹알이(babble)도 잠재적으로 하나의 중요한 창조형태이며 자기 표현 방법일 수 있다.  

→제1장에서 나온 ’주제’와 ‘표현양식’을 구별하라는 내용과 연결된다. 주제는 무엇을 그렸냐이고, 표현양식은 어떻게 그렸냐이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떻게’이다. 그림검사를 할 때도 사람들은 ‘무엇’을 그렸느냐를 궁금해하고 그것에 집착한다. 그러나 본래 그림검사는 무엇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그렸냐는 것을 보는 것이다. 주제에 대한 분석 자체는 굉장히 타당도가 낮다. 내담자가 그린 구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 반면 어떻게 그렸느냐에 대한 주목은 내담자의 상태에 대한 더 많은 타당한 근거들을 제공해준다.

 

창의적 행동의 단계가 본능적일수록 형식적인 영향이나 간섭의 효과는 점점 약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린 나이로 갈수록 그리고 성인이라 하더라도 본능적으로 작업할수록 형태에 대한 간섭을 받지 않게 되고 다른 예술 표현적 요소가 더 중요해진다. 로웬펠드의 이론과 크레이머의 이론을 접목하여 발달단계를 세분화시킨 ETC 수업에서 보면 아랫 단계의 표현을 할수록 더 본능적이고 솔직한 작업이 나온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내담자가 솔직한 자기 표현이 계속해서 잘 안 나오는 경우 난화기 단계의 작업들을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옹알이 하는 어린아이에게 정확하게 발음하도록 부추기거나 난화기의 아이에게 사실적으로 그리도록 요구하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이런 경우에 모두 어린아이는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게 될 것이며, 이는 그들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성장에도 장애가 될 것이다.  

→옹알이 단계가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언어 발달에 매우 중요하기에잘 받아주는 것 처럼, 난화기 단계 역시 동일하다. 말하자면 그림에서의 옹알이 단계와 유사한 것으로, (아이가 무엇을 그렸는지 어른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아이도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을 지라도) 이 단계는 그들의 긍정적인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

 

 

 

3. 어린이의 자기적응

신체 동작을 시각적 경험과 관련시켜 조절하지 못하는 난화기의 어린이에게 대상을 명확한 형태로 묘사하도록 요구한다면, (대상과의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그런 표현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표현방법인 '난화에 대한 자신감도 상실'하게 될 것이다.  

→ 어린이 입장에서 계속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그들의 능력에서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자꾸 어른의 관점에서 평가하면 아이들이 결국 좌절하고, 미술이 재미없어지고 그저 ‘나는 그림을 못 그려’ 하는 생각만 낳게 할 수 있다.

난화기 아이들은 사람이든 나무든 형태를 제대로 못그리는 나이에 대상을 명확히 묘사하도록 요구한다면 지금 할 수 있는 난화에 대한 자신감도 상실된다는 말이다. 토들러 대상으로 미술을 진행한다면 형태를 목적으로 한 내용은 적합하지 않다. 학부모와의 라포 형성을 해야 동상이몽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초대는 할 수 있다. 형태가 나오지 않는 난화기 아이들도 형태에 대하여 살짝 살짝 자극이 될 수 있는 작업들을 해주어야 다음 단계로 진행될 때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4. 미술을 통한 자아동일화의 중요성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웃의 요구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능력을 대부분 상실했다. 자아동일화(self-identification)의 능력 부족이 늘어나는 원인은 산업과 교육의 영향에서 찾을 수 있다. 대량 생산은 명백히 개별적인 자아동일화에 영향을 주지 못하며, 대중교육 또한 겉으로 보기에 자아동일화에 기여하지 못한다.

자아동일화는 창의적 표현의 매우 본질적 요소이며 이러한 요인들과 동일화하지 못하면 미술표현은 가장 근본적인 본질, 즉 창의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 공감과 이해와 비슷한 용어다. 아이들이 자기 경험을 솔직하게 표현했을 때 이것이 바로 자아동일화다. 자아동일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킬만 따지면 진실된 터칭이 될 수 없다.

솔직한 경험을 표현하고 몰입이 일어날 때 자아동일화가 일어난다.

 

1)가르침에서의 자아동일화

-교사는 자신과 자신의 욕구보다는 어린이의 욕구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교사 자신이 어린이의 신체적, 심리적인 욕구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만일 신체적인 욕구가 단순히 근육운동 감각에 연유한다는 사실을 교사가 알게 되면, 그는 그런 어린이에게 시각적인 형상(visual imagery)으로 더 이상 동기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 교사가 아이에게 자아동일화(공감능력)가 되지 않으면 아이의 몰입에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없다.

 

2)미술경험과의 자아동일화

교사들이 효과적인 동기부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가 자신의 작업 활동과 동일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흔히 그런 어린이들은 자신의 작품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계속해서 불만을 가진다. 어린이들은 작업과정보다는 외관상으로 보이는 최종작품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한다. 자신의 활동에 대한 정서적 유대감을 잃어버리고, 단지 다른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의 '마음에 들게' 하려고 애쓴다. 어린이는 반드시 자신의 경험에 먼저 동일화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표현하려는 충동은 강렬한 경험을 통해서만 오기 때문이다.

→ ‘잘 그려보이도록’ 그리는 미술교육이 아니라 촌스럽고 유치한 그림일지라도 진실된 자신을 표현하도록 도와야 한다. 아이들 중 외관과 결과를 더 중요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주일 중 한시간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 상황(한계)을 인정하고 하는 데 까지 하자 하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 이 사회의 모든 것들이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고 외부적인 가치를 계속 주입시키기 때문에 아이들 역시 물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적어도 미술시간만이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숨쉴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 넌 그릴 수 있어” “얼마나 예쁘게 그렸나 보자”라고 말하는 것은 어린이의 무능함에 대한 주의를 ~ 아이는 반드시 자신의 경험에 먼저 동일화할 수 있어야 한다.

무분별한 칭찬은 오히려 아이를 더 좌절시킬 수 있다. 자아동일화를 쉽게 얘기하면, 크레이머가 말한 ‘미술이란 삶의 경험과 동등한 것을 창조하는 것’ (여기서 인간 경험의 3요소는 생각 감정 행동이다)을 작품 속에 담게 하는 것이다.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했던 것을 기억나게 하고 끄집어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분 생각 행동과 감각에 대해 발문하여 생각, 감정, 행동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3)미술매체와의 자아동일화

유아에게 어떤 음식이 가장 좋은지 알아내기 위하여 무작정 많은 음식을 차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유아기에는 옳고 그른 표현에 도움이 되는 재료와 해가 되는 재료에 대한 판단력이 없다. 그런나 심리학자들은 어린이에게 정신적, 정서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대부분 이런 유아기에 결정된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 어린 아이에게 좋은 음식을 다 주지 않는 것처럼 아이의 상황과 발달단계에 따라 도움이 되고 안 되는 것을 구별하여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 맞추어 선별된 도움이 대상 안에서는 아이가 선택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매체를 선택하여 아이의 자아동일화를 촉진시키고 정서를 건강하게 하는 지 알 수 있어야 한다. 큰 틀에서의 매체를 교사가 선택하고 그 안에서의 세부재료는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게 하도록 한다.

 

4)제작기법과 제작순서와의 자아동일화

난화기의 어린이가 크레용이나 두꺄운 템페라 물감을 다룰 수 있다고 하더라도, 흘러내리는 수채화물감은 칙칙한 덩어리가 되어 어린이의 움직임을 분간할 수 없게 한다. 자신의 동작을 따라가거나 조절할 수 없고 동작과 동일화할 수도 없는 어린이는 그러한 기법에 의해 실망하거나 좌절하게 될 것이다. 어린이는 자신의 근육활동의 충동을 쉽게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미술매체를 필요로 한다. 

사용되는 기법은 어린이가 원할 때 언제든지 반복할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 수채화물감은 농담과 색조가 너무 쉽게 변하여, 포스터 물감처럼 손쉽게 다룰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평범한 8살 어린이의 자유로운 미술표현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볼 수 있다. 

→ 미술은 ‘가르칠 수 있는’가? 미술을 ‘가르쳐도 되는’가? 1.물고기를 잡아서 주는 것은 아니다. 2.물고기를 강에서 잡을 때는 낚시로 잡고, 계곡에서 (송사리를) 잡을 때는 뜰채로 잡아라고 알려준다.

그러나 엄마를 그릴 땐 이렇게 그려, 꽃을 그릴 때는 이 재료를 써, 이것은 아니다. 정답이 아닌데(미술에 정답이 없는데)정답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낚시대, 통발, 뜰채 등 도구의 종류를 알려주는 것은 지식이기 때문에 알려줄 수 있다. 그리고 세부적인 낚시대의 사용법도 알려줄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 낚시대와 뜰채를 쓸 것인지는 아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미술교육은 결국 물고기를 잡는 ‘다양한 방법’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불투명 수채화가 더 적합하다. 고학년이 될수록 수채화물감의 번지는 성질을 발견하고 활용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미술매체 선택과 발달에 대한 다섯가지 사항

1. 교사의 역할은 어린이의 성장과 자유로운 미술표현을 고려해 어린이가 미술재료를 사용할 준비가 거의 다 되어 있을 때, 적당한 재료를 판단하여 제시하는 데 있다.

2. 모든 재료와 기법은 어린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3. 교사는 모든 어린이가 스스로 기법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적당한 기법을 찾아주는 교사의 어떤 도움도 어린이의 개별적 접근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4. 미술재료와 그것을 다루는 솜씨는 단지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기법은 올바른 시기에 사용되어 자아동일화하려는 어린이의 욕구를 도와주어야 한다. 

5. 어린이의 욕구에 알맞는 여러 종류의 재료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다양한 제작순서에 접할 수 있게 하며, 다양한 가능성으로 어린이의 감수성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5)감상과 자아동일화

어떤 수준의 것이든 미술은 인간 정신(경험)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미술은 미술가 자신과 그의 환경에 대한 관계의 표현이며, 결코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작가 경험의 표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와 우리 자신을 동일화시킬 수 있을 때에만 그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다.

→ 작가가 무엇을 그렸을 때는 설사 그것을 사실적으로 그렸더라도 그 사물 자체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경험)’을 표현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꼈는지를 표현한 것이다. 친구를 그릴 때는 친구에 대한 감정, 기분, 추억을 그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작품을 볼 때 작가의 입장에서 자아동일화를 해보면 더 좋은 감상이 될 수 있다.

 

(1)감상자의 수준

다음과 같은 질문들, 즉 “이 그림이나 대상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감정)”, “그것이 당신에게 무엇을 생각나게 하는가?(생각)”, “당신은 그것을 좋아하는가? 왜 좋아하는가?

→ 아이들의 작품 감상을 돕는 것은 결국 경험에 대한 질문들이다. 생각, 감정, 행동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발문이다.

 

(2)표현주제

어린이가 관심이 없는 주제를 선택하거나 그와 관련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주제를 선택하게 되면 그것과 동일화할 수 없다. 창의적인 활동에서 표현에 대한 충동은 일반적으로 경험의 강렬함의 정도에 달려있다. 경험의 강도가 클수록 표현에 대한 욕구도 강해진다.

단순히 그림(작품)의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감상하는 것은 별로 가치가 없다. 미술가의 의도와 동일화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우리는 그의 작품을 보다 잘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 사랑하면 시인이 된다는 말처럼 작가들도 실제 사랑을 할 때 작업이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의 발달수준과 환경(지역)을 잘 생각하면서 쉽게 동일화 할 수 있는 주제를 잘 선택해야 한다. 작품을 감상함에 있어서도 즉, 작가의 경험에 대한 나의 경험을 묻는 것이다.

 

(3)표현방법

작품의 주제, 색상, 표현방법 어떤 것이든 자아동일화를 일으키는 개별 요소가 될 수 있다. 작품감상도 결국 난이도이기 때문에 작품을 이해하고 자아동일화할 수 있는 정도가 각자 다를 수 있다.

 

 

6)사회 적응을 위한 자아동일화

이 사회에서 잘 적응된 인간으로 서로 협력하면서 살게 하는 것창의적으로 사회에 기여하게 하는 것은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왔다.

→ 로웬펠드 뿐 아니라 현재에도 이 두 가지를 잘 조화시키는 것이 유효하다. (크레이머의 범주화 지각과 영역 지각) 너무 집단에 소속되고 룰을 따르는 것으로 점철된 사람은 삶이 지겹고 뻔하고 생생하지 못하다. 반면 완전히 개성을 추구하고 룰을 지키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감옥에 갈 수(?) 있다. 우리는 작품을 볼 때 너무 뻔하지도, 너무 공감이 안되지도 않은 그 중간 어느 지점에서 조화됐을 때 그림을 예술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 정신적인 건강 또한 마찬가지다. 인재의 조건 역시 공감소통능력과 창조력이다.

 

 

 

5. 미술교육에서 통합의 의미

1)통합된 경험

창의적 경험에서 통합될 수 있는 네 가지 경험의 유형

1. 정서적 경험(감정)

2. 지적 경험(생각)

3. 지각적 경험(행동=감각)

4. 미적 경험

→ 생각 감정 행동이 각자 날뛰는 것이 아니라 다 살아있어야, 조화되어 통합되어 미술에 나타나야한다는 말이다.

 

2)미술과 사회의 통합

→ 우리가 어떤 시대의 특성을 이해하려 한다면 그 시대의 문화적 사회적 과학적 산물과 미술표현 양식을 살펴보아야 한다. 미술에서도 그 시대의 반영과 요구가 있다. 개인적(요안나)으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너진 것, 어린이, 청소년 자살률이 OECD국가 1위라는 것, 이보다 더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무것도 없다고 본다. 아이들 정서 건강에 빨간 불이 켜졌는데 지적능력을 발달시켜서 서울대를 보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일단 미술교육이든 뭐든 총력을 기울여 그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시대적 요구는 각자의 답이 있으리라 본다.

 

3)통합과 학습

통합이란 미술 이외의 다른 교과들과의 상호관계나 해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통합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오해다. 교사들은 가끔 역사가 미술수업에서 설명되거나 해석되면, 두 교과의 통합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통합은 외부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다(피상적인 통합에서 문제 발생). 통합은 두 교과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통합은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통합이 자아동일화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통합은 교사가 “얘들아, 미지의 대륙에 상륙하는 개척자들을 그려보자(경험하지 않는 일에 대해 그리는 것)”라고 말할 때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자신의 경험과 동일화할 때만 일어난다.

→ 전혀 다른 두 가지를 뭔가 연결시키면 세련되고 핫한 것이라고 여기곤 한다. 결국에는 경험,이다. 독립운동가들이 살아계실 때 카톡이 있었다면 그들의 프사는 어땠을까, 가정해보고 그리는 수업이 있었다. 어느 아이의 한 줄 메시지는 “엄마, 미안해..”였다. 울컥했다. 아이 자신이 독립운동가의 경험과 역사에 자아동일화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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