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장에서는:
청소년기의 위기와 미술교육의 관계에 대해 알아봅니다. 신체적 변화와 정서적 변화를 겪는 청소년들을 위해 미술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와, 시각적·촉각적 창조유형의 발달과 상호작용, 상상의 중요성 등에 대해 다룹니다. 미술교육은 단순히 기술 전달이 아닌 학생들의 경험과 감정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청소년기의 위기는 정서적인 변화뿐 아니라 신체적인 변화와도 관련되어 있으므로 여기서 우리는 신체와 정서, 정신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만 하는 복합적인 위기를 다루게 된다. 우리는 유쾌하고 개방적이던 어린이가 심각한 얼굴의 말없는 청소년으로 갑자기 변하는 것을 너무나 자주 보아왔다. 문제는 미술교육이 청소년의 위기를 완화시키는 데 얼마만큼 도움을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인생의 가장 핵심적 시기를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일-직업-이 어떤 것으로 사회에 기여하느냐를 중점으로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가치있는 것으로 기여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난화기 아이들에게는 움직임과 흔적의 관계, 인과관계에 기여하고 도식기에는 세상에 대한 질서를 발견할 수 있도록, 청소년기(에는 위기라는 단어가 나왔다)에는 그에 맞는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기여하도록 한다.
1.상상개념의 심리적 변화
어린이는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점차 상징세계에 대한 강한 주관적인 관계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의식적인 비판적 인식은 이제 청소년 개개인의 모든 창의적인 표현에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어린 시절의 상징적 표현방식과의 관계를 이미 잃어버리고 아직 자신의 의식적인 접근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중간단계에 있다. 의식적인 접근을 확립하고자하는 강한 욕구로 인해 청소년기는 그 자신의 창작에 대한 주관적인 태도를 일시적으로 잃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의 그림에는 이러한 불안감이 나타나게 된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 시기에 자신의 창의적인 작업을 멈추게 된다. 이렇게 중대한 시기 동안 미술 교육의 가장 중요한 역할의 하나는 어린이가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자극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언어의 발달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제 미술이 아니더라도 더 쉽게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면서 감소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2.두 가지 표현유형의 발달
시각형 촉각형 이 구분은 개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창조유형(미술표현유형)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구분이다. 뇌사 연구에서 그레이 월터는 “정신적 노력으로도 막기 힘든 지속적인 알파리듬을 가진 사람은 시각적 형상보다는 청각적이거나 근육운동 지각적, 촉각적으로 지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눈을 뜨고 있을 때나 정신이 활동하며 긴장하고 있을 때도 알파리듬이 계속 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알파파는 안정이완뇌파이고 베타파는 활동, 각성뇌파다. 명상이나 기도활동은 알파파가 나온다. 이러한 활동은 눈을 감는다, 비시각형이라는 것과 연결된다. 놀이는 각성과는 반대되는 일종의 퇴행, 난화기적 작업, 안정 이완상태, 동시에 창조적 에너지가 나오는 상태다.
47%는 뚜렷한 시각형, 23%는 촉각형이며 30%는 어떤 형이라고 분명히 단정하기 어려운 낮은 점수를 받았다. 70%정도는 한 유형이나 다른 유형의 경향을 어느 정도씩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4명 중1명은 시각보다는 촉각과 근육운동지각과 같은 자신의 주관적인 반응에 의존한다. 다양한 검사방법을 사용한 드레위스 연구에서 그가 시각형이라고 칭한 사람들은 로르샤흐 반응에서 전체적이고 입체적인 형태를 띠는 반면, 그의 집단에서 비시각형의 사람들은 보다 근육운동지각적인 동작과 미세한 변화에도 반응을 나타낸다. 미술교육에서 이 사실은 1/4정도의 학생이 시각적 자극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들은 이 유형의 자극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좌절할 수 있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각각의 유형은 자신의 경험과 사고방향에 맞게 자극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청소년기의 위기 동안 소년들은 자신에 대해 가장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고무시킬 수 있는 일련의 자극들은 그들의 창의적 발달에 기여할 뿐 아니라 자신감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단지 이쪽 저쪽만을 선호하는 두 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을 양극단적인 형태로 각각의 유형을 분석하는 것은 두 형의 ‘혼합’ 형태에 대한 타당한 이해를 불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대충 70%가 시각형으로 수업을 해도 문제가 없다고 봐도 된다. 그러나 나머지 아이들 유형에 대해서도 알아두어야 한다. 몰입이 되지 않는 아이들의 원인 중 그들이 시각형이 아닐 수도 있다는 참고사항이 생기는 것이다.
자연계의 정규분포곡선이 종모양을 이루게 된다. 아이큐를 100으로 기준으로 하면 평균이 가장 많고 양끝으로 갈수록 적어진다. 어지간한 표준편차는 중간에 다 들어가 있다. MBTI에서 I,E를 양극단으로 딱 나누어선 안 되는 이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를 다 가진 중간상태에 들어가 있다.
1) 시각형
비시각형인 사람의 ‘시각적 억제’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서 자신을 시각적 인상에 익숙하게 하려고 애씀으로써 성향을 바꾸려는 것은 전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다.
→강점을 살려서 일해야 한다. 자신의 키만한 약점 치명적으로 발전을 막는 약점들은 뽑아야 한다.
시각형인 관찰자는 대개 사물의 외형에서부터 접근한다. 그는 관람자처럼 처음에는 세부를 인식하지 않고 전체를 보고, 그리고 나서 전체적 인상을 세부나 부분적인 인상으로 분석하며, 최종적으로 부분들을 전체로 새롭게 종합하는 능력이 시각적 관찰의 중요한 특징이다.
2) 촉각형
촉각형인 사람에게 중요한 매개체는 신체 그 자체, 즉 근육감각, 근육운동지각적인 경험, 촉각에 의한 인상, 그리고 외계에 대해 자신과 가치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경험들이다. 주로 주관적인 유형의 사람들이다. 이들이 완전히 어두운 곳에서 대상과 만나게 되면, 여전히 장애물의 표면적 구조에 대한 자신의 촉각적이거나 근육운동지각적인 경험에 만족하거나. 또는 그가 판단한 부분들의 부분적 인상에 만족할 것이다. 촉각형은 자기 경험을 그대로 투영함으로써 자아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가 그려내는 표현은 매우 주관적이다. 그의 비례도 자신에게 갖는 가치에 의한 것이다.
→눈은 전체를 볼 수 있으나 만지는 것은 전체를 다 만질 수 없다. 코끼리를 멀리서 보면 전체를 다 볼 수 있지만 코끼리를 만지면 전체를 다 만지기 어렵다. 촉각은 부분적이고 주관적이 될 수 밖에 없다.
3. 두 가지 유형의 창조개념
시각적 인상이 다른 감각 인상에 의해 영향을 받고 형성된다.
1)인물표현
→시각형은 보이는 대로의 비례, 명암이 중요한 반면 촉각형은 자신과 맺고 있는 관계, 주관적인 정정서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현대미술의 표현주의작가들에게도 이렇게 시각적 영역 밖에 존재하는 자극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적용된다.
2)공간표현
환경과의 관련 속에서 자아는 크기나 중요성면에 있어서 커지거나 작아진다. 눈은 먼 거리에 있는 대상을 외견상으로 축소된 시각적 이미지로 만들어낸다. 그러나 촉각적 공간에서 먼 거리에 있는 대상들은 크기가 무조건 작아지지 않고 촉감이나 정서적인 반응의 크기에 따라 좌우된다.
우리는 공간해석의 타당성에 관련된 판단에 있어서 시각적 해석으로 완전히 편중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비전통적인 촉각적 공간해석도 받아들이는 의식전환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4. 개성발달에 중요한 두 가지 표현유형
소조작업에서 시각형 유형의 아동은 일반적으로 전체를 만들어내고 세부로 들어가는 반면, 촉각형 그중에서도 시각장애 아동은 그들에게 의미 있는 부분들, 시각형에서는 눈이 보이지 않는 이와 혀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만들어 놓은 뒤 닫고 겉을 만들어나간다.
1) 상상표현 개념의 변화
미술교육은 선택된 몇몇 어린이에게만 제공되는 것이어서는 안 되며, 표현의 자연스러운 수단이 되어야 한다. 이런 결론은 미술이 예술적으로 ‘재능이 있는 학생’ 소수만을 가르치는 미국 고등학교에서의 일반적인 수업과는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재능이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자연 대상들을 그대로 묘사하는 기교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 상상도 경험이다. 남이 상상한 것을 그리는 것은 가짜일 수 있지만 자신의 상상을 그리는 것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엘리트 스포츠를 가르치듯 미술 역시 중고등학교에 들어서서 재능 있는 학생들만을 가르치는 경향이 있다. 입시 미술을 따라갈 수 있는 아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교사는 이 시기에 사실적인 표현 위주의 수업에 치중하는 위험에 대하여 점검해야 한다.
미술작품은 자연의 산물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과 사고, 정서의 산물이며 표현욕구와 본질적인 의미를 중요시하고, 그 밖의 모든 것은 부산물로 간주할 때만 이해될 수 있다. 반면 최상의 기교로 완성된 작품이라 하더라도 미술작품의 위대함을 결정하는 내적 정신, 즉 표현욕구가 결여되어 있다면 위대한 미술작품이라 하기 어렵다. 그런 작품들은 겉모습만 아름다운 포장지와 같다.
표현주의가 지배적이면 이상적인 형태들은 사라진다. 예를 들어 사람이 울 때, 우리 자신이 아름답게 우는지 그렇지 않게 우는지에 유의하지 않는다. 불에 타고 있는 집을 볼 때, 그것과 관련된 우리의 경험을 결정하는 표현욕구는 서로 매우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늘을 향하여 타오르는 불빛에 의해 생기는 춤추는 그림자의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갑자기 빼앗겨버린 사람들의 불행에 대하여 매우 동정할 것이다.
렘브란트의 <헬멧을 쓴 남자>에서 얼굴을 헬멧보다 강조했다면 그 경험과 모순되었을 스미스나 존을 그린 얼굴은 꼭 필요한 표현의 가치를 떨어뜨렸을 것이다.
→사람마다 동일한 상황에서도 경험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 각자 다른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풍경만을 재현하는, 알아볼 수 있는 그림에만 몰입하게 되는 것을 계속해서 알아차려야 한다. 개인의 독특한 경험이 작품에 표현되느냐가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이다. <헬멧을 쓴 남자>에서 얼굴을 헬멧보다 더 자세히 강조했더라면 이 작품의 내용(렘브란트가 표현하고 싶었던 자신의 경험)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 수업에서 중요한 것은 너의 경험, 너의 느낌을 발문 하는 것이다. 작업의 시작이든 중간이든 아이가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은지 잘 모를 때 경험에 대해 꼭 묻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계속 물으며 제3의 손으로서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형태나 표현은 결합이며, 분리되면 전체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만일 보트를 당기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는 학생이 당기고 있는 손의 본질적인 특징을 표현할 수 없어 당황하고 있다면, 그에게 당기고 있는 손을 잘 관찰하게 하여 당기고 있는 사람의 전체의 경험에 이런 손을 결합하려는 욕구를 갖게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분리되고 고립된 세부로서가 아니라, 나머지 부분과 결합해야만 완전하게 되는 전체의 부분으로서 자신의 작업을 진행해갈 것이다.
→촉각형이라고 해서 시각이 나오면 안 되는 것이 아니고, 시각형이라고 해서 꼭 객관적인 표현만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상구분지각과 영역지각은 상황에 따라 적절히 조화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