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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오늘이 마감입니다만>창조적우울을 견뎌야하는 모든 아티스트에게/ 넷플릭스다큐<앱스트랙트:디자인의미학>작가의 일러스트집 / 프리랜서 재정 불안 / 아이디어 고갈 공포증

by 돌냥 2023.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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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디자이너인 작가 크리스토프 니먼은 운명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신념 아래 인내와 의지만 있다면 모자란 재능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그는 점차 그런 ‘노오력’과 다른 핵심적인 뭔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예술적 이상, 재능의 한계, 관객들에 대한 압박과 불안, 창조 과정 발생하는 우연성 등 각각의 요소들이 충돌하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작정 뉴욕으로 떠났다. 즐거웠고, 힘들었다. 룸메이트의 강아지에게 포트폴리오가 몽땅 먹힌 적도 있었지만 곧 많은 고객들이 생겼고 아내를 만났고 결혼했다. 아이들도 생겼다.

 

10년 이상을 행복하게 살았고, 그리고 이사를 했다. ‘안전지대를 떠나는 것’ 흔히 말하는 안전지대란 아늑하고 게으름을 피우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장 위험한 곳은 ‘바쁘고 심지어 스트레스를 받는 곳’이다.

 

우울해질 만큼 새로울 게 없는 길, 향후 50년간 쉴새 없이 복권이 당첨될 정도의 운이 따라야 하는 길, 그런 식의 바쁜 길. 바쁘다는 것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살피지 않아도 되는 좋은 핑곗거리다.

그는 깊은 자기분석과 아내와의 상의 끝에 베를린으로 떠났다. 성장을 위해 의도적으로 풀어지는 시간, 그에게 베를린은 곧 예술학교 였다.

 

 

 

 


 

대중의 호응이나 인정과는 별개로 작가는 창조의 과정과 순서에서의 고통과 딜레마를 얘기한다.

결과가 좋았던 작업들은 대개 긴장과 짜증 속에 태어났으며 일할 때 기분이 좋으면 지레 결과가 안 좋으리라 의심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는 마감의 압박과도 다른 것으로 시간제한이 없는 큰 프로젝트, 실력을 쌓아서 규칙적인 일을 하는 것, 여러 시도에도 불안함은 여전히 있었다(그의 경우 규칙적인 일은 더 큰 불안함을 주었다고 한다).

자신이 치러야 할 대가는 바로 책상 앞에 앉아 유쾌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우울이었다.

 

 

 

작가의 분석은 세 가지였다.

1.나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다- 직업적 특성상 자기 그림의 어떤 매력이나 특성에 대해 완전히 면역이 되었고, 확연히 드러나는 부족한 점들을 고통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2년 전 그린 그림을 보면 민망해진다. 시간 부족이라기 보단 실력 부족 때문이다.

 

2.내 작품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난 곧 퇴출될 것이다- 남의 예술을 연구하는데도 많은 시간을 보낸다. 지금 가까스로 먹고살지만,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5년 뒤, 10년 뒤에는 누가 신경이나 쓸까?

 

3.난 아이디어가 바닥났다- 좋은 아이디어를 끄집어 낼 때마다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과거 성공한 작품들에 부담을 느낀다. 관객들은 최고의 작품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고 그것을 다시 이루길 기대한다.

 

분석의 사유는 날카롭지만 해결책은 단순하다. ‘연습해서 실력을 더 키우라’는 것. 작가는 의식적으로 연습을 하기 시작하며 실력이 좋아졌다는 걸 스스로 느꼈다. 적어도 5년전, 10전보다는 훨씬.

 

니먼의 불안이 괜한 우려가 아닌 것은 그가 속한 분야 역시 시대의 변화를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수많은 예술감독과 무수한 일러스트레이터들을 고용했던 잡지들이 사라졌다. 각종 매체들과 화려한 이력들을 무너뜨리는 시대의 속도와 신속함은 겁이 날 정도다. 갈수록 더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에 니먼이 내린 결론은 이 한가지다.

‘걱정하고 의심하고 고뇌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비평가가 되는 것’이다.

 

자유로운 예술가와 냉정한 편집자가 되고, 운동선수와 음악연주자들이 그렇듯 매일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고, 사람들의 호응 여부를 너무 과하지도 적지도 않게 적당히 수용하되 일희일비 하지 않고, 무엇보다 새롭게 바보 같은 시도를 계속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 뒤에 운에 맡길 것.

 

 


니먼이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나름 터득한 자기만의 해결방법은 일러스트레이터인 그의 세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하고 또 지속해야 하는 모든 분야에 어느 정도 해당하는 내용일 것이다.

 

일상적인 물건을 유쾌한 삽화로 통합시키는 그의 기발하고 창조적인 작업들에는 그가 기록한 그동안의 딜레마와 더 나아지고자 하는 열정이 그대로 담겨져있다.

그것은 자기 분야에 대한 능력적인 분석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런 기술을 사용하는 자기 자신’이라는 도구가 어떤 성질과 특성을 지녔는지 깊이 관찰하고 고민한 흔적이자 증거다.

 

미술, 음악, 영상 무엇이 되었든 고통과 갈등은 창작 ​​과정의 고유한 측면이다. 일정부분 이를 통해 역량이 성장하고 작가 본인에게도 자기 발견을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아티스트이 그저 괴로움 뿐인 창조활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럴 필요도 없다.

 

모든 창작자의 경험은 각각 고유하며 불가피한 창조적 고통을 덜어내려면 각 개인에게 ‘가장 효과적인 연습’을 찾기 위한 다양한 분투와 자기 성찰적 실험이 자연스레 뒤따라야 한다.

 

경제적 불안, 과로로 인한 번아웃, 매너리즘 사이에서 시소의 균형을 잡듯 어디에도 쏠리지 않고 ‘전문 예술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가볍지만 심도있게 그려낸 아트 에디션 에세이, 직업 특유의 고충과 끈질긴 극복 과정 중에 나온 외적인 결과물과 내적인 성찰의 문구들로 꽉 채워진 페이지 어느 한장도 의미있지 않은 것이 없다.

창조적 일을 업으로 삼는 모든 이들이 꼭 한번 읽었으면 하는 ‘작품집’이다.

 

 


 

칼럼은 좋은 반응을 얻었고 덕분에 많은 새로운 기회들이 생겼다. 딱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즐겁지가 않았다. 즐거움은 업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인정받는 예술가들은 누구나 창조과정의 어려움에 대해 불평하기를 좋아한다. 여기서 질문. 만일 그것이 참으로 끔찍한 괴로움이라면…대체 예술가는 왜 되는가?

 

많은 이들이 일과 기회를 가진 나를 부러워하지만, 실제 그 일들이 대부분 책상 앞에 앉아서 유쾌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나의 우울은 내 앞에 놓인 창조적인 도전과 거의 상관이 없었다. 그것은 폭넓은 두려움의 구름에 가까웠다.

 

 

글쓰기, 그리기, 디자인하기는 모두 기술이다. 타고난 재능이 아니다. 그중 하나라도 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게 되는 데 정확히 1만시간이 걸린다(이분도 그책 보셨나 보군…) 좋은 소식은 생각보다 더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그 1만 시간이다. 그리고 그만한 시간 투자를 정말 원하는가다.

 

 

 

 

 

가끔 상상을 해본다. 창조의 갈등을 겪던 2006년의 나를 만나게 되면 어떨까 하고. 젊은 시절의 번뜩이는 재치를 좀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때로 돌아간다면) 내 엉덩이를 걷어차줄 것이다.

 

난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를 하고 있다. 스냅챗과 바인도 해야 할까? 난 언제 소리를 지르게 될가? “그만! 이런 유행들은 다 무시할 거야. 그냥 일하고 싶어!”라고. 나보다 용감한 예술가들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그들은 어떤 트랜드에도 겁먹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결단력으로 자신의 비전을 추구한다.
하지만 훨씬 더 슬픈 사례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사람들이다. 90년대 후반, 학생이었을 때 친구들과 열띤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 친구들은 디자이너가 언젠간 컴퓨터로 작업해야한다는 사실을 의심했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광고들이 금방 사라질 거라 믿었다. 

독불장군인 것이 기분 좋을 지 모르지만, 클라이언트가 내 스케치를 가차없이 버리거나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안 누르는 것이 반드시 그 작품이 시대를 앞서는 걸작인 걸 뜻하지는 않는다. 그냥 나쁜 작품일지도 모른다. (예전 일산호수공원에서 수많은 버스킹을 듣고있을 때의 내 마음이 그랬다…미안하고 가혹하지만. 그런 현실은 내게도 마찬가지다)

 

‘좋아요’와 ‘공유하기’는 진짜 깊이있는 동감의 표현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세련된 그림이나 귀여운 아이디어에 대한 표면상의 긍정일 뿐인 경우도 많다.
나는 예술이 세상을 바꾸는 힘에 대해 매우 의문을 품고 있다. 예술의 타고난 특성인 단순화는 진정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가져오는 데 알맞다기보다 이미 생각이 바뀐 사람에게 설교하거나 정치적인 상대를 공격하는 데 훨씬 더 알맞다.
내가 만약 희귀동물 구하기에 대한 그림을 그려서 천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면 누구에게 이익일까? 지구? 아니면 내 예술적 자아?(작가의 말을 듣고 보니 일시적이고 가시적이 아닌 진짜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궁극적 갈증은 과연 에스엔에스의 미래와 생태를 바꿀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모든 작품에서 나는 예술가VS편집자 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역할을 해나간다.
첫번째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그 아이디어가 실제로 이뤄질지 신경쓰지 않는다. 새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손을 더럽힐 수 있어야 한다.
마침내 내가 발견한 것을 세상과 공유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반응은 보통 미안한 듯 고개를 젓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들이 아이디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 그런 아이디어가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데 있다.
이 시점에서 무자비한 편집자를 불러내야 한다. 그 아이디어를 가져가서 가차 없이 잘라낸다.

단순함은, 꾸미는 장식이 하나도 없는 게 아니다. 대단히 복잡한 것을 만든 다음에 진정한 핵심이 드러날 때까지 잘라내는 것이다. 이 겁 없는 순진함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일이다.
특히 마감과 클라이언트를 대면했을 때.

 

구글에서는 엔지니어들에게 열정을 가지는 프로젝트에 자기 시간의 20퍼센트를 쓰라고 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 일이 지금 작업 중인 실제 업무와 상관이 없어도 말이다. 성공적인 결과를 바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도 계속 그 프로젝트를 밀고 가도록 하는 것이다. 또 성공했을 경우, 재정적인 실행 가능성에서도 고민하지 않고 해보도록 한다.
처음에는 배려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4일 동안 열심히 일한 보상으로 온종일 시간을 허비하여 바보 같은 물건을 만들게 해주는 것이니까. 그런데 더 생각할수록 이 개념이 얼마나 스마트한지 깨닫는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을 가만히 헤아려보면 내 실력의 기초가 된 것은 대부분 5년 전 주말 아침에 바보 같은 시도로 시작된 것을 알게 된다. 요즘 같은 때 새로운 실험에 꽤 많은 시간을 내는 것이 엄청 어려운 일 아닌가?

 

훌륭한 아이디어는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할 일이란 내 실력에 집중하고, 작업환경을 좋게 만들고, 생각하고 실험할 시간을 갖는 것이다. 나머지는 운에 맡겨야 한다.
정말 멋진 날에. 이런 깨달음이 심지어 행복에 아주 가까운 느낌을 가져다 줄 것이다.

 

 

 

[번외] 직업적 아티스트의 고충을 완화해주는 몇 가지 도움들(돌냥 정리)

수용: 투쟁은 창작 과정의 자연스러운 부분임을 한다. 귀중한 학습 경험을 제공할 수 있으므로 ‘기복을 수용할 것’.

자기 연민: 실수를 하거나 좌절에 직면할 때 ‘친절과 이해심으로 자신을 대해야’ 한다. 모든 예술가는 도전을 경험하고 자기 비판은 당신의 발전을 방해할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라.

마음챙김 : 불안이나 미래의 기대에 빠지지 않고 현재 순간에 머물면서 ‘당면한 작업에 집중’하자.명상과 같은 마음챙김 기술은 아티스트가 창작 과정의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술적 정체성의 다양화(부캐 시도):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한 가지의 창조적인 추구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여러 예술 분야에 참여하거나 다른 취미를 찾는 것은 정서적 균형을 제공하고 번아웃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협업 및 연결: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에서 다른 사람들과 협업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네트워킹은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 동료들로부터 배우고 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져 창의적인 프로세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비판 수용: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과 비판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본다. 당장 거부감드는비평과도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하면 아티스트적 기술을 적응하고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달성 가능한 목표 : 예술 창조 과정도 마찬가지다. 더 큰 프로젝트를 더 작고 관리하기 쉬운 이정표로 나눈다. 이러한 접근은 동기 부여와 성취감을 유지하는 동시에, 작업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잠식당하기 않도록 지켜주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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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마감입니다만 - 1미터 안에 아이디어가 있다> 원제 : Sunday Sketching 
지은이 크리스토프 니먼 
옮긴이 신현림 
펴낸곳 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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