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장에서는_
아동미술치료 실제 내담자 사례를 통하여 아동이 자신만의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정체성을 탐색해가는 여정에 참여해본다. 소수문화부터 왕, 죄수, 괴물의 상징성까지 미술치료를 매개로 한 치료적이고도 예술적인 표현과 그 도전이 아동 개인의 자아 발달 단계와 정서적 행복에 미치는 깊은 영향들을 발견해본다.
9장은 뉴욕 월트윅 학교(wiltwyck School for Boys)에서 있었던 미술치료 프로그램 사례들이다.
1950년대 초기의 경험으로, 시민권리 운동이 출현하기 전이고 아프리카 또는 비주류 출신 미국인들이 인종적 자부심을 갖기 전이며 복합문화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의 일들이다.
■에티오피아와 소수 문화배경
마틴과 그 부모는 모두 미국 태생으로 가족은 원래 에티오피아 출신이다. 마틴의 부모는 콥틱 기독교와 에티오피아의 문화적 전통을 지켜나갔다.
마틴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동시에 성공과 인정을 갈망했다. 마틴은 에티오피아 혈통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으나 대부분 아프리카 출신 친구들은 아프리카 혈통은 어떤 국가이든지 열등하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마틴은 실망스러운 초기 기간을 보냈으며 에티오피아인들을 그리는 대신 인디언들을 그리는 것으로 타협했다. 마틴은 자신이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그리기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필요를 위해 융통성을 발휘했다. 마틴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가 주제를 바꾼 것에는 위선이 없었다. 게다가 마틴은 치료사인 크레이머에게 인디언이 ‘사실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조심스레 말해주었다.
마틴이 타협을 했다고 해서 그의 작품의 질이 낮아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마틴이 자신의 이상을 부인하고 집단의 가치에 적응했더라면 작품의 질은 훼손되었을 것이다. 당시 미국에 에티오피아 왕이 실제 방문하면서 마틴의 그림은 제대로 대접받게 되었고 아프리카 왕들을 그리는 유행을 만들어냈으며, 그의 학교친구들은 그 유행을 열렬히 따랐다.
후에 마틴은 자신의 이상을 포기하진 않았지만, 미국에서의 삶을 받아들였고 직접 경험한 적 없는 과거를 이상화할 필요가 없음을 점차 느끼게 되었다. 이상화된 자아를 표현하려는 마틴의 욕구는 흑인들을 포함시키게 됐고 그는 현실 세계에서 이상화시킨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그리게 되었다.
그의 재능과 지능에도 불구하고, 마틴은 도움을 받지 않고 초기의 적응 시기를 견뎌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미술치료적 목표는 마틴이 그가 가진 문화적 전통을 박탈당하지 않고, 예술가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적응하도록 돕고, 마틴이 가진 긍정적 가치들이 집단에서 문화적 일부가 되도록 하는 데 있었다.
■ 왕들
마틴이 학교에 소개한 주제 중 에티오피아 왕은 가장 지속적인 감명을 주었다. 왕 그림 그리기 유행은 또 다른 아프리카 출신 소년인 칼에 의해 이어졌다. 칼은 마틴을 흉내냈고 그와 경쟁하였다. 칼의 아버지는 인생의 거의 감옥에서 보내는 범죄자였고 가족은 소망이 없을 만큼 매우 궁핍했다. 이상적이고 문화적인 가치에 대한 칼의 열망은 가정에서는 채워질 수 없었다.
칼은 왕들을 이상화시켜 표현했고 성상(聖像, icon)을 그리는 형식으로 그렸다. 자화상 같은, 존엄과 명예를 갖추고 잘 생겼으나 우울해 보이는 남자를 그렸다. 황금색 보석을 제외하고 어두운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색상과 아름다운 공간 구성은 칼의 품위와 성공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킨다. 그럼에도 윤택함은 없다. 기본적으로 우울함과 깊은 체념의 한계 안에 있는 충족이다.
칼은 부자이면서 옷을 잘 입는 사람에게서 외알 안경을 취했고 옷 잘입는 백인의 그림에 그것을그렸다. 그리고 외알 안경을 왕들의 그림으로 옮겼다. 외알 안경을 고수하는 것은 미술치료 중의 집단 행동 현상 중에 가장 최고의 것이었다. 그림이 완성된 형식에 도달하자, 그것은 대중에게 채택되어졌고, 더 이상 변화없이 영속되어졌다. 아이들 사이에서 왕의 상징은 자기 존중감과 자기 평가의 문제들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지속되었다. 사실 왕 그리기를 선택한 아동들은 대체로 정서적으로 더 성숙한 편이었다. 왕을 그리는 것은 아동들에게 교화적인 영향을 끼쳤다. 치료적으로 왕을 그리는 것은 마틴에게, 칼에게, 마지막 분석에서는 전체 공동체를 위해 가치있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전통은 그들의 자연스러운 삶을 넘어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왕 그리기 유행은 점차 시대에 뒤처지는 것이 되었다.
▷자습: 자신의 원함 그 진실에 충실하다면 외적 타협도 때로는 자기 진실 표현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미술치료 중에서의 변화는 감정의 변화(해소, 안정)뿐 아니라 실제 현실을 사는 사고방식을 바꾸기도 한다(교화). 어떤 것은 아이들 사이에 유행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현실이 변화되지 않는’ 단계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중단된다.
■ 죄수들
소수의 소년들만 참여한 약 3주간 지속된 사례이다. 당시 윌트윅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 중 하나였던 제리는 평소 극적이고 뽐내며 남자다운 태도를 흠모했다. 제리는 처음에 정형화된 화산 그림을 그렸는데 어떤 파괴성 없이 평화롭고 예쁜 분위기였다. 제리의 거친 태도가 적의에서 비롯되기 보다 자기애적인(narcissistic)표현인 것처럼, 장식적으로 그려진 화산이었다.
죄수를 그린 것은 제리가 처음이었다. 악당, 강도, 중세 감옥으로부터의 탈출 등이 자주 그려졌지만 누구도 ‘현대의 죄수’를 그린 적이 없었다. 실제 현실 속에서 범죄적 환경에서 살고 있는 비행 청소년에게 감옥은 심각하게 위협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보통은 그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제리가 그린 죄수는 감금된 상태임을 보여주는 회색 돌벽을 바탕으로 하고 죄수가 화면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며 교도관과 동료 죄수는 난쟁이로 그려져 있다. 기다리는 자세에는 명백한 무관심이 나타나고 얼굴 표정은 무표정하다. 형식적 구도가 아름답게 균형 잡혀 있으며 심지어 수감번호표조차 장신구로 보인다. 죄수는 상황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고 반항이나 후회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그림을 유행시키는 리더로서 제리는, 죄수를 그려도 불안을 야기하지 않는 그림을 그려서 많은 소년들에게 그와 같이 그리도록 용기를 주었다.
월터는 제리의 영향을 받았지만 제리가 피한 감정을 표현하였다. 죄수복의 검은 색 줄무늬는 검은 색 배경과 맞물려 죄수가 어둠에서 나오는 듯하면서도 어둠에 갇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부분적으로 그려진 죄수의 손발(손과 발은 그림 밖에 있다)은 무능력하고 거의 절단된 것처럼 보인다. 월터의 아버지는 월터의 삶 전체 동안 감옥에서 장기 복역 중이었고 월터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부와 권력에 대해서 허풍을 치며 말했다. 제리가 그린 죄수는 월터에게 아버지에 대해 걱정하는 월터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플레처는 제리의 죄수 그림에 영감을 받아 위에서 내려다 본 감옥과 감옥 담벼락을 그렸다. 플레처는 상습적인 가출자로, 공공기물을 훔치거나 파손하였다. 논리적 사고와 손기술, 일에 대한 열정은 학교에서 뛰어난 목수, 건축가, 장인이 되게 하였다.
그러나 플레처는 놀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게으름은 불가피하게 비행으로 연결되었다. 그의 그림에는 힘겨운 노동이 감옥생활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유일한 것으로 묘사됐으며 이는 죄수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좋은 이유가 되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이해, 리더십, 건축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플레처의 반사회적 경향은 지속되었다. 결국 그는 감옥에 가게 될 지 모르며 아마 충분한 양의 일이 주어질 때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버나드는 죄수를 괴물로 그렸다. 죄수의 얼굴은 입과 코가 없으며 긴 팔은 종이의 바닥에 닿고 손은 그림 밖에 있었다. 그의 그림은 불안이나 죄책감, 반항심의 표현이 아니라 악몽에서 나타나는 유령을 그린 것 같았으며 인간적 공감이나 도덕적인 색채를 벗어나 있었다. 작은 체형과 2차성징이 나타나지 않은 버나드는 지갑을 소매치기하고 손목시계를 훔치는데 특별히 뛰어난 도둑이었다. 버나드의 죄수 그림은 인간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깊은 감정을 보여준다. 도둑질에서의 성공은 그의 능력과 완전함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었고 실패는 불완전함과 체면을 잃는 것과 같았다. 그의 죄수 그림은 비행에 대한 죄책감이나 불안에 대한 표현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도둑질이 실패했을 때의 끔찍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죄수 그림 중 제리만이 공포와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찾은 유일한 소년이었다. 제리의 평형감은 자기애와 피상적 감성으로 퇴행에 기초하고 있었지만 학교 친구들이 기피하던 소재인 죄수를 주제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였다.
월터의 죄수 그림은 결국 그가 마주해야만 하는 사실을 파악하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비록 현실을 완전히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림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다양한 상반된 감정을 표현했다.
플레처는 그가 받아들였던 감옥생활을 그림으로써 자신을 안심시켰다. 그림은 수감생활의 엄격한 훈련의 안전성에 대한 숨겨진 욕구를 담아내고 있었다. 관찰자에게 그 그림은 플레처가 고된 일에 집착함으로써 그의 정서적 문제들을 억압하는 행동 형태를 확인시켜 주었다. 건축과 목공일 외에 다른 즐거움이나 경험을 통해서도 이런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하여 그가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울 필요가 남아있다.
버나드의 그림은 그의 표면적인 적응 아래 학교의 삶에서도 변하지 않았던 비인간적인 느낌과 불완전한 감정이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 자습: 미술치료 중 퇴행 현상은 때로는 자신과 타인에게 이로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제리). 미술치료는 일부일지라도 자신이 당면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하는 과정이 되기도 하며 그 가운데 승화를 일으킨다(월터). 미술 작업의 결과는 내담자가 처한 현실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어도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문제가 있는지 유추, 파악하게 하며, 내담자에 대하여 미술치료를 포함하여 남은 해결 과제 또는 도움들이 무엇인지 정리하게 해준다(플레처).
또는 현실과 미술치료에서 모두 변화가 없고 적응을 가장할 경우(버나드) 그가 처한 감정과 행동은 물론 현실적 상황 모두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 괴물들
정서적으로 장애가 있는 아동들의 작품 중 일부는 기괴하고 공상적인 것을 다룬다. 아동들은 악마, 용, 유령, 괴물, 공상과학소설의 등장인물이 악마의 힘을 갖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공상적 주제를 그린 그림들이 관습이나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믿는 것은 실수이다. 화성인, 악마, 그리고 괴물 얼굴 표현에 대한 정형화된 표현 방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클라이드는 어머니가 오랜 병고 끝에 죽었을 때, 몇 달 동안 오직 괴물 얼굴만 그렸다. 강한 필압으로 뒤죽박죽 그려진 괴물의 그림은 어둠에 대한 본질적 공포를 표현했다. 직사강형의 종이는 검은 색으로 덮여 있고 화면에는 커다랗고 둥글고 하얗게 생긴 한 쌍의 눈이 등장한다. 이빨과 입, 코와 눈썹, 그리고 입 양쪽에 두 개의 화난 선이 그려져 있으며 모든 것은 흰색으로 그려졌다. 견고한 얼굴이 아닌 어둠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눈, 코, 입은 개별적인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얼굴은 얼굴 자체를 의미하기보다 각각 형태 사이의 극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단계이다. 검은 바탕 위에 형태를 그리려는 노력은, 형태가 있으면서 이성적인 것보다 표현하기 어려운, 형태도 없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려고 하는 불가피한 노력(이성과 비이성 사이의 불확실한 균형을 표현)이다.
클라이드의 그림은 학교 친구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습관적으로 우울하거나 호전적인 아동들이 괴물을 그리는 동안에는 정감이 있고 협조적이 된다. 이것은 그들의 그림이 그들의 감정을 이완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그리기를 통해 아이들은 그들의 갈등에 대해 일시적인 지배력을 얻게 되고 결과적으로 불안과 공격성이 줄어들게 된다.
해리는 괴물의 머리 그림 시리즈를 통해 명성과 리더십을 얻었다. 한스 안데르센의 ‘여행의 동반자’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이야기 중 괴물의 목이 베여져 사악한 공주에게 보여지는 장면이 나온다. 얼굴 안에 얼굴이 들어있는 괴물 머리는 입과 눈 등 모든 것이 검은 선으로 깔끔하게 윤곽이 잡혀 있다. 잔인성이 표현된 괴물 그림이지만 기묘한 아름다움이 있었고 해리는 그의 걸작에 과도하게 자부심을 느꼈다. 부활절이 되면 놀러온 어린아이들이 놀랄 테니 그의 그림을 전시에서 치워두는 것을 크레이머가 제안하자 해리는 깜짝 놀라 당황했다. 해리는 자신의 그림이 무섭게 보이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후로 해리의 괴물 그림은 다시 그려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왕 그림 만큼은 아니었지만 많은 아동들이 해리의 괴물 그림에 영감을 받았다.
매튜는 아마도 마음에 기인한 병으로 아동기 내내 설사로 인해 고통받았다. 미술치료 시간에 그는 물고기와 무기들을 작게 그렸는데 그림은 지능과 기술, 강한 구성 감각을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물고기들을 크게 그리려 노력했고 더 많은 범위와 자유를 원했지만 어쩐지 마비되어 있었다. 매튜는 물감을 사용할 때마다 곧 불만스러워졌고 참을성이 없어졌으며, 그림을 완전히 망칠 때까지 물감을 칠하고 튀기는 것으로 끝을 내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불행한 모습으로 서 있으면서도 매튜는 미술시간에 꾸준히 왔다. 해리의 괴물을 보고 매튜도 바로 괴물 그림을 지체없이 그려냈다. 고통스럽고 잔인한 인상의 괴물은 붉은 입술과 날카로운 이빨로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해리와 매튜 모두 심각한 장애를 가진 어머니를 두었으며 정상적으로 자리잡았어야 하는 어머니에 대한 개념을 스스로 집어삼켜야 했다.
해리는 차분하게 생각하며 과학적인 삽화로 꼼꼼하게 괴물을 그렸다. 그 그림들은 구체화된 성숙한 지능, 고풍스런 개념과 패턴들의 괴기스런 조합 때문에 보는 혐오감과 불안을 일으켰다. 그는 어떤 내용을 그리든지 그의 가상 세계를 즐겁게 하고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 하는 내적 균형을 구축했다. 해리는 기뻐하기를 지나치게 염려했고 나쁜 짓하기를 두려워했지만 가장 악마 같은 줄거리를 만들어 내거나 섬뜩한 장면을 그리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주저함도 없었다. 그러나 보통은 잠재되어 있고 혼돈스러운 가상 세계를 분명하고 냉정하게 재현해 낸 것은, 막연한 감정과 공상에 시달리는 다른 아동들이 그들의 생각을 형태로 그릴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열한 살 해리의 괴물 그림에 사로잡힌 아동들을 대부분 미성숙한 집단으로, 나이는 여덟 살 이상이지만 발달 단계와 그림 수준은 네 살에서 여섯 살 정도 수준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수준과 생각에 맞추어 그리기보다 더 나이 많은 소면들을 흉내내려 노력했고 해리의 괴물 그림은 그들 자신의 정서적 수준을 표현하는 것을 더욱 자유롭게 하였다. 많은 치아를 그려 식인적인 공격성을 나타내거나, 눈을 여러 개 그리고 코를 과장하고 튀어나온 뿔들을 그려 힘과 위력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는 것은 아동들의 발달 수준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 그림들은 퇴행이 아닌, 미숙함의 표시이기 때문에 덜 괴기스럽고 순진한 단계에 머물렀다.
매튜의 괴물 그림은 그의 장애가 엄마로부터 야기되었으나 그의 성격에 깊게 뿌리내리지는 못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했다. 이후 그린 배들과 무기 그림은 그의 남성다움과 독립심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후 매튜의 발달은 현실에 더욱 접근하였고 세상에 대한 자각은 또래 아동의 정상적 정서 발달을 따라잡았으며 오히려 평범한 재능과 감수성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다.
괴물 그림 유행이 지나자 괴물을 그리던 아이들은 자신의 그림에 대해 어렴풋한 죄책감이나 불편함을 느꼈다. 아이들은 괴물 그림밖에 못 그린다며 해리의 그림을 비판했다. 그 평가는 시기적절한 것이었다. 해리는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다시 숙고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소년들 사이에서 소년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탐구했으며, 점차로 그림 그리는 것에 흥미를 잃어갔다.
▷ 자습: 괴물을 그리는 것처럼 불가사의하고 비합리적인 형태를 그리는 것은 일정 부분 퇴행을 넘나들게 하기도 하지만 가상의 이야기나 상상력으로 인한 자유함을 얻게 하기도 한다. 특히 해리나 매튜처럼 불가항력적 가정 환경 속에서 불균형하게 발달할 수 밖에 없었을 경우 몰입을 통하여 오히려 혼돈으로부터 균형을 찾게 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영감과 유행이 다른 아이들에 대해서도 이루어졌으나 넓고 오래도록 가지 못한 것에는 현실적으로 아이들의 발달 단계가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이 크다. 누군가 그리지 못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동일한 주제로 반복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고, 동시에 아이들 또는 교사와 소통하는 가운데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자연스러운 ‘경험으로써’ 터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