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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헌치백>장애 당사자 문학 속의 연꽃과 진흙탕. 다양성 그 다음 단계의 시대를 바라며/2023 아쿠타가와상

by 돌냥 2024.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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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 것을 아닐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고 나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저자와 자아동일화 된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샤캬'라는 주인공의 어디까지가 저자가 직접 경험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아닌 것일까 였다

 

사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실제로 가진 병, 신체적인 장애가 아니었다면 이 소설을 내가 과연 어떻게 읽고 받아들였을지 그 차이가 굉장히 클 것이라는 데에 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치카와 작가는 ‘근세관성 근병증(Myotubular Myopathy)’라는 병을 갖고 있다

책을 세 번 정도 읽었지만 아무리 반복해 보아도 입에 붙지 않는 병명이다

그녀의 말대로 이 병은 선천적으로 ‘설계도가 잘못되어서’ 생겨난다 원인을 검색해 보니 myotubularin이라는 단백질을 생선 하는 MTM1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발생하는 일종의 근육병으로, 태어날 때부터 근력저하로 인해 호흡 및 동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주인공 샤카는 S자로 휘어진 등뼈로 인해 목과 등의 부하와 마비를 조금이라도 막고자 두 다리를 착착 접어 올려 ‘열반’의 상태로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며 취미이자 기부 수단으로 야한 글을 쓴다

작가 역시 실제로 열 살에 병을 확정받고, 열네 살 입원을 하면서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고, 그날부터 누운 채로 인공호흡기를 달고 사는 ‘열반’의 삶을 살아왔다

 

 

 

그녀는 많은 선천적 고통을 지닌 장애인들과 동일하게,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얻은 병으로 인해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던 고통들을 오랜 세월 지난하게 겪어냈다 

누워있거나 앉아있어야만 하는 시간들이 많은 관계로 그녀는 깨어있는 시간들을 읽거나 쓰는데 소모한다 이는 샤카와 작가 이치카와 모두 동일한 부분이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당연하게 여기면서’ 안일하게 낭비하고 헤매면서 살 수 있는 삶의 물리적인 조건 자체가 원천적으로 박탈된 덕택에,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의 필터링이 대쪽같이 분명하게 갈라진, 어쩌면 '선택곤란증'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 수가 없는 당연한 선택지로써의 일상사들이 그녀(들)의 삶에 단순하게, 그리고 강제적으로 주어졌다

 

 

멀쩡한 사지육신을 갖고 오히려 끊임없는 욕망과 번뇌 속을 헤매는 중생들과 달리 호흡기의 도움 없이는 잠시도 숨 쉴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반신불수의 그녀는 바랄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바라지 않고 바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최대한으로 욕망하고 발현하고 순차적으로 성취해 가는 삶을 살아왔다

내가 가장 바라마지 않는, 옆으로 눈 돌리지 않고 자신의 한 길만을 외곬으로 파고들어 살아가는 그런 삶이다

 

 

 

자전적 소설까지는 아닐 수 있지만 병증에 관한 묘사들은 작가의 실제 일상의 모습 그대로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1인칭 관찰자 시점에 동일한 병명, 동일한 나이와 성별, 통신대학을 다니며 논문을 쓰거나 고타쓰 기사 알바를 하는 등의 동일한 경험. 읽는 동안 작가와 주인공의 삶은 따로 떼어놓으래야 떼어놓을 수가 없다

샤카 그리고 이치카와 모두 ‘애초에 장애인은 없는 것’을 전제로 돌아가는 일본 사회에서 직간접적으로 느끼는 부당함들을 서늘할 정도로 관조한다 

 

샤카이자 이치카와는 ‘진짜 숨 막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 ‘숨 막히는 세상이 되었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찌끄리는 야후 댓글을 보며 코웃음 친다

눈이 보여야 하고, 책을 들 수 있고, 넘길 수 있고, 독서 자세를 유지할 수 있고, 서점에 자유롭게 사러 다닐 수 있어야 하는 독서문화의 마치스모(machismo 남성 우월주의)를 증오한다

 

샤카이자 이자카와는 비장애인들에게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는 표피적 현상 하나하나가 장애인들의 실제 삶 속에서는 일일이 그리고 대단히 ‘아무러한’ 것인 내용물이 될 수 있음에 대해 얘기한다 그녀들은 단체와 개인 곳곳에 흩어져있는 고요하고도 맹폭적인 '배제'의 세력의 안일한 무지함을 비웃는다

 

주인공과 작가. 이 둘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돈 그리고 가족이라는 환경일 것이다

주인공 샤카는 돌아가신 부모님으로부터 억 단위의 현금을 상속받았고, 자기 이름으로 된 장애인 시설 그룹홈을 소유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 작가 인터뷰를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작가 역시 다행히도 돈 걱정 없는 유복한 장애인이라서 덕분에 문학열을 불태울 수 있었을 거라는 오해(겸 합리화)를 고수했을 것이다

 

실제로는 (놀랍게도) 이자카와 작가의 부모님은 멀쩡히 살아있으며, 그녀는 소설 속에서처럼 그녀의 장애를 든든히 뒷받침해 줄 만한 거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살아온 적이 없다

그녀는 스무 살부터 벌이를 하기 위해 크라우드소싱을 통해 다양한 웹 라이팅을 해왔고, 여성 대상 포르노 TL소설로 전자서적도 출간했다 그런 중에도 이십여 년동안 한결같이 문학상에 응모해 왔다 게다가 실제로는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친언니가 먼저 같은 유전병을 앓아왔었으며, 작가는 ‘환자 당사자’ 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환자 언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정 속의)를 둔 동생’으로서의 삶을 살게 됐다 아마도 그런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장애 당사자임에도 무거운 장애에 짓눌려 삶이 매몰되지 않고 좀 더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소설가로서의 역량을 키워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샤카는 삶의 사소한 욕망들을 트위터에 한 줄씩 또는 트리모양으로 남긴다

그녀는 맥도널드 알바, 고교 생활 같은 평범한 것들을 바란다

그리고 기묘한 것들 또한 욕망한다 이를 테면 임신을 해보고 중절을 해보고 싶다는 다소 아슬아슬한 바람부터, 다시 태어난다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는 폭탄선언도 남긴다

 

샤카가 쓴(그러니까 이자카 와가 쓴) 고타쓰 기사라거나, 소설의 부분들은 매우 원색적이다

개인적으로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문학상 소설에 대한 짬은 별로 없지만 더구나 아쿠타카와상이라는 명문 있는 문학상을 받은 작품 중 이런 부분이 묘사된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이는 작가의 개인적 내력(TL작품-일본에서 여성 대상 포르노 장르)과도 약간은 연결이 되지만 그렇기에 자전적이면서도 이 소설을 통한 작가의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매우 영리한 연출적 도구로 쓰인 셈이다

 

샤카의 말과 삶을 통해 그녀가 보여주는 장애인의 스펙트럼은 이전의 것들(적어도 내가 갇혀있는 우물 속의 것들)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장애인과 관련된 것이라면 깊고 오랜 체념 또는 장애 극복의 엄청난 투지의 글이 떠오르지만 샤카가 보여주는 것은 그저 '인간으로서의 삶'이다 또한 생각과 욕망에 매우 주체적인 장애인의 경험이 담겨있는 내용이기에 결과적으로 더 ‘넓고, 다양하고, 파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고령의 중증 장애인 샤카는 스스로 본능을 직접 실행해서 누릴 수는 없으나 누군가의 본능을 충족시켜 준다

화면 너머 여성 독자의 ‘꿀단지’를 벌름거리게 해주는 덕분에 돈이 들어온다 어차피 돈이 많은 그녀는 수익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가출소녀를 보호하는 쉼터나 푸드뱅크, 고아 아동을 위한 육영회에 기부한다

그녀는 코로나로 인해 출근하지 못한 동성 간병인 대신 자신의 부요와 장애를 경멸하고 있던 이성 간병인 다나카에게 자신의 평소 욕망이었던 임신을 요구하며 1억 5500만 엔을 준비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다른 서체로 이어지는 소설은 아마도 다른 계정에 존재하는 샤카가 쓴 것일지도 모른다(이전까지는 샤카釋華였고, 끝 부분에는 '샤카紗花'로 동음이의어다 리뷰를 쓰느라 세 번 뒤적거리지 않았더라면 끝까지 몰랐을 것이다)

 

성매매업소에서 ‘즉즉即即’에 ‘NN’을 하는 하는 아가씨 샤카紗花는 소설 초중반을 전개해 온 부유한 환경의 샤카釋華 와는 달리 이단에 빠져 살림이 거덜 난 집안, 정신병자 엄마, 교도소에 간 오빠 등 상반된 가족사를 갖고 있으며 이를 자신과 관계하는 손님들에게 들려준다 물론 모두 거짓이다 모든 것이 '살아남기 위한' 방도다

 

갑자기 블랙코미디 같은 날 선 진실성과 회의를 보여줬던 샤카가 낯설어지면서  누가 진짜 '샤카'인지 헷갈려진다  작가의 모습은 어디에 가까울지도 역시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다가 달라진 한자를 발견했고, 숨은 의미랄 것도 없이 작가가 소설 속에 직접 언급한 문장에서 답을  찾았다(67페이지) 전자의 샤카 釋華 는 석가모니의 꽃, 연꽃이다. 그리고 후자의 샤카 紗花 얇은 비단의 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녀 스스로 대답한 것과 같다

현실을 살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샤카도, 내부에 있는 어떤 생각과 욕망이라도 분출하는 샤카도 , 모두, 그녀 안에 있는 것이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작가의 단순한 심정이 드러난다

그녀는 사실 이 작품은 아쿠타가와상 기자회견장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한다

수상 소감 시간을 노리고 작품을 썼다니. 영화 대사 같은 말이었다 독서 배리어 프리를 호소하고 싶었다고 한다

최소 권한으로서의 당연한 요구도 ‘소수인이자 약자라는 이유로’ 철저히 외면받다가 큰 공로를 세운 후에야 그제야 설득력과 영향력이 행사된다는 것은 애석하지만 적어도 일본 문학계에서는 그녀가 해낸 셈이다

 

그녀는 장애인을 평등하게 대해 달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보다 현실적인 언급을 한다 (장애에 대한) 당사자든 비당사자든 그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유롭게 장애인을 묘사하는 것, 그것을 실천적으로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아무 의미 없이 행인 A로서 신체 장애인이 묘사된다면 좋겠다’라는 것이다 안경을 낀 행인,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행인, 처럼 아무 동정이나 연민이 끼어들 필요가 없는, 일상적 객관화가 가능한 상태의 문학 말이다

이 얼마나 당연하고 파격적인 말일까. 동정도, 의분도, 아는 척도 무엇도 아닌 별도의 거대 의미가 없는 객체로서의 장애인 묘사. 이것이 파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게도 아직은 공감과 동시에 파격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여전히 옹색한 종지와 바둑알만 한 시야를 가진 내 상태를 스스로에게 반증하고 있다

 

사실 장애의 문제뿐만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보면 쉬워질 것들이 '각자가 자발적으로 설치한' 여러 프레임에 걸리며 이상한 것, 특이한 것, 유별한 것으로 아주 손쉽게 오염되어 버린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란 표현이 너무 뻔함에도 실제로 사람들은 많은 '보이는 것들의 그 뒤에 대해서' 더는 생각하려 들지 않는(속아 넘어가는 것도 아닌! 다만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이렇게 단단하게 굳어버린 오염은 어떻게 정화할 수 있을까?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S자형 휘어진’ ‘꼽추괴물’의 배배 꼬인 심상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고등어 등뼈’처럼 ‘반듯한’ 작가의 심상은 나에게 자기 삶의 주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에두르지 않고 알려준다.

객체 아닌 주체로서의 장애 당사자 삶에 대한 증명적 묘사, 비당사들의 다 이해하는 척 실상은 넘의 일로 여기는 모든 행태에 대한 냉소(뜨끔.), 비장애인의 기준과 권력 남용에 맞춰 살지 않는 자기 경험적 기준..

 

“나에게는 글 쓰는 일밖에 없다. 나로서는 ‘신체적으로’ 가장 편한 게 소설이었다”

그렇다면 사지 멀쩡한 나는 무엇을 가장 편안하게 여기고, 무엇에 재미를 느끼고, 무엇이 나를 (이 속세에서 불완전하나마) 해방시켜 주는 자유한 상태인가? 

 

일기는 쓰다 말다해도 소설은 마감날에 귀신같이 맞춰내는 습관을 가졌다는, 자신의 예전 글을 보면 재미가 있다는 이치카와 작가.

그녀에게 소설 쓰기란 한마디로 ‘Easy & fun!’이란다.

정말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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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치백> 원제 : ハンチバック (2023년)


지은이 이치카와 사오
옮긴 이 양윤옥
펴낸 곳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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