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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반려견문록>각자 외롭고 고독한 두'프리랜서'의 교집합인생/개키우는사람 개사랑하는사람 대공감/반려견에세이 책추천

by 돌냥 202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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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는 어쩐지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 같지만 제목에서 얼핏 보이듯 엄연한 '반려견'에 관한 에세이다.

 

아마 작년부터 올해가 강아지나 반려견에 대한 책을 가장 많은 해가 되었다.

 

막상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마지막 아이까지 모두 무지개다리를 건너면서 물리적으로, 또한 펫로스 진행으로 인한 심리적으로) 시기에 이렇게 많은 강아지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다니.

 

지나간 시간을 채운 열심들은 알고보면 언제나 오만이고 기만이라 여지없는 뻔함과 부질없음 이란 결과를 낳게 되는 것 같아 잠시 또 스스로가 싫어진다..싶지만 여기까지 하는 걸로.

 

 

 

결론은 여태 읽었던 일반인+관련 업계 전문가(의사, 훈련사)들의 반려견 에세이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재미,라고 해도 될까.

 

내가 언젠가 생각했던, 그리고 키웠던 아이들에 대해 쓰게 된다면 이렇게 쓰게 될까 싶을 정도의 공감의 인식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반려견 입장에서 글을 써보는 시도는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도 이토록 그럴 듯하고 자연스럽게 아주 숱한 반려견 입장에서의 일체화(나 역시 이것이 너무 강해서 펫로스가 상당히 길게 되었던 것 같다. 화자는 두 존재이지만 읽다보면 보리가 누나인 것 같고 누나는 보리인 것 같다. 그렇게 슬쩍 슬쩍 겹쳐진다. 아니면 애초에 모두 보리이자 모두 누나인지도 모른다.

 

일고여덟살의 보리는 더는 열다섯살의 보리와 같지 않고 누나도 그렇다. 글을 따라서 그들의 연대기를 따라서 오히려 반려견과 지내온 나의 지난 시간들을 반추하게 되는 느낌이다.

내가 써서 정리했어야 했겠지만 작가의 글을 통해 내가 기억하고 돌아봤어야 하는 조각들을 다시 응시할 수 있도록 도움을 많이 받은, 그런 제 3의 손 같은 책이다. 

 

여담이지만 시터를 시작한 뒤 아무리 심신이 건강한 반려견이라도 또 아무리 산책이나 실내놀이로 친밀도를 늘리고 에너지를 소모해주더라도 장기가 되면 슬슬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당연한 것 아닌가? 안타깝게도, 자신이 키우는 개에 대해서 외모 외에는 거의 모르고, 눈대중 사료만 줄 뿐 교육과 건강관리에는 관심이 없으며, 방치 이상의 악화 행위를 반복하는 보호자일지라도 개는 오로지 '일편단심'이다 그에게는 악한 주인도 최고의 주인이다..ㅠㅠㅠ).

그런데도 내가 십여년 전 한달 간의 신혼여행 때 칭이를 (제대로 된 보호자가 단 한명도 없는)언니네에 맡겼던 것, 거기서 평생 트라우마가 될 만한 어떤 일을 겪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은 당시 시대적인 반려견 복지 인식이나 관련 산업 수준을 고려하더라도 나의 선택에 대해 두고 두고 한이 되는 부분이다.

이제 생각하자면 다들 너무 겪어대서 시덥잖고 새롭지도 않은(않아진) 유럽문화를 즐기고 있던 그 한달 동안(물론 심기 한구석이 내내 매우 불편했다) 칭이는 성격이 완전히 변해있었다. 그런데 작가는 여행으로 45일..을 호텔링을 했었다니.  흠. 상대적 위로라기보다는 보리 안에 이름처럼 '보살'이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ㅎ 며칠마다 통화로 건강과 생사를 확인하는 식의 안부는 강아지에게는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에 가정 시팅이 있었더라면 얼마가 들었든 했을텐데...그러나 강아지를 키운다면 가급적 5일 이상 장기여행은 '아예 안하는 것' 이 낫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특히 분리불안이 심한 강아지라면)

 

 

 

 

-사람들이 집을 비우는 오후가 되면 이 아파트 단지에서 혼자 집을 지키는 개들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너덧 층마다 한 집이나 두 집 정도는 반려견이 있을 텐데. 해는 지고 어둠이 저벅저벅 몰려올 때 집집마다 현관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을 개들의 아파트.

 

 

 

-엘레베이터 오른쪽으로 두 번째 집에 나보다 큰 개가 살고 있다. 목소리를 들으면 알 수 있다. 아마 나보다 몸집이 세 배는 클 것이다. 녀석은 정오 무렵이나 늦은 오후에 한 번씩 목청 높여 하울링을 한다. 우우. 우우. 녀석이 울 때 마다 오후의 아파트 단지는 외로운 벌판으로 바뀐다. 누나가 없을 때 녀석이 울면 나도 같이 그 벌판에 서있는 것 같다. 저 하울링의 주인공을 마주친 적은 없지만, 덩치에 맞지 않게 외로움을 많이 타는 녀석일 것이다. 언젠가 녀석을 만나게 되면 해줄 말이 많은데.

 

 

 

-외로워도 괜찮아

외롭다는 거, 그거 그렇게 울어봐야 소용없어. 어차피 정면으로 통과해야만 끝나는 주유소 자동 세차기의 폭우(비유보소..!) 같은 거니까.

나는 내가 떨고 있는 걸 보이기 싫어서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짖어대곤 했지. 그렇지만 소용 없었어. 도망갈 수도 없지. 끝까지 통과해야만 비로소 동굴같은 어둠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니까. 그래야만 제 갈 길을 갈 수 있고. 그런데 말이야. 그게 한 번 몰아치고 나면 오히려 깨끗해지는 거지. 눈 앞이 탁 트이는 것 같고. 잡아먹을 듯 달려들지만 그들은 결코 내 안 깊은 곳까지 손을 뻗치진 못해. 그러니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한가지뿐이야. 익숙해지는 것. 익숙해지면 외로움도 괜찮아.  

-그리운 바이칼의 바이칼

녀석을 만난 건 카페가 문을 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뒤였다. 간판부터 달아놓고 아직 공사 중인건지 성수기가 지나 문을 닫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무심히 지나쳐 가려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고양이였고 나중엔 강아지 소리였다. 

들여다보니, 조그만 개 한 마리가 쇠사슬에 묶여 있다. 들락날락하며 얼마나 애를 썼는지 바닥에 쌓인 나무판자 몇 개에 사슬이 휘감여 녀석은 꼼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나무 판자를 들어내 녀석의 행동반경을 늘려 주었다. 얼마나 오래 이러고 있었던 거니? 고양이와 둘이만 있었던 거야? 녀석이 묶여 있던 문 안쪽을 둘러 보았다. 밥그릇이 보이지 않았다. 물그릇도. 주인은 어디로 간 거야? 언제 떠난 거니? 하루에 한 번, 혹은 이틀에 한 번쯤은 너를 들여다보기는 하는 거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오는 동안 길거리에서 만났던 러시아 개들은 겉으로 무뚝뚝한 러시아 사람들을 대신하려는 듯 낯선 이들에게 하나같이 싹싹하고 친절했다. 녀석은 자꾸만 내게 손을 내밀었다.

녀석은 긴 줄을 끌고 달렸다. 그래도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날아갈 듯 달렸다. 너, 얼마나 오랜만에 달려보는 거야?

녀석은 로켓처럼 달려 나갔다가 너무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귀환하는 로켓처럼 내게 다시 달려왔다. 그렇게 십 분을, 또 이십 분을 녀석을 달리고 내게 돌아오고 내 옆에서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녀석과 나는 같이 달렸다. 어어 참, 바이칼이 보이는 알혼의 언덕을 느닷없이 개와 함께 달리다니. 

 

 

-보리, 저마다 깨달은 존재들

더 넓혀서 말하면, 뉴스나  SNS로 알려진 불에 탄 고양이나 아파트에서 던져진 고양이들, 쓰레기봉지 안에 버려진 어린 강아지들과 오토바이나 자동차에 매달려 끌려가던 나이든 개들(내가 다 늘 마음에 달고 살았던 일들..작가도 다 담고 살고 있었다 끔찍하고 다신 반복되지 않아야 하지만 항상 아픔으로 주시하고 기억하고 저항해야 하는 일들이다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도 다 '보리'였다. 북극곰 통키도, 고속도로에 실려 가던 숱한 닭들도, 산 채로 가슴털을 죄다 뽑혀 내 겨울옷이 되었던 거위들도 저마다 보리였고, 보리이고, 또 보리일 것이다.

우리 집엔 고집불통 보리, 세상의 길 위엔 성격도 생김새도 사연도 다른 수많은 보리들. 

 

 

 

-강아지 한 마리로부터

우리와 함께 사는 개나 고양이들은 왜 평생 귀여움을 요구 받아야 할까? 어쩌면 더 이상 귀엽지 않게 되는 것이 자라나는 일이고, 독립된 개체가 되는 일이고, 살아가는 일인데. 강아지거나 고양이거나 토끼이거나 햄스터이거나, 목숨을 가진 한 생명에게 귀여움이라는 미덕은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

강아지 한 마리로부터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건 귀여움의 위로라기보다는 차라리 광고같은 '커뮤니케이션'의 정수 쪽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공감과 소통,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어주는 존재가 주는 위로. 따지고 보면 카피라이터인 나보다 보리의 커뮤니케이션 의지와 능력이 더 뛰어난 것이다. 

한 마리 개와 한 명의 사람이 함께 산다. 15년째. 조금쯤 고독하고, 적당히 고단하고, 충분히 따스한 함께이다. 한 사람과 또 다른 한 사람이 함께 사는 일도 그러할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을 가진 두 개의 세상이 만나는 일. 우리는 여전히 삐딱하고 아마도 계속해서 서툴 것이다. 다행이다. 우리에게 아직 시간이 있어서.

 

 

-나는 가끔 어릴 적 살던 집 마당을 떠올린다. 그때마다 우리 집에 있던 강아지며 고양이, 오리 새끼나 새들이 그 이후로 다들 어디로 살러 갔는지 궁금했다. 새장 속에서 탈출해 짝을 두고 혼자 날아가 버린 수놈 잉꼬의 안부도 한참 동안 궁금했다. 돌이켜 보면, 그 어린 짐승들은 사람이 거두어 사람이 키우는 것이 아니었다.

어린 짐승들이 제 생을 바쳐 사람의 한 시절을 키우는 것이었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다니 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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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문록-내 개는 알고 나는 몰랐던 것들> 2019


지은이 최현주
펴낸곳 엑스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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