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는 뎃생 연습삼아,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석고수채화에서 아그리파, 줄리앙, 비너스 외의 반짝 등장 번외인물로 그렸던 세네카.
당시 나와 같이 세네카를 그렸던 학생들 어느 누구도 세네카가 그렇게 역사적으로 저명한 철학가였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도덕시간에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를 그렇게 달달 외었음에도). 하긴 석고상은 석고상일 뿐 미대에 들어가면 그걸로 끝, 수백장 그려댔던 인물 하나하나의 히스토리와 의미에 대해서는 거의 하나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아그리파, 비너스만 한줄 요약처럼 알 뿐이다.
수업 중 선생님들이 굳이 알려준 적도 없지만 무엇보다 처음 맞닥뜨린, 그리고 볼 때마다 느꼈던 세네카의 인상은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 없어보이는 극도로 굶주리고 처절할만큼 가난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빈곤한 이미지 이상의, 인생의 모든 고통과 고난을 경험한 왜소한 노인의 찌들고 쇠약한 분위기가 가득했다.(신음소리가 음성지원되는 듯한 찌그러진 눈썹과 미간, 이마와 얼굴에 쫙 달라붙어 떡지고 가라앉은 머리결부터가 그렇다)
그렇기에 볼적마다 그릴 적마다 나조차도 뭔가 허덕이면서 바닥까지 기운없이 푹 꺼지는 듯했던(그러는 중에 최대 한도의 불쌍함이 서려있는 그의 표정을 그대로 복기하려 애썼다) 그 석고의 실제인물은 알고보면 외적인 쇄약이나 연민과는 완전 거리가 먼 사람이었던 것이다. 캐릭터와 능력치의 불일치 같다고 해야하나.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강한 자기 훈련과 자제력을 통해 도전, 고난이라는 역경에 정면으로 맞서길 강조했던 철학가세네카. 시대를 관통하는 그런 인류의 선생이 학창시절 화실 한 구석자리에서 츤츤한 눈빛으로 한껏 동정심을 짜내며 그렸던 그 노인 석고상이었다는 사실은, 그 뒤로도 한동안, 꿈에도 몰랐다.
작가 소개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는 기원전 4년경부터 서기 65년까지 살았던 로마 스토아 철학자, 정치가, 극작가였다. 그는 코르도바(지금의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태어나 나중에 로마로 이주하여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황제의 통치 기간에 저명한 인물이 되었다.
세네카는 스토아주의에 관한 편지, 수필, 논문을 포함한 철학적 작품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글은 윤리, 도덕, 행복의 본질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세네카의 철학적 가르침은 평온함과 내면의 평화를 누리는 데 있어서 미덕, 자기 훈련, 합리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철학적 추구 외에도 세네카는 네로 황제의 고문으로도 활동했지만 그들의 관계는 복잡하면서도 종종 긴장되었다. 정치적 참여에도 불구하고 세네카는 스토아학파 원칙을 고수했으며 고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스토아학파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간주된다. 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지혜와 납에 대한 실용적인 통찰력으로 계속해서 연구되고 존경받고 있다.
앞서가는 무리를 따르는 양 떼처럼 행동하지는 마십시오. 당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닌 그저 많은 사람이 지나간 길에 들어서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세간에 떠도는 소문에 혹해서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길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판단한다면 정말 좋은 것을 놔두고 가짜만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선택은 결국 심각한 문제를 맞닥뜨리게 합니다.
자신의 이성을 따르지 않고 그저 타인을 흉내 내며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이 줄지어 같은 길을 향해서 돌진하면 모두 얽히고설켜 넘어지고 맙니다. 수많은 사람이 한데 엉켜 서로 밀고 밀리는 상황에서는 누구든 자기가 넘어질 것 같으면 주변 사람을 붙잡고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뒤따라오는 사람까지 함께 우르르 넘어져 파멸도 치닫게 되겠죠. 우리네 삶이 이와 같습니다. 이런 경우는 오롯이 혼자만 잘못되지 않아요. 한 사람이 잘못된 길을 선택했다가 넘어지면 앞만 보고 뒤따라가다가 넘어지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자식을 앞세운 노파가 슬퍼하느라 흘려보낸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호시탐탐 유산에 눈독을 들이는 자를 자극하려고 꾀병을 부리는 시간은 또 어떻습니까? 진실한 우정을 나눈 적도 없으면서 권력을 자랑하려고 찾아온 이들에게 빼앗긴 시간은 또 얼마나 깁니까?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아마 자신을 위해 보낼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언제쯤 쉴 수 있을까?’
모두들 바삐 살아가느라 지쳐서 그저 편안한 미래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자신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고, 매일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다가올 미래를 기다리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머무르고 있는 시간보다 더 즐거운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모든 즐거움을 경험했고, 실컷 누렸으니 남은 시간을 기꺼이 행운의 여신에게 맡길 겁니다.
현재에 충실한 사람은 안정을 얻습니다. 앞으로 뭔가 더 가질지언정 뺏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더 많은 것이 주어진다고 해도 이는 충분히 배불리 먹은 사람에게 필요하지도, 원하지도 않는 음식을 더 주는 셈일 뿐입니다.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는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신에게 이 세상 어떤 이보다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늘 공무에서 벗어나 휴식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와의 대화는 항상 여유를 즐기고 싶다는 바람으로 끝났습니다. 언젠가 자신만을 위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되고도 달콤한 희망 덕분에 황제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집중할 수 있었죠.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편이 좋겠지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날은 아직 한참 멀었으니 이렇게 내 간절한 바람을 글로 표현하면서 그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미리 맛보는 것이다.”
천하의 황제도 현실에서는 여유를 즐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미래를 상상하는 데서 만족을 찾은 겁니다
인내, 용기, 성실함과 같이 불운에 맞서 싸우는 미덕이라면 힘겹게 길을 터가며 가파른 경사를 기어오를 겁니다.
반면 관대함, 온화함 배려와 같은 미덕은 조절하지 않으면 너무나 쉽게 내리막길로 미끄러집니다. 그러니 언덕 위로 향하는 미덕에는 박차를 가하고, 언덕 아래로 향하는 미덕에는 고삐를 쥐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빈곤에 처했을 때는 용감하고 호전적인 미덕을 발휘해야 하며, 부가 주어졌을 때는 균형을 잃지 않도록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는 미덕을 행해야 합니다
세네카의 주요 철학
세네카는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나중에 로마에서 번성한 고대 철학인 스토아학파의 저명한 인물이었다.
금욕주의는 좋은 삶의 열쇠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이해하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노력을 집중하는 데 있다고 가르친다.
스토아주의에서 세네카의 가장 유명한 가르침 중 하나는 자연에 따라 생활한다는 생각이다. 이는 숲 속에 살거나 환경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우주의 자연 질서에 맞추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네카는 인간은 미덕, 지혜, 자기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삶의 모든 측면에서 자기 훈련, 합리성, 절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네카는 자제력을 실천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생활함으로써 외부 상황에 관계없이 내면의 평화와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세네카 철학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은 회복력과 용기로 역경을 받아들이는 아이디어이다. 그는 침착하고 이성적인 마음으로 도전과 고난에 직면하는 것이 개인의 성장과 도덕적 발전에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세네카는 역경에 압도되기보다는 개인이 역경에 정면으로 맞서고 이를 학습과 발전의 기회로 활용하도록 격려했다.
전반적으로 세네카의 철학은 이성, 자기 훈련, 삶이 주는 기쁨과 도전 모두에 대한 수용을 바탕으로 도덕적인 삶을 살라는요청으로 요약될 수 있다. 즉,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삶의 어려움에 용기와 지혜로 접근함으로써 만족과 내면의 평화를 찾는 것이다.
*틈새궁금증: 스토아주의와 금욕주의는 같은 것인가?
금욕주의와 금욕주의는 몇 가지 유사점을 공유하지만 동일한 것이 아니다. 스토아주의(Stoicism)는 자연에 순응하는 삶, 미덕의 배양, 외부 상황에 관계없이 내면의 평온 유지를 강조하는 고대 철학 학교다. 일부 스토아학파는 철학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금욕주의를 채택하기로 선택할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금욕주의 실천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반면, 금욕주의는 자기 훈련, 극기, 세속적 쾌락이나 안락을 삼가는 것이 특징인 생활 방식을 가리키는 더 넓은 개념이다. 스토아주의의 일부 측면은 금욕주의와 겹칠 수 있지만, 스토아주의는 엄격한 자기 부정이나 세속적 재화의 포기보다는 정신적 규율과 미덕 윤리에 더 중점을 둔다.
요약하면, 스토아주의와 금욕주의는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별개의 개념이다. 스토아주의는 정신적 회복력과 미덕을 강조하는 반면, 금욕주의는 극기와 영적에 초점을 맞춘 더 넓은 범위의 실천을 포함하고 있다.
세네카의 철학을 현대사회에 적용한다면
세네카의 철학이 현대 사회에 적용된다면 사람들은 개인의 성장, 탄력성, 행복을 촉진하는 여러 가지 가치와 태도를 채택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오로지 이론 면에서)
내적 성취에 초점: 현대 사회는 종종 부, 지위, 물질적 소유와 같은 외부 성취에 높은 가치를 둔다. 세네카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미덕, 지혜, 개인적 성장과 같은 내부 가치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외적인 성공을 통해서만 행복을 추구하는 대신, 그들은 지속적인 성취로 이어지는 내면의 자질을 키우는 데 우선순위를 두게 될 것이다.
주의 깊은 삶: Seneca는 현재 순간에 살고 자신의 생각, 행동,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오늘날의 마인드풀니스, 알아차림). 주의가 산만해지는 것들이 많고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마음챙김을 실천하면 개인이 안정감을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며 전반적인 웰빙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역경 정면 수용(맞장뜸): Seneca는 역경은 삶의 피할 수 없는 부분이며 용기와 탄력성을 가지고 도전에 맞서는 것이 성장에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불편함과 역경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도전을 학습과 개인 발전의 기회로 받아들인다면 회복력과 정신적 강인함이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자기 훈련 실천(오늘날의 갓생): Seneca는 삶의 모든 측면에서 자기 훈련과 절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즉각적인 만족이 널리 퍼져 있는 오늘날의 소비자 중심 문화에서 자기 규율을 기르는 것은 개인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균형 잡힌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생각해보니 코로나 기점으로 믾은 MZ들이 자체적으로 많이들 도전하고 있는 듯 하다.
미덕 함양: 세네카는 진정한 행복은 이성과 도덕적 고결함에 따라 유덕한 삶을 사는 데서 나온다고 믿었다. 윤리적 딜레마와 도덕적 상대주의가 흔한 현대 사회에서는 정직, 연민, 성실과 같은 덕목을 포용하면 더 큰 목적의식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성실은 이해한다 그러나 정직과 연민은 가려가며 사용하지 않으면 하이에나들에게 물어뜯긴다)
무상함 수용: 세네카는 삶의 일시적인 본질과 변화의 불가피성을 인식했다. 불확실성과 끊임없는 흐름으로 특징지어지는 세상에서, 무상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이 더 큰 평정심과 마음의 평화를 가지고 삶의 기복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세네카의 철학을 현대 사회에 적용하면 내면의 가치, 마음챙김, 탄력성, 윤리적 삶에 대한 강조가 높아져 궁극적으로 개인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