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만 볼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과몰입해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책은 그동안 내가 스스로 간과하고 있던 측면, 즉 지나친 확신과 경직된 사고 패턴의 해로운 영향을 인식하게 해 주었다.
대강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지레짐작'을 하고 눈앞에 놓인 상황들을 심각할 정도로 분석(해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이 끊임없이 내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소비하여 감정적으로 지치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려서부터 익숙한 ‘혼자만의 추측' 습관들로 인해 나는 크고 작은 변수들이 생길 때마다 즉시 불안과 걱정으로 채워진 소설을 빠르게 써 내렸고, 아주 오랜 시간을 부정적인 악몽의 순환에 갇혀 낭비하곤 했다.
과거를 되돌아보며 나는 내가 자라온 환경이 내 감정적 어려움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발견했다(그래도 미처 다 발견하지 못한 부분들이 더 많다).
모호함 그리고 경멸이 공존하는 환경에서 자란 나는 MBTI검사에서는 열 번이면 열 번 ‘T’ 쪽에 대부분이 쏠려있는 사고형 인간이었지만 이와 별개로 현실 속 사소한 일에서는 수시로 불쾌해지고 분노하게 되는, 즉 ‘감정적으로 너무나 자극을 받는’ 상황들을 자주 경험했다. 부모님의 불안과 두려움이 전염병처럼 옮겨진 듯 어린 시절의 나는 마음 편하게 행복했던 기억을 꼽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만큼 내적인 감정적 혼란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고, 이것은 부모님을 볼 때마다 동정심과 죄책감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책 안에 사례들이 비교적 자세히 나온 덕에 나의 감정적 감옥의 근원을 생각보다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전부 다는 아닐지라도 나는 내 안에 넓게 퍼져있는 비관주의의 뿌리 일부분을 발견했고, 나에게 주어졌던 물리적, 환경적인 서사에 맞설 수 있는 구체적인 대처들에 힌트를 얻었다.
지레짐작의 위력은 참 대단했다.
지나친 확신과 'should(~해야만 한다)' 형태의 사고는 그것이 아무리 옳은 것일지라도 동시에 사람을 감정적으로 무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내가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강한 확신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만큼 감정적으로 ‘타격감이 큰’ 취약점이 된다는 것이다.
비관도 습관인 것을 안다. 문제는 단순히 부정적이어서가 아니라 ‘당장 생각해도 어떻게 안 되는, 답이 나오지가 않는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악순환에 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소용돌이다.
다음은 내가 책을 읽으며 나의 '감정을 관리하기 위해' 나름대로 나의 방식에 맞게 정리해 본 것이다.
🧠 감정을 해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지레짐작 말고 현실 집중: 아무리 노파심이라도 남의 마음이나 생각을 앞질러 분석하려 들기보다는,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자. 항상 당면한 현재 문제에만 집중하고 복잡한 과거나 미래의 맥락은 일단 잘라내자.
🍃 당장의 해결책에서 배우기
임시방편의 가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당장의 해결책이 근본적이지 않더라도,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멀리 보지 말고, ‘그때그때’그때 그때’ 답을 내어 행동하자. 그것을 시도, 반복하는 것이 긍정적인 나비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자.
🤗 사람들과의 관계 재정립
나를 돕는 관계 구축: 주변 사람 중 나를 안심시켜 주고, 불필요한 감정 소비를 줄여주는 사람들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불쾌감을 주는 사람들에게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나의 일상감을 높여주고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자. 그 관계에 더 집중하자.
🌈 긍정적 상상과 행동으로의 전환
생각과 행동의 조절: 스스로를 ‘downer’가 되게 만드는 우울하거나 불안한 시뮬레이션을 바로 ‘스톱’하자. 대신 생산적인 행동으로 방향을 전환하자. 정 안되면 나가서 걷기라도 하고 오자.
📚 감정 조절을 위한 균형 찾기
적절한 기준 선 설정: 미리 기준치를 정해두자. 그리고 100퍼센트 중 60퍼센트 정도에 그칠지라도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것을 연습하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되, 모든 상황에서 전부 다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자동화된 사고를 덜어내자. 해보고 안될 때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자.
책을 읽는 도중 나는 책의 내용들을 적용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감정을 ‘건드리고’ ‘뒤흔드는’ 상황들을 일일이 예측하고 준비하는 노력에도 불구, ‘시나리오를 벗어나’ 반응하는 나의 내면 자아를 진정시키는 것이 결코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제대로 경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어깨에서 무게가 덜어지는 느낌을 느꼈다. 일단 알면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의 얽힘을 피하려는 노력을 하는 동안 내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책 내용에 푹 빠져들면서 나는 나의 취약성에 직면하는 것이 정서적 자유의 열쇠라는 것을 깨달았다.
‘직면’한다는 것은 바로 당장 고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감정이 섞인’ 대응들, 그것의 원인이 되는 것들에 대해 시간을 들여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이 과정은 방어하는 예민함, 분노하는 공격심이 안도감과 명쾌함으로 바뀌어지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차분하게 가라앉는 카타르시스적인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삶의 고질병이었던 지레짐작의 습관을 끊는 것만으로도 (아무런 일이 없음에도) 상대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실제 경험하게 되었다.
현재 내 목표는 간단하다. 삶의 순간순간 단순함과 감사를 받아들이면서 ‘60점’에 어떻게든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생각을 과장하여 받아들이는 습관을 끊기로 ‘결정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가두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감정조절에 서툰 사람들은 항상 같은 패턴을 반복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학습능력이 없는 셈입니다.
눈 앞에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 당연히 조심조심 걸어야 합니다. ‘저 사람에게는 늘 휘둘리기 일쑤야’라고 깨달았다면 ‘냉정해지자’, ‘사무적으로 처리하자’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도 실패하는 이유는, 머리 한구석에 ‘이런 놈 따위’라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이 빈정거린다고 상대하면 안돼’
‘이 녀석의 변명 따위 곧이곧대로 듣지 않겠어’
그런 맘으로 상대방을 마주하고 있다면 이미 감정적이 된 것입니다. 이때 예측한대로 상대방의 입에서 질척질척한 빈정거림이나 변명이 튀어나오기라면 하면 불쾌한 감정은 단숨에 증폭됩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감정의 패턴이 평소와 같으므로 결국 매번 같은 흐름으로 대화가 전개되고 맙니다.
-늘 같은 사람이 문제가 될 때/ 체면에 얽매이면 감정적이 된다
확실히 우리 주변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은 제대로 상대하지 않고 신경 쓰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따위 그냥 내버려 둡니다. 포인트는 두 가지 입니다.
·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일부라는 점
· 화를 내도 상황을 바뀌지 않는다는 점
그렇다면 내버려둘 수밖에 없고, 화를 내도 의미가 없습니다.
-말이 안 통하면 내버려둔다
주변을 둘러보면 금세 발끈하는 사람, 언짢은 기분을 숨기지 않는 사람, 독선적이어서 종종 주위와 충돌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른답지 않은 인상을 줍니다. 아무리 경험이 풍부하고 일에 훤한 상사라 하더라도 인지적으로 성숙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매사 단정지어 버릇해서 한번 이거다 확신하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그것을 수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경력이 짧고 지식이나 정보량은 평범해도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판단하고, 상대방이나 주위와 평온하게 말을 주고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물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판단에 단정이 들어가지 않는 유형입니다. 이런 유형은 좀처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그때그때 냉정하게 답을 낼 수 있습니다. 인지적인 성숙도는 이쪽이 물론 높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
심리학 용어에 ‘모호함을 견디는 내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지적 성숙도를 나타내는 큰 지표입니다.
이를 테면 어떤 식물을 보고 ‘이건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는 식물이다’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적이냐 아군이냐’ 구분하는 게 아니라 ‘적도 아군도 아니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어느 쪽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고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지적 성숙도가 낮은 사람은 좀처럼 그렇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흑백을 확실히 가려야만 직성이 풀리지요. 즉 ‘모호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적군도 아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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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연습>
부제: 나도 모르게 감정적이 되어 손해 보는 사람들을 위한 감정 관리의 기술
지은이 와다 히데키
옮긴이 전선영
펴낸곳 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