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장에서는: 이번 장에서는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서의 유혹과 도전을 다루며, 미술치료를 통해 실제 세상을 경험하고 상상력을 키워가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부모의 유혹적인 환경으로부터 자란 아이들은 현대 사회에서도 유혹에 노출되며 성장합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자연과의 연결이 중요하며, 양육 방식에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내 딸들은 파버빌이라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세계로 가기 위하여 몇 시간씩이나 다락방에 틀어박혀 있기 일쑤였다.
이웃의 몇 명 아이들과 나무토막, 마분지박스, 벽돌받침 선반, 직접 만든 구조물 등으로 자신들이 창조한 인물들을 파퍼빌 주민으로 만들었다.
캐롤은 올드필드의 유도된 이미, 그림, 이야기를 이용한 강좌에서 아이들에게 힌트를 주는 방식을 거슬려했다. 올드필드는 현대의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독창적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선택사항을 제공할 수 밖에 없었다고 대답했다. 이제 이러한 아동들이 자라서 우리가 치료해야 할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부모들은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부모들조차 종종 공허감을 느끼고, 한계를 두려워하며, 문제해결을 위해 아이들과 씨름한다. 리모트 컨트롤을 손에 쥐고 자란 이들은 지루하거나 어려우면 다른 채널로 돌려버린다. 부모들은 자신 안에 해결책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문제와의 씨름이 그 자체만으로 성장의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듯하다.
→아이와 함께 치료실에 오는 부모들도 어릴 때부터 유혹적인 환경으로부터 침범당하면서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된 것이다. 1950-60년대에 쓰인 책이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문제는 변하지 않았다.
지금 시대는 자녀가 리모컨을 쥐고 채널을 돌린다면 매우 양호한 편이다. 대부분 아이들은 자기 방에 들어가서 티비가 아닌 유튜브를 보고 그것도 길어서 틱톡을 본다. 사람들은 5분짜리 영상도 힘들어한다.
아이들은 원하면 언제든지 불러내거나 들여보낼 수 있는 전천후 노예인 TV연예인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과 어떠한 개인적 관계도 형성할 수 없는 이 연예인들에게는 설득과 유혹만이 그들의 힘이었다. 지속적인 즐거움을 요구하는 것은 잘 짜여진 이야기 전개가 불가능하다는 것(매우 작위적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대신 끊임없는 액션이나 폭력적이고 몸으로 웃기는 코미디가 제공되었다.
항상 탈출구를 제공하는 텔레비전의 특성은 아동들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감소시켰다. 긴장상황에서 신경과민 반응을 일으키기보다 내적 소양이 부족한 무정형의 의존적 인격을 키워나가게 되었다. 대체 만족에 중독되어 아이들은 박탈당하면서도 버릇이 없어지고, 변덕스럽고, 무상으로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박탈당하면서도 버릇이 없어지고" (관심과 지지, 격려 채워지면 해결됨) 오냐오냐 부잣집 (훈육해주고 가르치면 해결됨) 한계를 잘 가르쳐주는 것이 훈육이다.
사랑이 부족하면서도 오냐오냐 키우는 것이 현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다. (찢어진 교복 예화-수선해주거나 두 번 이상 부터는 사주어선 안 된다, 지각 예화-지각해도 버스타고 가야 하게 함. 선생님한테 혼나는 것보다 평생 지속될 엄마와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게임은 아이들의 이기고자 하는 정상적인 경쟁심과 폭력 성향, 자유로운 환상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도록 고안되었다. 호면 속 캐릭터들은 전문가에 의해 디자인되어 어른들이 만들어 낸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화면 속의 모형들을 조작하는 데에는 별다른 에너지나 용기가 필요하지 않지만, 화면 속의 비현실적인 기교들과 비교했을 때 아동이 스스로 하는 재밌는 행동이나 발명은 그에 비해 하찮게 여겨져 아동은 점점 스크린을 통한 손쉬운 만족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이 이러한 게임으로 성숙 단계에서 습득되어야 할 많은 기능들을 습득하지 못하게 된다.
→옛날에는 혼내고 때리고 이런 식의 박탈이었기에 치료자가 다시 관심 공감 지지를 채워주면 해결되었다. 또는 반대로 오냐오냐 부잣집 망나니 도련님이라 버릇이 없는 식의 박탈이라면 훈육하고 가르치면 해결이 되었다.
훈육은 해야될 일 안 해야 될 일을 잘 가르쳐 주는 것이다. 요새는 사랑도 부족하면서도 한편 오냐오냐인 형태의 복합적 박탈이 문제가 된다. 두 가지 양육 방식 'warm & firm'에서 혼낼 필요가 없다. 여기까지가 한계야, 미리 알려주고 한계가 오면 집행하면 된다. 매일 반복해서 지각하는 아이는 교사에게 혼이 날 것이다. 교사에게 혼이 나서 관계가 나빠져봤자다. 그게 더 낫다. 그러나 엄마와의 관계가 나빠진다는 것은 더 큰 것을 잃는 것이다. 비즈니스 인맥보다 부모 자식 관계의 인맥관리가 더 소중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계는 정확히 거꾸로다. 먼저 욕과 혼을 퍼붓고, '해결은 대신해 준다'. 자기 화 다 내고 자기 욕심 다 부리고 그리고 미안하니까 돈으로 채워주는 식이다.
진짜로 사랑을 주고 따듯하게 대해주고.. 이런 게 힘들고 귀찮기 때문에 막 해버린다. 윽박 지르고 자기 욕심대로 달달 볶고 미안하니까 돈으로 때운다. 옷을 사준다. 오냐오냐하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대신 다 해준다. 차 다 태워주고, 숙제를 대신해주고 어른이 되서도 이런 반복이 계속 된다.
*유튜브에서 '밀레니얼 세대 특징'을 검색해서 '체인지 그라운드'에서 업데이트한 영상 보기
'손쉬운 만족'은 곧 이전 페이지에 나온 '대체 만족'과 같은 의미다. 무상으로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 버릇 없고 변덕스러운 것, 조급한 것 이것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현상이다. 현실에서 실제로 내 근육을 키우는 것은 시간도 걸리고 힘이 들지만 온라인 게임안에서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는 것은 물론 쉬운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보다는 더 '손쉬운' 성취가 된다. 대체만족에 만족하는 습관에 머무르는 것이 진짜 문제인 이유는, 아예 없으면 그 결핍을 찾게 되어있는데 '유사한' 것 , 싸구려 같은 뭐라도 있으면 진짜를 찾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손쉬운 만족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그 손쉬움을 일단 맛보면 조금이라도 불편한 것이나 시간 걸리는 것을 '안하게 되버리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유사한 것을 해서 이도 저도 되지 않거나 진짜에 이르지 못하느니 결핍이 더 복인 경우도 있다.
소확행에 중독되면 대확행을 못하게 된다. 그 긴시간 걸리는 것을 할 엄두도 역량도 되지 않는 것이다. 열심히 일한 자가 떠나는 거지 열심히 일하지 않은 자는 계속 남아있게 된다.
많은 젊은 부모들이 그들의 아이들을 공격하는 바로 그 유혹의 힘을 받으며 성장했다. 부모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그들은 종종 무력감과 공허감을 느끼며 그 허전함을 물건으로 채우려 든다. 가공의 세상에 빠져 있는 아이들을 제대로 인도하려면, 먼저 부모들이 이러한 상업적이고 유혹적으로 포장된 가공의 세상 너머에 존재하는 실제 세상을 경험하며 살 수 있어야 한다.
미술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은 유혹적인 테크놀로지의 악영향을 줄여 준다. 손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물감, 나무, 진흙, 돌, 등으로 형태가 주어지고, 재료가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 저항하고, 복종하고, 주장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현실이 탄생한다. 컴퓨터 아트는 이러한 몸과 마음의 교류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마우스를 이용하여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게 하면서 아이들을 비디오 게임에서 떼어 내려고 한다면 결국 테크놀로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손과 마음은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서로 분리되어 있게 된다.
테크놀로지의 위력을 조심하고, 그 무시무시한 대가를 생각하라. 얻는 것 안에 잃는 것이 있음을 잊지 말라. 기계의 대가와 당신의 삶을 통제하는 그 시스템을 인식하라. 자연에 관심을 가지고 그 안에 커져가는 파고에 주목하라. 산업주의의 치명적인 유혹에 저항하라 -커크패트릭 세일(Kirk-patrick Sle,1995)
→ 친구나 가족의 문제로 무료상담센터를 문의해오는 경우가 있다. 자해까지 하는 심각한 상황인데 무료를 알아보다니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료 정보 찾느라 버리는 시간과 제대로 되지 않은 정보를 얻는 것이 훨씬 아깝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정보의 홍수 때문에 더 헤매고 다닌다. 홍수가 나면 더 식수가 없게 마련이다. 통찰력이 더 중요하다.
무료정보 찾느라 버리는 시간이 아깝다. 정말 필요한 지식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많은 정보들이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홍수가 나면 오히려 식수가 없다. 미술치료사가 모든 문제의 해결사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고, 왜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고 이것들의 본질이 무엇인지 계속 볼 수 있게 하는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 막상 현장에 가면 온갖 종류의 문제들이 터지는데 그것들이 다 논문으로 있지도 않고 부모와의 상담을 해야 하며 그것은 그들이 받아들일 만한 것이어야 한다.
미술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은 유혹적인 테크놀로지의 악영향을 줄여준다.
펄스(Pearce 1977)의 연구는 대뇌 신피질이 아직 전부 사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인간이 진화의 정점이나 끝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신피질의 발달을 강화하기 위해서 아동들은 무엇이 필요할까? 펄스는 아이들에게 이미지를 제공하는 언어적 자극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대뇌에 자극과 반응이 한 쌍을 이루어 전달되는 데 가장 큰 위험은 뇌의 습관화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대뇌 신피질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아동은 새로운 자극에 맞는 이미지를 찾아내기 위해 뇌가 지나치게 활동하는 것을 안전하게 잠근다. 반복을 통하여 새로운 자극은 안정되게 저장된다.
안타깝게도 이미지를 발달시키는 데 실패하게 되면 상상력이 부족하게 되어 뇌의 대부분을 사용하지 못한 채로 방치하게 된다. 상상력이 없는 아동은 학습 능력이 없고, 긍정적인 사고가 부족해진다. 직접적인 지각 정보가 위협적이고 불쾌할 때, 대안을 생각해 내지 못하기 때문에 아동들은 종종 방어적이 되거나 환경에 희생당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상상력은 회복력, 융통성, 참을성, 그리고 장기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당장의 만족을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다.
자아 존중감과 같은 정신적인 욕구를 물질로 충족시키는 것은 결코 만족감을 줄 수 없다. 당신은 아직도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합니다,라고 텔레비전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 아이들이 어릴 때 책을 많이 읽고 또 들려주어야 하는 이유는 지식 때문이 아니라 그 구조적 자극이 '상상하는'능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들음으로써 상상력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가 들려주는 것이 가장 좋다. 상상력은 책을 통해서 길러지는 것이다. 유튜브는 언어 뿐 아니라 이미지가 함께 제공되기 때문에 대뇌 신피질이 일을 해서 그 언어적 자극, 구조적 자극에 맞는 (이미지에 대한)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 자체가 없어진다. 멍하니 가만히 있게 될 뿐이다.
→ 영상을 보는 것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상상력을 쓰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에 길들여지게 만든다. 대뇌 신피질 발달이 가장 피크에 이르는 6,7세에 책을 많이 읽어주고, 가급적 영상에 노출되지 않게 하고, 그림을 그리고, 이러한 훈련이 쌓이지 않았는데 어떤 능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미술치료사는 어떤 면에서 어린 시절 제대로 양육받지 못한(예를 들어 웜앤 펌 교육이 아닌 콜드앤 낫펌으로 교육받은)내담자를 재양육해야하는 일을 한다. 부모들이 이미 본문 내용과 같이 유혹의 환경, 중독의 환경 아래 제대로 양육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자녀들(내담자)을 건져낼 힘을 스스로 갖고 있지 못하다. 치료사 역시 마찬가지다. 살면서 얼마나 상업적이고 유혹적이고 가공세상에 '혹 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왔는 지 철저히 깨달아야 한다. 손쉬운 만족과 가짜 칭찬.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얻게 되는 것들. 단시간 자격증, 메뉴얼화된 그림법과 취미 미술, 반제품 재료와 미술교육 등.. 경제적인 논리로 범벅된 이 결과물들을 바보같은 원리만이 이길 수 있다. 백원 짜리 물건 백원 받으면 되는데 팔십원 짜리 물건을 백원에 팔려고만한다. 그리고 백이십원 짜리를 백원에 팔 생각은 전혀 안한다. 사람은 결국 가장 마지막 후자에게 몰릴 것이다. 사람들은 그러면 손해봐서 '망하는 데' 사람들이 많이 가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한다. 그러나 그 이십원의 차이가 꼭 원가가 아니어도 되는 것이다. 미소 친절 진정성 이런 것들에는 원가가 없다. 특히 서비스업은 더 그렇다. 한번 더 친절히 설명하고 한 번 더 웃어주는 것, 그것이 어떤 물건으로 원가를 더 쓴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백원짜리 물건을 백이십원 짜리로 만들 수 있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 전략이 이것이다. 내 실력이 백이십원인데 백원만 받는 것이다. 그러면 얼마든지 나에게 기회가 열리고 사람들이 나만 찾아올거고 나는 떳떳하고 기분좋게 일할 수 있다. 자꾸만 팔십원 짜리 물건을 백원 받으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긴다. 어떻게 하면 속여야 하나, 이런 것들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슈포노멀 오브젝트 현상, 유혹현상, 손쉬운 만족, 대체만족 이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미술치료 시간에도 아이들에게 쉽고 빠르게 무언가 달성하게 만드는 것이 아이들의 진짜 자존감을 형성시켜 줄 수 없는 것이다. 무조건 잘했어 잘했어 칭찬을 바르면서 키우는 것이 아이들의 진짜 자존감을 키워주지 못한다.
치료 중인 아이들 부모도 유혹적인 환경에서 자라났다고 할 수 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유혹의 위력이 강해졌으나 현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부모들은 지금 그들의 자녀가 유혹당하고 있는 것처럼 유혹당했었다. 파울 클레가 미술 교사들에게 던진 충고는 미술치료사에게도 유효하다.
"학생들을 자연으로, 자연 속으로 인도하라! 꽃봉오리가 어떻게 피어나는지, 나무가 어떻게 자라는지, 어떻게 날개를 펴는지 경험을 배우게 하여 대자연과 같이 풍성하고, 다양하며, 변화무쌍한 사람들로 자라게 하라." (Haftmann, 1967)
→미술치료는 디톡스다. 살면서 받은 여러 심리적 상처, 잘못된 교육의 영향, 설탕 범벅의 거짓 칭찬, 손쉬운 만족 등..을 벗어자 나 답지 않은 것들이 다 덜어지는 시간이다.
컴퓨터 아트에 대한 견해는 크레이머 개인의 견해다. 진짜가 아닌 것, 가상에 대한 탐닉으로 인해 문제가 된 사람들에게 디지털 매체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가 있겠느냐라는 것인데, 일정 부분은 맞을 수 있다. 그러나 가상이나 손쉬운 만족, 진실되지 않은 나로 인한 문제를 겪지 않은 내담자에게는 사람에 따라서 디지털 매체가 종이보다 더 집중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가상의 세계로부터 떨어뜨려 놓아야 할 필요가 있는 내담자 외에 무조건적으로 디지털 도구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상상력이 부족한 것은 상상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학습 능력이 부족하고 긍정적인 사고가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동굴에 갇혀 밖을 찾아나가는 상황이라고 할 때, 동굴 안에서 밖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동굴 안을 견디면서도 더 열심히 힘차게 찾아나갈 수 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시커먼 어둠 외에는 동굴 밖의 세계에 대해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 사람은 그럼 동굴을 왜 나가야 하는지 아무런 동기 부여 자체가 되지 않는다. 꿈꾸는 사람이 이루어지고 성장한다는 얘기가 바로 이 '상상'이 되어야만 거기 가까이 갈 수 있는 뭔가(동기 부여)가 생기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래서 롤모델 또한 중요하다. 나의 미래를 떠올리기가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요즘 이십대의 우울증과 자살이 매우 심한 데 이는 상상력의 부족 또한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치료 중인 아이들 부모도 유혹적인 환경에서 자라났다고 할 수 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유혹의 위력이 강해졌으나 현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부모들은 지금 그들의 자녀가 유혹당하고 있는 것처럼 유혹당했었다. 파울 클레가 미술교사들에게 던진 충고는 미술치료사에게도 유효하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활동 중에 가장 자연 세계에 가까운 활동이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머리로만 가공의 세계에서 하는 학습이 아니라, 손으로 움직이고 대상을 실제 만지고 만들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미술만이 할 수 있는 자연 활동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