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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문어의 방>노르웨이수상작그림책. 가족성폭력의 민낯과 '이야기'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 저학년동화책 외국그림책추천

by 돌냥 2024.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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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처럼 이야기되지 않는 사실들을 자꾸 말하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이야기’를 지어내서라도 자꾸 드러내고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화책을 골랐을 때만 해도 이런 내용으로 내 안이 검게 물들게 될 줄은 몰랐다

어둡긴 하지만 아동들이 보아야 하는 동화, 막연히 아동 우울증이나 가정 내 폭력에 대한 이야기일 줄로만 생각했다

 

이야기는 '생각보다' 끔찍했지만 중요한 것은 '생각보다' 현실 속에 흔한 일이라는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심장이 쓰라려 온다

내적 공감력이 크기 때문에 사실 쓰고 싶지 않은 리뷰였지만 그렇기에 더 쓰는 사람이 없을 것도 같아서 써보려고 한다

 

이동화는 '금이'라는 아이가 겪은 '친족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르가 동화인지라 무섭거나 무겁지만은 않지만 아이의 눈으로 그려졌기에 사실적 묘사 이상으로 훨씬 가슴이 아프다

당연하게도, 여자로 태어난 이상 집 안에 남자형제가 없더라도 아주 다양한 경로로 '남자'를 접하게 된다

그것은 옆집 아저씨일수도 있고, 부모의 친구일 수도 있고, 친척오빠나 사촌오빠일수도 있고, 심지어 자매의 남자친구일 수도 있다

동화에서는 형제(아마도 오빠)로 그려져 솔직히 많이 뜨악했지만 경험한 사람들의 고통은 나의 충격 그 이상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겪은 트라우마-정확히 알 수 없는 그 혼돈 상태의 실상-가 성장해가며 자각이 형성되며 수면 바깥으로 올라오기까지, 그 긴 세월간 얼마나 다양하고 아픈 부작용들을 겪게 될 지. 이것이야말로 철저히 현실적으로 다뤄져야 할 중요한 문제다

 

 

 

 

그러니 나의 잠깐의 감정적 안타까움 따위야 하등 중요하지않다 철저히 현실적인 문제다

그리고 한가지 잊은 것이 있었다 모든 성폭력은 물론 이고 친족 성폭력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남아의 성인 남자에 의한 성폭력 역시 심각한 문제다 동화 뒷편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보면 이 동화책을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쓴 것 아니냐고 저자에게 물어보았던 아이 역시 남자아이였다 중요한 것은 한 가족이 다른 가족을 성적으로 인권적으로 생명적으로 해치는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눈빛’이 갑자기 변하고, 무엇보다 ‘손’을 벗어날 수가 없다

아이들은 범죄 피해 이후 그 ‘손’에 잠식된 기억을 떨쳐버리지를 못한다

놀랍게도, 동화는 (나는 당연히 글과 그림 저자 모두 한국사람인 국내 그림책인줄 알았다 )복지 최상위 국가인 ‘노르웨이’에서 출간되었다

노르웨이에서는 해마다 3천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친족 성폭력 센터에 피해 사실을 알린다고 한다 그리고 유럽 어린이 5명 중 1명만이 성적 학대를 받은 경험이 없다고 한다

한국 역시 말할 것도 없다 최근 전체 성폭력 상담의 약15%까지 급증한 통계 자료가 있다 성폭력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 까지 합치면 피해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부모의 알콜 중독, 약물남용, 학대와 방임과 마찬가지로 성폭력 역시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는 너무나, 너무나 어려운(물건을 훔쳤거나 친구를 때렸거나 하는 등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차원’조차 넘어서는 ‘거대한’) 일이다. 왜냐하면 속죄해야 하는 일이 아님에도 가장 남모르게, 철저히 혼자서만 속죄해야 하는 것으로 피해의 성격이 잘못 규정될 확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정은 이제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고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내가 심난한 가운데 동화를 통해 새삼 새롭게 눈여겨 본것은 성폭력의 과정이 우리가 성범죄로부터 쉬이 유추하듯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을 배경으로 한 가족을 대상으로 한 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명확한 판단력으로 옳고 그름에 대해 의식하기 어렵고, 그만큼 빈도수가 잦아질 수 있다는 그 '조용하고 잔잔한 잔인성'에 있었다

 

물론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시사프로그램에서도 종종 보긴 했지만 아이의 목소리로 읽게 되는 정황은 단순히 티비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달랐다 아이가 자신의 일기장을 쓴 듯한 동화책을 통해 같은 문제를 접하는 것은 어린 아이 시절로 내가 돌아가서 직접 경험하는 것 같은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겉으로 밝게 웃고 떠드는 아이들에게도 이런 경험들이 있을 수 있다 아니 있을 것이다 의사표현에 소심한 내성적인 아이들에게 주로 이런 일들이 생길거라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가족은 동화 속 표현처럼 조금 미안하지만 ‘문어’다 물론 이것은 가족을 혈연인 동시에 엄연한 자기 결정권을 가진 독립적 존재로 대할 때가 아니라 감정적, 신체적, 물리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위해 이용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킬 때의 그 가해자의 존재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다

(**실제로 문어는 경이로울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으며 먹이 앞에서의 인내심은 인간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왜 우화의 대상동물로서 문어를 선택했을까. 출판사 서평에 보면 한번 붙들리면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폭력의 순간을 문어에 빗댄 것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고민해봤을 땐 아마 그런 빗나간 행동에 대한 ‘지능(본인 행동이 범죄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그래서 명확하게 (동화속에서는 커튼과 문잠금 등)가리려고 하는)’과 검은 먹물이라는 뭔가 잔혹해보이지 않는 것 같은 ‘폭력’을 은유하고자 했음이 아닐까)이다

 

 

 

 

아이의 시선에 맞춘 ‘그 행동들이 모두 너가 아닌 바로 그 사람의 범죄 행각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공통적인 범죄 행동 묘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 아동의 입장을 우선하려고 했던 작가의 안간힘을 통해 탄생했다

 

안간힘의 첫째는 아이에게 그것이 조용히 묵과해서는 안 될 범죄라는 것을 (아이가 무서워하지 않고 더는 반복해서 당하지 않도록)분명히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아이가 동화책을 보면서 시각적으로 또 상징적으로 피해 장면과 관련하여 트라우마로 형성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섣불리 다른 사람의 몸 배 가슴 엉덩이 털난 다리 큰 손 그리고 남자 어른이나 자기보다 큰 남자아이를 두려워하게 만들어서도 안 되었다 (그런 모습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하고 친절하고 함께 있어도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렇게 나 끔찍한 일을 겪은 것이 아님에도, 자기 인생에 주홍글씨같은 낙인을 찍은 사람들(주로 학교나 직장에서 만나는)에 대해서는 어린 아이가 아닌 성인기의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우리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이런 유사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반응은 사실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대부분의 선한 사람들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성폭력 문제를 떠나 그것이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비극이기 때문이다(내가 겪은 하나의 큰 절망으로 인해 나머지 아홉가지의 행복을 스스로 차 버리게 ‘되어버리는’상태가)

 

 

 

작가의 고민과 의도대로 이 동화는 다행히 동화로 남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동화를 ‘겁먹지 않고’ 읽을 수 있다(두렵거나 겁먹는 것은 오히려 어른들일 수 있다 피해자 아이의 경우 작가의 말에서 나온 것처럼 먼저 ‘놀랄 수’가 있다 자기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이다) 아이가 편안히 읽을 수 있기에 어른도 읽은 후의 생각과 느낌을 아이와 함께 나눌 수 있다

 

그림의 표현적 특징을 보자면 일단 모든 그림이 양쪽 두페이지가 하나의 그림이다

그리고 금이(이름 때문에 처음에 한국동화인줄 알았지만, 영어 gold, 노르웨이어 Gullet로 실제로 '금'이란 의미를 가진 이름이다)와 금이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들, 그리고 엄마가 나오는 부분은 연한 빛의 노란색으로 그려진다 이를 제외한 동화책 전체의 배경과 아빠와 오빠는 회색과 파란색이 섞인 시멘트 빛깔이다. 금이는 오빠가 문어로 변태하면서 본래 가졌던 금색을 잃고 시멘트빛으로 바뀌게 된다

두번 세번 네번 볼수록 이 그림책의 시각적 효과는 언어가 해주지 못하는 부분들을 완벽하게 채워주고 있다

 

 

 

 

검색해보니 가족이 상징하고 있는 동물 중 원숭이(오빠)와 타조(아빠)는 유럽 문화권에서 가장 좋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는 동물이라고 한다. 얼마 전 읽은 책을 통해 인간의 착각임이 드러나긴 했지만 여튼 노르웨이와 폴란드에서는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마치 눈만 숨긴 그런 상태가 자기 몸 전체를 숨기고 있는 것이라도 되는 듯)이 봤으면서도 안본듯 들었으면서도 안들은 듯 하는 인간의 방관하는 모습을 비유한다고 한다 이는 금이의 고통에 눈가리고 아웅하는 아빠의 모습과 같다

동화에서 그려지는 금이 아빠는 보호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현실 속 어른의 모습을 상징한다

 

"아빠는 타조야. 그 일에 대해서 들으려고도, 말하려고도 하지 않아."

 

그리고 원숭이인 오빠는 자세히 관찰하면 문어로 변하기 이전부터 손이 원숭이도, 인간의 손도 아닌 문어의 빨판이 돋은 다리를 닮아있다. 또 (매번) 바지 바깥으로 나올만큼 길게 늘어져있는 벨트는 성기를 의미하는 듯하다.(3-4페이지)

 

다행히 엄마는 독수리다. 사건을 알게된 엄마는 정당한 공격과 분노를 통해 오빠가 금이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는다.

 

"문어는 이제 개구리가 되었어. 개구리는 금이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평소의 일상을 되찾은 금이에게 연한 노란빛이 돌아온다

 

 

 

더 면밀히 그림을 반복해 보면, 동화 속 아빠와 오빠 모두 손에는 (동화책 그림에는 어떤 터치도 의미있는 묘사가 없다!)첫장부터 순서대로 핸드폰, 아이패드, 티비(컴퓨터), 헤드폰이 꾸준히 그려져 있다. (페이지마다 아빠와 오빠만 찾아서 보면 알 수 있다)가상현실이 현실 속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인공세계에 있는 것들은 우리를 무감각하고, 귀머리거리로, 때로는 사악하게 만들곤 한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읽은 동화 중 기억에 남는 동화들은 죄다 슬펐다

애들을 울리려고 쓴 건가? 어린 그 나이에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현실을 말해주는 '유아적으로 과장되지 않은' 동화가 아이 입장에서도 더 부작용이 없고 건강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동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제는 방에 혼자 있어도 괜찮아. 누군가와 함께 놀 수도 있어. 조심하고 경계할 필요없이 아침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숨쉬고 생각하고 장난치고 잠자고 꿈꾸면서 살아가는 날들, 새로운 날들이 정말 좋아”

하나의 단어도 의미없이 쓰이지 않은 고민한 기색이 역력한 이 동화는 어른에게는 아이를 지키기 위한 용기와 영감을 심어주고 아이에게는 엄마의 품같이 안심할 수 있는 위로를 건넨다

 

<문어의 방>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과거 고통으로 인한 족쇄가 아닌 ‘새로운 날에 대한 날개’를 달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었다

 

 

"나는 이 주제를 다룰 ‘말’이 없었다. 너무 어렵고 위험 부담이 커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 주제로 책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꼭 맞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적절한 비유와 은유, 입 밖으로 내기 꺼리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내보일 수 있는 말을 찾아야만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그들이 겪은 일이 혼자만의 비밀이 아니라는 것, 그 경험을 전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일단 말을 꺼내기만 해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말을 꺼내는 동시에 닫힌 마음에 통풍구가 열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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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의 방> 원제: Blekkspruten

 

지은이 그로 달레

그린이 스베인 뉘후스

옮긴이 신동규

펴낸곳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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