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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에세이]<작가의 계절>일본근대문학 맛보기. 일제강점기과 광복 전후시대의 일본 작가들

by 돌냥 2024.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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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내리비치는 나무 하나에 걸터앉아 잠시 쉰다. 발밑에는 메마른 풀고사리와 도톰한 푸른 이끼가 폭신폭신하고 따스하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조금도 외롭지 않다는 사실을. ‘이 정도면 외로움쟁이는 아니지 않나’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고 싶다. 지금 내 안은 고요로 가득 차 있다.
-하시모토 다카코 <모밀잣밤나무 열매> 1950

 

 

 

 

 


<작가의 계절>은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의 일본 근대문학 작가들의 글을 모은 책이다.

처음에 책을 집어 들었을 때는 소개된 작가들이 이렇게 많을지도, 삽입된 글들이 이렇게 짧을 지도 몰랐다. 작가별로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일종의 편람(便覽) 같기도 하다.

길어야 네다섯 페이지 내외의 짧은 산문들과 간단한 프로필만으로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그려지는 병약하고 섬세한 이미지로 그려지는 작가 군상(시인, 소설가 등)들을 글로 나마 생생하게 상상해볼 수 있다. 다만 차이점은 이들은 가상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들로, 꽃이 피고 지듯 한 시대를 저마다의 삶의 결을 따라서 살다가 간 이들이다.

 


돌연 누군가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친다’기보다는 건드리는 소리였다.
명아줄 수풀에 놓인 피아노. 어디에도 사람 그림자는 없었다.
겨우 한 음이었지만 피아노 소리가 틀림없었다. 왠지 으스스해서 다시금 걸음을 재촉하려는 순간, 뒤쪽에 있던 피아노 소리가 또 희미하게 소리를 냈다.
그 피아노 소리에 초자연적 해석을 보태기엔 난 지나치게 현실주의자였다. 정녕 사람 그림자가 없었다고 한들 허물어진 벽 근처에 고양이라도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이래도 소리가 나나?”
혼자 중얼거렸다. 피아노는 햇빛 아래 뽀얀 건반을 펼쳐 놓았고, 그 위에 어느새 밤 한 톨이 떨어져 뒹굴었다.
길로 되돌아가 폐허를 쭉 둘러봤다. 그제야 슬레이트 지붕에 눌린 채 비스듬히 피아노를 덮고 있는 밤나무를 알아챘다. 그건 어찌 되든 좋았다. 나는 그저 명아주 수풀 속 피아노만 유심히 바라봤다. 지난해 대지진 이후 아무도 모르는 소리를 간직해온 피아노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피아노> 1925

 

<작가의 계절>은 각 작가들의 수많은 작품 중 일상 테두리에서 벌어진 소소한 일기 형식에 가까운 글들을 위주로 담았다.

지금처럼 도파민을 자극하는 오락과 유흥거리가 넘치는 시대에 비하면 -작가 개인 차원의 깊고 풍부한 문학적 세계와 시대적 차원의 전쟁 전후의 여러 폭풍같은 정황 외에는- 단조롭기 그지없는 듯한 그들의 삶은 오히려 자연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신만의 심상에 깊이 빠져 내면 세계를 자유롭게 글로 풀어놓을 수 있는 풍부한 사유가 가능하게 했다.

작가들의 글을 보면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일상의 사소한 것으로도 인생의 우주들을 움직이게 하는 생각과 감정의 힘이 느껴진다.


 


일제 강점기(1910-1945)가 겹쳐지는 한국, 일본의 근현대 작가들의 글은 묘하게 닮아있다. 동시대의 작가들이어서 그런 걸까. 한국 근현대 문학에 대해서도 나는 문외한 수준이지만 백석 윤동주 김유정의 작품을 읽을 때와 같은 평화로움과 잔잔한 애상의 감정을 이들의 글에서도 느낄 수가 있었다.
한쪽은 지배 국가, 다른 한쪽은 피지배 국가로 다른 상황이지만 결국 작가란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을 분리해내 ‘자기 안의 세계를 맹렬하게 관찰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사회의 혼란과 불안, 신체적 질병으로부터 초연함을 잃지 않고 모든 고통과 모순의 순간들을 글로 녹여냄으로써 하루하루 생존해가는 작가들의 삶의 방식은 시대와 국적을 떠나 창조를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예술인들이 가진 모습일 것이다.




관찰하는 것만으로, 써내리는 것만으로 그들의 삶은 더 이상 괴롭지 않다. 고독하지 않다. 직업 작가가 아니더라도 '관찰과 쓰기'라는 삶의 태도는 높은 장벽으로 둘러처진 인생의 한계 가운데 더 큰 대안이나 더 큰 만족에 대해 더는 시달리지 않게 해준다.

개인의 삶은 언제나 '역사'라는 이름을 가진 액자 속에 갇힌 채 위협받는다. 하지만 액자의 틀이 휘거나 뒤틀리고 때로 부서져도 그 안의 그림은 손상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을 수 있는 것처럼, 각자는 자신이 그려낸 삶의 그림이 최대한 보존될 수 있도록 사는 내내 힘써야만 한다.

작가들이 자연 앞에서 덩그러니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예외없이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들쭉날쭉한 소란함이 아닌 지평선과 같은 고요함의 상태로 끊임없이 자신을 밀어 넣고자 해야 한다. 그때에야 우리는 바깥이 더울 때건 추울 때건 변함없이 ‘나’라는 열매가 무르익어가는 풍요한 인생의 계절 속에서 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을 좋아하는 것은 특별한 개인 사정이 있다. 가을이 바깥 산보를 나가기에 딱 좋은 날씨이기 때문이다. 나는 취미도 없고 도락도 즐기지 않는 사람이다. 낚시라든지 골프라든지 미술품 수진 같은 취미나 오락을 전혀 모른다. 바둑이나 장기는 좋아하지만 친구를 사귀지 않기에 좀처럼 같이 둘 상대를 찾지 못해 결국 두지 않게 되었다. 여행도 거의 한 적이 없다. 싫어하는 건 아닌데, 짐을 꾸리거나 여비를 계산하려면 귀찮기도 하고 집이 아닌 다른 숙소에 묵는 일도 내키지 않는다.
앞에 ‘산보’라는 글자를 썼는데, 이 단어가 나한테는 조금 걸맞지 않는다. 요즘 유행하는 하이킹인지 뭔지처럼 씩씩하게 걷지도 않는다. 대체로 목적지 없이 방향을 잃고 미친 사람처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닌다. 그래서 만보(漫步)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리지만, 늘 명상에 잠겨 걸어가기에 만약 단어를 만든다면 명보(瞑步)라는 글자로 표현하고 싶다.
나는 어떤 곳이든 가리지 않고 돌아다닌다. 대부분 사람들로 북적이고 어수선한 시내를 걷는다. 특히 정거장 대합실을 그만이다. 그저 휴식을 취할 뿐만 아니라 대합실을 오가는 여행객이나 뭇사람을 바라보는 일이 즐겁다. 때론 오직 그 즐거움 하나 때문에 정거장에서 세 시간이나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서는 한 시간도 따분하게 있을 틈이 없다. 에드거 앨런 포가 쓴 소설 가운데 종일 군중 속을 걸어 다니지 않으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불행한 남자가 나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는 그 심리가 너무나 잘 이해된다.

집을 좋아하지 않는 나. 밖으로 나가서 만보를 한껏 즐기는 나는 방랑자 기질을 타고난 걸까. 사실을 말하자면 아니다. 홀로 자유로이 살아가는 삶을 사랑하는 마음 한구석에 있는, 습관처럼 몸에 밴 고독이 시키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집 밖에 있을 때만 진정 자유롭기 때문이다.
-하기와라 사쿠타로 <가을과 만보>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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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계절 - 일본 유명 작가들의 계절감상기>
지은이: 다케히사 유메지,다자이 오사무,아쿠타가와 류노스케,하시모토 다카코,도요시마 요시오,오다 사쿠노스케,오카모토 가노코,하기와라 사쿠타로,하야시 후미코,데라다 도라히코,와카야마 보쿠스이,요사노 아키코,기무라 요시코,무라야마 가즈코,야마모토 슈고로,나쓰메 소세키,미야모토 유리코,구보타 우쓰보,모리 오가이,나가이 가후,시마자키 도손,가타야마 히로코,미요시 다쓰지,가네코 미스즈,스스키다 규킨,오가와 미메이,하세가와 시구레,다카무라 고타로,호리 다쓰오,미야자와 겐지,기타하라 하쿠슈,마사오카 시키,다야마 가타이,스기타 히사죠,요시카와 에이지,와쓰지 데쓰로,이시카와 다쿠보쿠,우에무라 쇼엔,나카하라 주야

옮긴이: 안은미

펴낸곳: 정은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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