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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궤변 말하기 대회>궤변의 향연과 인생의 진실/코믹+판타지+디스토피아 기발한 상상력의 집합체/김동식 연작소설

by 돌냥 2024.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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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작가의 <궤변 말하기 대회>는 단순한 소설을 넘어서는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중학교 중퇴와 주물 공장 노동이라는 이력을 가진 김동식 작가는, 그의 특별한 경험만큼이나 독특한 소설을 써내고 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며 1천 편이 넘는 소설을 탄생시킨 작가의 왕성한 다작력의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의 소설집들 중 특히 제목이 강렬하게 와닿은 <궤변 말하기 대회>를 먼저 읽게 되었다.

 

소설은 기승전결의 흐름보다는 옴니버스 형식이다. 궤변 말하기 대회라는 방송 오디션에 참가한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 청중들을 설득시킬만한 궤변들을 풀어놓는다.

 

 

 

 

주제는 매우 다양하다. ‘모나리자’는 죽는다. 지구는 외계의 휴양지다, 전생은 미래에 존재한다 등등..

참가자가 말할 주제에 대해 한 문장으로 듣는 것만으로도 ‘뭔 소리야?’가 절로 나올 만큼 황당한 것들이다.

 

사회자 최무정은 참가자들의 기상천외한 궤변들에 대해 비교적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입장에서 날카로운 지적이나 이견을 제시한다. 진행자의 질문에 참가자들이 반박, 설득을 펼치는 동안 처음에 진입장벽이 높았던 이 '궤변'들은 결과적으로 단순한 허무맹랑한 잡설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일말의 사실성을 반영한 '의견'으로 구체화된다.

 

궤변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편을 이론으로 이기기 위해 상대편의 사고를 혼란시키거나 감정을 격앙시켜 ‘거짓을 참인 것처럼 꾸며 대는’ 논법”이다.

나는 궤변이 그저 '헛소리'라는 단어의 고급스러운 버전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마치 사기를 치듯이 고의성(옳지 않음을 알더라도 일부러 하는)이 다분한 행동인 줄은 사전 풀이를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이미 ‘궤변’이라는 전제가 있지만 가벼움으로 치부하기엔 참가자들의 진지함 가득한 설명과 반론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지점(현실 속 실제 사건, 일반화된 학설 무엇이든 간에)을 건드리고 연결되며 억지스럽지만은 않은 당위를 확보한다.

이야기가 무르익을수록 청중들은 헛소리가 촉발시킨 ‘참된’ 상상력의 힘에 의해 알라딘이라도 된 듯 하늘을 나는 양탄자에 올라타게 된다.

 

 

“인류가 만든 모든 문명은 먼 훗날 필멸할 겁니다. 
예컨대, 언젠가는 축구가 죽을 거란 말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공으로 하는 스포츠 하나를 잊어버리게 되겠죠. 언젠가는 속옷도 죽습니다. 필요에 의해 금방 다시 개발되긴 하겠지만... 
힙합도 죽습니다. 낚시도 죽습니다. 춤도 죽습니다.
구도 죽고, 라면도 죽습니다.”

 

 

 

 

망상의 포장지로 본색을 감추고 있는 메시지들은 주로 삶의 고통, 인간의 이기심과 무지, 업보 등 죽음, 죄악, 인간의 한계라는 다소 무겁고 철학적인 주제와 맞닿아 있다.

판타지인 줄 알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함께 소원하게 된다고나 할까. 김동식이 참가자들의 입을 통해 던지는 화두들에는 아무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한 내 본심을 들킨 것 같아 내심 놀라게 되는 부분이 있다.

 

인간 귀신들이 사라진 것은 공장식 대량 축산으로 인해 죽는 순간까지 끔찍한 고통을 받은 동물 귀신들 때문이라는 것, 지구는 영생을 하는 고도(高度) 문명의 외계인들이 클래식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만든 휴양지라는 것 등 쓸모없다 치부하기엔 상상하는 재미를 자극하기 충분한 궤변들도 상당하다.

 

인류멸망 위원회와 불임 바이러스에 대한 궤변은 음모론이 진실보다 훨씬 유혹적이듯 거의 넘어갈(‘이건 거의 진짜인데..?’) 뻔했다.

모나리자는 죽습니다란 에피소드의 주제는 사실 평소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이긴 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인터넷의 발명 이후 이제는 더욱 명명백백해 아래 새것이라곤 이제 하나도 없는(그래서 예전이라면 걸작이라고 치켜세울 만한 것들도 그저 평범해져 버린) 세상에서 창조와 창작은 어떤 길을 걷게 될까, 결론 없이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많이 하곤 했다.

풍자라고 하기에는 훨씬 진실되고 해학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두운(디스토피아적인 면이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드는) 궤변들은 모두 우리 삶 속의 ‘거짓이 아닌’ 속성들을 담고 있다. 어떤 궤변(대부분의 궤변)들은 나도 진정으로 염원하는 바였다.

 

 

 

유쾌하고 가벼운 척 보이지만 작가의 글을 통해 안위감을 많이 받았다. 나처럼 생각하고 기원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 거였다.

삶을 살며가며 맞닥뜨리는 여러 부조리와 모순들, 해결되지 못하는 의문과 억울함들에 대해 나처럼 저주나 기도로 순간순간 짧게 흘려보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김동식 작가처럼 비판 또는 바람의 마음을 좀 더 발전시켜서 창조적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런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 거칠고 쓸모없고 의미 없는 인류의 족적들이 재고(再顧)되고 달리 보이고 '좀 더 살만한'것으로 '의미 있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궤변 말하기 대회는 성황리에 계속해서 진행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참가자의 궤변은 세상과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시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여러 터무니없는(?) 궤변들을 인내하고 읽어냈을 일부 독자들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설정한 듯한 참가자다.

참가자는 우리는 이 사회에 퍼진 이미 ‘사실’로 둔갑한 궤변들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한다(결정적인 예시들을 몇 개 말했다. 나는 적극 동조했다 이 책을 꼭 보아야 하는 결정적 이유에 들어가므로 스포방지를 위해 인용하지 않기로 한다..).

 

이 참가자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궤변이라고 굳이 설정하지는 않은’ 사회의 대표적인 모순들이 사실 알고 보면 죄다 ‘궤변’에 불과하다는 것, 그럼에도 사람들은 (굳이 설명하진 않았지만) 인간 사회라는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그것을 질서이자 상식으로 둔갑하고, 인과응보 같은 윤리적 덕목으로 눈속임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한다.

 

 

 

이쯤 되면 이전까지 지금까지의 궤변들을 장난 반 진담반으로 읽어왔던 사람들일지라도 이제는 다른 태도를 취해야 함을 인식하게 된다. 이 한 권의 소설에 등장한 궤변들보다도 우리가 눈을 뜨고 살아가는(살아왔던) 많은 시간 동안 훨씬 더 많은 궤변들을 보고 듣고 행동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역사가 이긴 자들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현재의 세상은 그저 '성공한 궤변들의 세상일 뿐'이라는 참가자의 발언은 삶의 아이러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한쪽으로 치우쳤던 균형 감각을 다시 되찾도록 자극을 준다.

 

궤변이든 거짓말이든 이 소설이 현실에 가려진 진실을 드러내고, 평소 잘 인식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지적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유쾌한 궤변들은 오히려 삶의 의미와 사회적 문제들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환상과 풍자의 묘한 매력을 맛보게 한 <궤변 말하기 대회>는 나처럼 김동식 소설을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 접근성이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고, 지금 지옥에서 영원한 벌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몸이 녹아내리고, 칼에 썰리고, 얼어붙고, 짓눌리고, 뜯어먹히는 형벌을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이 세상은 지옥에서 만든 세상입니다. 오래된 죄인들을 보내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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