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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비곗덩어리>'살해 당한' 존엄성/ 기드모파상 사회비판소설 / BouledeSuif / 프랑스문학

by 돌냥 2024.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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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곗덩어리>은 인간 사회의 복잡함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설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프로이센군이 루앙을 재빠르게 점령하자, '엘리자벳'이라는 성매매 여성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르아브르로 향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비곗덩어리>는 인간 사회의 계급 간 차별과 위선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모파상은 엘리자벳이라는 인물을 통해, 사회적으로 업신여김 받는 이들이 오히려 가장 인간적이고 애국심이 강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반면,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것으로 여겨지는 부르주아 계층의 인물들은 자신들의 편의와 안락을 위해 엘리자벳의 희생을 이용하면서도, 그녀에 대한 경멸을 드러내며 도덕적 가치를 저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친절하고 관대한 엘리자벳은 풍성한 음식 바구니드를 마차 안의 다른 승객들에게도 함께 나누면서 사회적 격차와 경계를 넘어서는 상호 작용을 한다. 사람들은 그녀 덕분으로 이익을 취하면서도 그녀의 직업과 신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경멸어린 시선을 보낸다.

그날 저녁, 승객들은 모두 프로이센 장교들이 관리하는 호텔에 머물게 되었고, 르아브르로의 이동이 제한된다. 포로와 다름없어진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엘리자베스가 장교들의 욕망에 따르지 않는 한, 통행이 줄곧 거부될 것이란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그녀는 모든 승객들 사이에서 유일한 구원자가 된다. 그녀는 공동체의 편의를 위해 개인적인 명예 실추를 감당하라는 압력을 계속해서 받게 된다.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결국 엘리자벳은 억지로 동의하게 되고 결국 모든 사람의 안전한 통행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희생 이후 사람들의 엘리자베스에 대한 경멸은 도리어 더 심해지고 그녀가 사심없이 도운 사람들의 확고한 위선과 도덕적 타락이 낱낱이 드러나며 서사의 정점에 도달한다.

소설은 여러 가지 아이러니를 복잡하게 엮어 놓는다. 엘리자베스는 사회적으로 배척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순간에 대의를 위해 희생할 줄 알며, 이와 대조되는 부르주아 승객들은 생존과 안전 모두 엘리자벳에게 커다란 빚을 졌음에도 그녀의 존엄성에 대해서는 냉담하게 무시하며 그들의 목적지 도착에만 집착하는 탐욕을 보인다. 

 

 


<비곗덩어리>는 소외층의 대표적 인물인 엘리자베스를 제외하고 주변 인물들의 완전한 도덕적 파탄과 이기심을 드러낸다. 마차에는 두 명의 수녀가 있지만 대중이 부도덕한 이득을 추구하는 과정을 방해하지 않는다. 부르주아층의 비난을 피하고 현실적 안온함을 취하기 위해 자신들의 신념을 스스로 어기는 종교인들의 모습을 상징화한 인물들이다.

작가는 엘리자베스의 행동을 통해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당하는존엄성 훼손을 특권층의 도덕적 타락과 한자리에 놓음으로써 더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자신들이 평소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들과 실제 행동으로서의 도덕성이 일치하지 않는 특권층의 노골적인 위선의 모습은 인간들에게 본연적으로 내재된 이중성을 나타낸다.

 

 

 

모파상은 <비곗덩어리>를 통해 인간 본성의 양면성과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어떻게 사회적 압력과 이기심에 의해 좌절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소설은 150년이 지났음에도 물질적 부와 사회적 지위가 성공과 동일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도덕적 딜레마와 동일한 맥락을 지닌다. 엘리자벳은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사회 속에서 계급적 약자들의 투쟁을 형상화한다. 그녀가 가진 매춘부라는 직업은 사회적 지위나 직업에 관계없이 모든 개인의 고유한 존엄성에 대한 성찰을 일깨운다.

소설이 발표된 당시보다 더하면 더한 혼란과 분열의 현재 시대에 <비곗덩어리>는 우리가 여전히 과거로부터 어떤 것도 배우지 못했고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상태임을 확인시켜준다. 소설은 진정한 성취와 행복이 물질적 소유나 사회적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정의와 성실의 원칙에 대한 헌신(엘리자벳으로 상징화되는)에 있음을 드러내며 간과된 진실을 다시금 기억할 것을 촉구한다. 

 

 


모파상의 <비곗덩어리>는 세월이 흘러도 쉽게 변하지 않는 인간과 사회의 속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과 상대에 대한 연민이 어떻게 '추상적인' 정의와 평등을 '행동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며 깨어 있는 개인들의 공감과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모파상은 이 작품을 통해, 계층구조를 떠나 한 개인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상태가 결국 사회적 연대를 획득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건조하고 덤덤한 문체로 손상된 인간의 존엄에 대해 강렬하게 묘사해낸 <비곗덩어리>는 그 자체로 한 편의 교훈이며, 우리 모두가 공정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할 이유(마침 내일은 선거)를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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