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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 雜記

[미술치료]직접쾌락의 포기와 승화의 창조적 결과물/크레이머<치료로서의 미술>19장 커트 아이슬러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평론

by 돌냥 2024.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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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아이슬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해 쓴 책(<예술, 문학, 정신분석>1961)을 읽으면 매우 영감 있고 자극을 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슬러가 보기에 레오나르도의 유년기는 프로이트의 생각보다 더욱 침울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유년기는 쉽게 잠재적이거나 명백한 동성애를 초래했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미소를 짓는 여인, 모나리자가 생모 카테리나의 미소와 닮았다고 가정하였다. 그래서 모나리자를 가까이하게 되면 레오나르도는 깊게 눌려져 있는 초기 영아기의 기억-의식적 기억이 아닌, 승화가 가능한 무의식적 내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억눌려 있던 기억 일부를 끌어올리는 것을 통해 창조적 에너지가 레오나르도로 하여금 남성이 처음 가지는 여성과의 관계에서의 정서를 초상화에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아이슬러의 연구에 의하면, 레오나르도는 무의식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적인 결합은 서로를 파괴하는 것으로 여겼고 명백한 동성애의 유혹에서 싸웠다. 아이슬러는 레오나르도가 다른 사람과의 연합을 위험으로 느꼈다고 믿는다. 레오나르도는 "네가 홀로 있을 때 진정으로 네 자신이 되는 반면에, 만일 네가 한 사람의 동반자를 가지고 있다면 네 자신의 반이 될 뿐이다."라고 썼다. 


프로이트와 아이슬러 모두 레오나르도를 직접적인 본능의 만족을 심각하게 절제한 사람으로 본다. 그러한 방어기제는 억눌린 본능을 감독하기 위해서 레오나르도의 전 생애 동안 필요했다. 그러한 극단적이 조건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매우 파괴적인 것이 되었을 것이다. 비록 레오나르도의 일생 가운데에서도 파괴적인 힘의 정황이 드러나지만, 본능을 억제한 주요한 결과는 질병이 아니라 미술과 과학에서의 쌍벽을 이루는 업적으로 나타났다

 

프로이트와 아이슬러 둘 다 레오나르도의 창의적 성취는 그의 성적인 박탈과 관련되어 있으며, 창의적인 활동은 성적인 충동성에 대항하여 직접적인 만족과 방어를 제공하였다고 보았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레오나르도의 두 가지 특질을 제시했다. 첫째는 레오나르도가 가진 아주 예외적인 성본능의 억압이고, 두 번째로는 그가 가진 성 본능을 승화시키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다.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의 생애에서 미술과 과학을 통한 두 가지 능동적인 승화를 본다. 그는 젊은 레오나르도가 자신의 경력을 시작하는 시기에 예술적 창조를 통한 승화를 허락하게 해준 불완전한 성숙함에 도달했다는 가정을 한다. 그러나 완전한 금욕은 미술과 쉽게 양립하기 어려웠다. 레오나르도는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 더 나은 방편으로 과학으로 방향을 바꿔야 했다.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가 과학에 몰두하면서, 억압된 성본능으로 인해 현실에 적응하기 어렵고 경직되고 불완전했던 초기보다 높은 형태의 승화를 하였다고 보았다.   


레오나르도의 해부 작업은 경험에 의지하는 관찰자와 창조적인 예술가가 통합된 예이다. 아이슬러는 현재의 독자에게 레오나르도의 용기가 영웅적이라고 날카롭게 깨우쳐 주려한다. 왜냐하면 레오나르도 당시에는 해부학적 절개를 하는 데 있어 충분한 방법이 전무했고, 해부는 비밀리에 혼자 해야 했으며, 오늘날처럼 의학과 과학을 위한 해부의 필요성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아이슬러는 해부한 절개의 끔찍한 면을 견디는 레오나르도의 힘이 피투성이로 조각난 대상을 정교한 그림으로 바꾸는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레오나르도가 그린 그림은 관찰된 주제의 끔찍스러운 환경을 벗어나 해부학적 구조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아이슬러는 레오나르도를 창조적인 작업에 중독된 사람으로 보았다. 레오나르도는 쉴 새 없이 관찰해야만 하고, 그려야만 하고, 상상해야만 하고, 원인을 찾아야만 했다. 레오나르도가 화가들에게 한 충고를 보라. "네가 눈을 떴을 때나 잠들기 전 침대에 들었을 때, 어둠 속에서도 연구해라. 나는 그것이 매우 유용함을 발견했다. 어둠 속에서 침대에 누워 생각하면, 예전에 연구했던 형태들의 윤곽선이 떠오르거나, 사색에 의해서 다른 가치 있는 것들이 떠오르게 된다."


레오나르도의 가장 주요한 증상은 결론을 짓는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해부에 관한 책과 과학에 관련한 다른 학술 논문에서도 결론없이 편집하여 출간하였고, 회화에 있어서도 작품을 완성하지 않았다. 이러한 끝을 맺지 못하는 습관은, 그의 작업에 탁월함을 주기보다 손상을 주었다. 아이슬러는 레오나르도가 작품을 완성시키지 못하는 것을 특별히 죽음과 관련한 분리에 대한 공포와 연결 짓는다. 그는 레오나르도가 가진 아버지에 대한 살인적인 적개심을, 아들이 태어나서 기뻐하는 동생에게 끈 답장을 인용하여 보고한다. 그 편지에서 레오나르도는 동생에게 바보같이 좋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동생은 '동생의 죽음으로 자유를 얻는 감시해야 할 적'을 얻은 것이라고 썼다. 


미술적 창조성이 무의식적으로 그의 아동기를 표현한 이래로, 레오나르도의 아버지를 향한 살인적인 증오심은 그의 작업의 한 부분이 되어왔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가 자신의 작품은 무시한 것은, 과거 아버지로부터 고통을 받았던 부적절한 대우를 투사한 것으로 가정하였다. 이러한 가정에 따르면, 우리는 레오나르도가 그의 영적인 자녀들(작품들)로부터 앙갚음을 받을 것이라는 무의식적 공포를 지속적으로 품어왔을 것이라 추측하게 된다. 작품과 분리되는 순간 예술가의 창조물이 자율성을 얻게 되는 때,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만든 사람이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을 때, 특히 그런 공포가 자극되는 경향이 있다. 


아이슬러는 레오나르도가 소묘를 그릴 때는 침착했지만 물감을 이용해 그릴 때 갈등을 겪은 것이 그가 물감 그림에 기대수준이 더 높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이슬러는 색채 사용이 실제로 더 어렵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소묘와 채색화 사이의 분열은 드문 일이 아니다. 심리적으로 방어기제가 있거나 숨겨진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종종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이들은 선으로는 아름답게 표현하지만, 물감이 주는 정서적 자극을 위협으로 여겨서 피하려고 하거나 단조로운 선으로 된 그림만을 그리려고 한다. 만일 이런 유형의 아동들에게 물감으로 그리도록 설득한다면 그들은 빠르게 유아기로 퇴행하여 물감을 문지르곤 한다. 

 

레오나르도 억압된 성적 충동과 공격성의 솟구침을 통제하고 그것들을 그림에 변형시켜 넣는 것은 아마도 심신을 지치게 하고 고통스러운 작업이었기에, 그것을 그릴 때에는 짧은 시간 동안을 가까스로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천재들의 성생활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레오나르도의 금욕적인 성생활이 그의 인내력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하는 프로이트의 관점이 맞는 것으로 증명될 수 있으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임마누엘 해머의 창조성에 관한 심리적 연구를 언급하고자 한다. 해머는 참으로 창조적인 사람들과 보통 개인들을 구별하는 몇 가지 특징들을 나열한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더욱 가까이 가고, 내적 갈등을 더 잘 견디는 경향이 있다. 내부 삶을 파괴시키는 힘들을 부정하려 하지도 억누르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창조적인 사람들은 관찰자의 역할을 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를 지휘하고,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창조적인 사람의 성격이다. 


정신분석 이론에 따르면 승화는 갈등을 다루는 가장 유익한 방법이다. 그것이 성공적일 때 자아의 통제 아래 이드, 자아, 초자아 사이에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 결과 에너지가 증가되어 천재에게 속해있는 아주 놀라운 작업을 하는 능력 즉 자기 충족감, 용기,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는 능력이 설명된다. 위대한 성취는 위대한 포기를 요구한다. 예술가가 말하는 창조적인 작업의 고통은 거짓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운명을 평범한 사람의 인생과 바꾸려는 예술가는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창조의 결과는 내면동기, 자기 효능감, 회복 탄력성이다. 직접 쾌락을 '포기'하고, 생산적인 활동으로 '바꾸'는 그런 과정이 재밌게 느껴진다면 이미 승화가 시작된 것이다. 가치 있는 일 중에 쉬운 일은 없다. 낮은 데로 가라. 다치지 않고 계속 걸어갈 수 있다. 제3의 손과 실전 지식을 갖추면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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