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이 책은:
양희은의 에세이집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잘 알려진 53년차 방송인이자 가수다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받지만 그녀의 단호하고 솔직한 말투의 어떤 면(?)이 나로 하여금 살짝 부담스럽고 때로 무섭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여성시대>도 몇 번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INTP여서인지 INFP여서인지 아니면 태생부터 독고다이여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고 공감하고 눈물과 웃음을 나누고..하는 ‘복작복작하고 따듯하고도 열려있는 오지랖적 감성이 넘치는 자리’를 지레 기피하는 성향이 있다
어쨌건, 이 책을 훌쩍 다 읽었다
생각보다, 생각과는, 많이 달랐던 양희은 개인의 인생이 책 한 권으로 자연스럽게 스미듯, 통째로 다가왔다
52년생. 우리 아빠보다도 3살이 누나다. 그런데도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목소리 크고, 호탕하고, 노래 잘 하는, 방송 오래하는 아줌마. 당연한 말이지만 그녀는 그렇게 단순한 캐릭터도, 전형적인 삶도 아니었다
그녀 인생의 프리즘은 단순히 그녀가 살아온 나이 연수로는 환산할 수 없는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열세 살 때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가세가 기울어 있는 고생을 다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그녀보다 동생인 아빠도 엄마도 먹고만 사느라 당시 큰 관심이 없었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격동의 70년대 80년대를 통기타를 벗삼아 불사르듯 보내고,
<아침이슬>이라는 그 시대 학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시대의 등불이 되었던 노래의 주인공으로 살고,
미국에서 전업주부로의 삶을 살다가 다시 노래를 찾고,
한국에 온 뒤로 라디오 디제이로서 25년째 같은 자리를 사수하고 있다
본인 인생에 많은 굴곡이 있었던 사람의 유연함과 개방성에서는 '위화감'이 없다
나와 본질적으로 다른, 또는 어릴 적 부터 우상향의 환경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그럴 만한' 이유를 가진 따듯함과 여유에는 본능적으로 공감을 느끼기가 힘들다
그러나 자신과 비슷한 또는 훨씬 더 고난과 장애물이 많은 여정을 통과한 이의 자유로움은 성격이나 경험 차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해방감 비슷한 것을 느끼게 한다. 양희은의 에세이가, 그 속에 배어난 그녀의 삶이 그랬다.
그래서 정말 부러웠다.
그녀가 지나온 과거의 힘듦과 가난과 시대적 어려움과 병과 주변인들의 아픔들이 결과적으로는 정말 부러워질 정도로 그녀는 풍요한 인생을 보내왔다
그녀의 마음과 말 때문에 그녀 주위에는 사람이 모였다. 나이가 들어서 여기저기 불편한 곳이 생기고 주변에도 하나 둘 쇠약해지거나 떠나가는 사람들 소식이 마음을 뒤척이게 하지만 그녀의 일상과 루틴은 소소하고 단단하다
약 서른살 어린 내가 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고 그러고 싶은, 불필요한 변곡없이 군더더기없고 내실있게 삶을 보듬는 것들이다
특히 오랜 시간 라디오 진행자로서 한결 같은 자리를 지키며 많은 사람들의 수만가지 각기 다양한 사연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특별한 능력이자 그 대가로 그녀 삶에 주어진 특별한 호혜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다양한 삶이 그녀 안에 이미 용납되어 있어선지 그녀는 목소리에서 연상되는 무언가 과거에 해온 방식으로 강경하게 고수할 것 같은 이미지와는 별개로, 지난 세월 쌓아온 수많은 커리어 간판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 젊은 세대와의 교합하며 배우고자 하며 오히려 사지 육신 건강한 젊은 사람들보다도 ‘자기 주도성’의 혈관만큼은 훨씬 더 생생하게 박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뻔한 말이지만 노화란 육체보다 정신이 늙는 것이라는 말이 맞다는 걸 우리 부모님보다 열댓 살에서 이십 년은 더 젊게 느껴지는 양희은을 보면서 실감하게 된다
매사 사람들과 주파수를 맞추는 것을 무척 번거로워 하는 나 같은 입장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가장 사랑하고 에너지를 얻으면서도, 그래서 혼자만의 여행을 꾸준히 지키려하면서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의 인생살이를 들어주고 도닥거려주고 청취자뿐 아니라 가까운 지인들을 북돋아 주고 격려하는 ‘연결 에너지’에 늘 가득 차 있는 그녀의 삶이 부럽고 참 부럽다
양희은의 팬이 되었다는 것에는 다소 지나침이 있지만 어쨌든 ‘계속 수저를 들게 되는’ 중독성있게 담백한 된장국 맛(?)이 나는 그녀의 진정성 있는 글에 반한 것이 사실이다
그녀의 글은 제주도의 낮은 담벼락 같다 다 퍼마시는 줄도 모르고 들이키게 되는 맑은 감칠맛의 홍합탕같다
보다가 이 책은 나도 나지만 엄마가 같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양희은의 아흔넷 노모가 딸에게 편지글은 소설에나 나올 것처럼 온기 넘치는 단어로 쓰여있었다
나와 엄마 사이에는 오간 적이 없는 말투와 내용들. 그리고 그녀는 일흔이 되어 예전의 그녀 어머니가 그녀에게 그랬듯 어머니 곁을 지킨다
나와는 크게 관련이 없어보이던 그녀의 인생이 내 인생의 예기치 않은 때와 만나 나 역시 그녀와 비슷한 색채의 노년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바람을 심어줄 줄은 몰랐다
공적인 그녀의 삶이 개인적으로 내 안에 침투해서 잔잔하지만 확실한 파장을 일으켰다
아마 수영장에서, 목욕탕에서 그녀를 마주치면 말을 건네는(건네고 싶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심리 또한 그럴 것이다
나에게 영향력을 준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게 사람의 본능적인 마음이니까.
예전에는 누군가에게 나도 좋은 힘을 미치는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착각을 했던 시기도 있었다
이제는 나 외에도 의미있는 목소리와 의미있는 족적을 남기는 사람들이 이미 세상에 많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그래서 나는 잘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양희은 같은 사람의 인생은 말이다
그녀의 나이까지 삼십 년, 내 숨이 붙어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천천히 따라가고 싶다
그녀의 자기분야에서의 끊임없는 개척심 진취성 그리고 주변까지 살뜰히 챙기는 큰 그릇까지야 닮기는 버거워 보이지만, 그녀의 눈 그녀의 글 그녀의 하루의 주요 루틴들 그런 결 정도는 나도 따라갈 수 있다는 용기를 웬일로, 내 스스로에게 주고 싶어진 그런 책이었다
혼자 늙어가는 삶이 두려워질 때마다 읽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그녀의 이야기에 모든 답이 있다
인생의 모든 시절을 대부분 이미 모두 겪어낸 그녀도 나이로 변한 몸과 심리에 밤새 뒤척이며 수 번을 깨고,
방송을 통해 늘 사람들에게 환영받아도 아무런 매임없이 온전히 혼자 있을 있는 시간에 대해 갈증을 느끼고,
뒤숭숭 우울해질 때는 우적우적 볼이 터지도록 쌈을 싸먹고 된장에 밥을 비벼 먹으며 뱃심부터 챙기는,
그렇게 비슷엇비슷한 삶을 현재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만으로 충분하다
나 자신에 대한 용납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서툰 연습인 지금, 먼저 서툴러본 사람들의 이야기만큼 당장 나를 일으키고 기운 차리게 하는 것은 없으니까.
추천대상:
가슴 아픈 이별, 경제적 고통, 죽음을 앞둔 질병, 누군가를 향한 미움..깜깜한 터널을 지나는 이들에게 '조언'이 아닌 ' 그 시기를 직접 지나온' 이야기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똥바가지를 맞고 내 잘못이 아닌 일로 고개 숙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도록 기운 차리게 하는 책
나이들어감과 이별에 대한 깊은 슬픔이 있는 사람들의 묵직한 둔통을 본인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어르고 공감해주는 책
나 대단한 만큼 누구나 대단하다. 짊어진 삶의 무게도 죽고플 만큼 무겁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저렇게 어슷비슷하기에 당신 옆에 하냥마냥 앉아 있겠다.
공감 능력이 빵점인 여자 때문에 남들 눈에는 내가 베짱이같이 놀고 노래하며 힘 안들이고 사는 것처럼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황에서 아니라고,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아느냐고 화내봐야 무엇하리.
‘다 자기 생긴 대로지, 뭐. 더도 덜도 아니지. 그러라 그래’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이라 긴 시간 끊임없이 평가를 받으며 살다 보니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사려고 애쓰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타인의 평가게 숱하게 넘어지고, 흔들리고, 엉망이 되고, 또다시 일어나서 자기를 돌아보고, 남도 돌아보고, 어떤 사람이 흔들리는 것도 보고, 누군가 바로 서는 것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거리 두기가 가능해졌다.
세월이 가르쳐준 거다. 내가 잡았던 손을 놓은 게 아니라 스르르 놓아졌다.
새파란 젊은이가 꽃, 꽃, 꽃 하는 건 들어본 바 없어도 나이 든 사람들의 꽃 이야기는 흔하다. 인생의 꽃이 다 피고 진 뒤에 비로소 마음속에 꽃이 들어와 피어 있다는 거니까.
노래도 마찬가지다. 노래가 무언지 알 때쯤 노래는 나를 떠난다. 일할 기회도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씁쓸하게 웃는다. 노래할 기회가 점점 사라진다. 어쩌다 노래할 일이 생기면 마냥 고맙다가도 두렵다. 날이면 날마다 무대에 서서 노래할 때는 어디서나 쉽게 노래가 나왔다.
며칠을 중얼거리다 꿈에서도 그 곡을 익히고 있는 나를 본다. 한밤중에 깨어 노랫말을 읊조리는 나!
“식물이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일은 꽃을 피워 씨앗을 맺는 일이에요. 피었다 진 꽃을 따주면 그 에너지가 새로운 꽃대 쪽으로 가서 더 힘껏 꽃을 피워 씨앗을 맺을 수 있어요.”
속으로 ‘아하! 진리가 따로 없군!’했다. 털고 솎아내야 더 찬란하게 꽃피울 수 있구나.
과거의 영광은 선선히 내어버려야 건강한 씨앗을 맺을 수 있구나.
예전에 퍼그 두 마리와 살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세상엔 퍼그가 귀엽다, 예쁘다는 사람과 못생겼다고 피해 가는 사람,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고.
아무리 편곡으로 덧칠하고, 현란한 안무팀이 동작을 짜고, 가수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의 패션이 귀보다 눈을 자극시켜도 그 노래를 무반주로 불러보면 노래의 골격이 드러난다.
단단하게 잘 만든 곡은 무반주로 불러도 가슴으로 온다. 그러나 히트시키려는 욕심으로 만들어진 노래는 반주나 안무가 없을 때는 이상하게 삐걱대며, 부르기 민망하다. 노래에 사심이 있으면 누구를 매료시킬 수 없다.
노래도, 사람도, 나무도, 세월을 이겨낼 든든한 골격이 없으면 금세 시선을 돌리게 된다.
인터뷰 마지막 질문은 대부분 앞으로의 계획, 올해 하반기 계획을 묻는 것이다. 그럴 때면 “저는 계획 없이 살아요. 그저 코앞에 떨어지는 일 하나씩 하나씩 해내는 맛으로 살지요, 뭐~”라고 답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무슨 대단한 계획보다 그냥 하루하루를 잘 넘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별일 없이 무탈해서 지루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심심해 죽겠다고 하니, 친구 어머님이 따끔하게 야단을 치셨다.
“그날이 그날인 게 더없이 좋은 거야. 별일 있는 게 무에 좋겠냐?” 세월 지나 곱씹어 보니 옳은 말씀이다.
어떤 이는 음식을 만들면서 간을 보다 보면 입맛이 떨어진다는데, 이상하게도 난 그런 적이 없다.
내가 만든 밥과 반찬이 항상 맛있다. 미련 곰탱이 같은 얘기라고 할지 몰라도 사실이 그렇다.
이성미가 내 묘비명으로 “지가 한 밥이 그렇게 맛있다더니…”라고 지어줬는데, 여기에 “지 혼자 하는 여행이 그렇게 좋다더니…”라고 내가 보탤 테다.
마음에서 이미 버렸고, 돌봐주지 않아 아예 죽은 줄 알았던 화분의 사력을 다함!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그 결핍이 이렇게 놀라운 꽃을 피워냈다는 글을 읽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떻게 버려진 극한 상황에서 다시 피어났을까.
그것을 보며 결핍이야말로 가장 큰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식물은 물을 너무 줘서 뿌리가 썩어 죽는 게 다반사란다.)
고요하다가도 비가 오면 다시금 이는 흙탕물 같은 상처 입은 (내 안의)어린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순간을 늘리는 게 속힘이 되었다. 누가 알아줄 필요 없는 자족의 순간 말이다.
음원이 세상에 발표되기 전, 몇 달에 걸친 작업이 마침표를 찍었을 때 그 성취감은 썩 괜찮다.
누구에게나 넘을 수 없는 장벽이 하나쯤 있다. 자전거타기, 수영, 서핑, 영어, 취업, 좁혀지지 않는 사람과 사람 사이, 용서…등등. 그것만 할 줄 알면 세상 무서울 게 없을 것 같은데, 참 뛰어넘기가 어렵다.
나는 여전히 자전거를 못 타지만 인생철학은 한 수 배웠다.
자전거 수업 첫날에 들었던 얘기다.
1.쓸데없이 목과 어깨에 힘주지 말 것.
2.자기 발아래를 내려다보지 말고 시선을 저 멀리 앞에 둘 것.
그리고 또 발견한 규칙도 있다
3.늘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
내 자전거는 항상 내 인생처럼 엉뚱한 데로 간다.
미국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기 전에 판단하지 마라.”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쪽이 닳고 뒤축이 구겨진 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면 그도 삶의 무게를 이렇게 버티며 걷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뭉클해진다.
‘그러면 안 되지!’ 를 ‘그럴 수 있어!’ 로 바꾸면 상황은 미워해도 그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지는 않게 되더라.
‘걔도 오죽 여북했으면 그랬을까?’ 하며 끌어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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