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재밌다고들하지만 나는 두번 다시 하지않을 일>매력적인 냉소와 재치의 혼합/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에세이

by 돌냥 2024. 5. 23.
반응형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덕분에 에세이라는 형식은 과거와는 다른 것이 되었다. - 마이클 로빈스 / 시카고 트리뷴

 

대수롭지 않은 손짓 한두 번만으로 사물의 물리적 진실이나 감정적 진실을 전달할 줄 아는 능력, 엄청난 속도와 열의로 평범한 것에서 단숨에 철학적인 것으로 도약하는 재주. - 미치코 가쿠타니 /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원제: Consider the Lobster and Other Essays )』를 읽는 것은 매우 빈번하고도 방대한 양의 각주 (느낌상으로는 살짝 과장해서 책 전체의 1/3쯤 되는 듯한)  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인내와 노력을 요하는 책이다.

생각지 못한 여러 불편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월리스의 세계관과 특유의 예리하고도 비판적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창이 되어준다. 냉소주의와 재치가 혼합된 독특한 스타일은 월리스의 글을 훨씬 매력적이고 의미있게 체험할 수 있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에세이는 무거운 내용과 비개성적인 비평 수필, 과학 수필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저자의 일상 경험이나 느낌을 자유자재로 담고 있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면에서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그렇지만 월리스의 에세이 경우는 형식이 자유로운 것은 맞지만 일부를 제외하고는 결코 쉽게 읽어내려갈 수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월리스는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간과할 수 있는 부분들에 있어 잠시 멈추고(일단 각주를 읽으려면 본문 읽기를 멈춰야 함. 그것도 여러번)재고하도록 강요(?)한다. 

 

 

 


이 컬렉션에 포함된 9개의 에세이는 겉으로는 단순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직접적이거나 주관적인 메시지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대신 월리스는 자신이 탐구하는 대상들의 복잡하고 때로는 모순적인 성격을 독자들 또한 같이 골몰해보도록 인식과 이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져온다.


솔직히 말해 월리스의 정교하지만 동시에 강박적인 문체는 나를 조금 지치게 만들었다. 어릴 적부터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내면의 세력과의 투쟁으로 가득했던 그의 삶은 결국 자살로 끝이 났다. 월리스는 죽음에 대한 욕망을 떨쳐버리기 위해 글쓰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고, 그 과정에서 눈부신 문학적 성공을 이룬 한 사람의 역설이 탄생하게 된다. 책을 읽는 도중에 그의 생애기를 보게 되서인지, 글쓰기에 대한 월리스의 강렬한 열정과 헌신이  비극적 결말에 대한 그의 치명적인 욕망을 일시적이나마 지연시켜주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에세이 전반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1995)
호화 크루즈에서의 여행 경험을 기록한 여행기로서 그의 에세이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도 월리스 자신도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작품이다. 상세하고 재치 있는 관찰자 시점으로 그려진 에세이는 수록글 중 가장 매끄럽게 읽히면서(지독한 자의식 과잉적 분석이 없다는 면에서) 동시에 웃음이 절로 터지는 유머들로 가득하다(특히 최첨단(?) 진공 변기 이야기, 스콧 피터슨 부인에 대한 생생한 일화가 압권이다).

월리스스러운 현기증이 나는 글쓰기 특징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주는 재미만으로도 이 에세이를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반면 이 작품과 가장 대조적으로, 책의 중간쯤에 있는 " 권위와 미국 영어 어법 "은 압도적으로 광범위한 각주를 통해 월리스의 강박 수치 최고 지점을 보여준다. 

재미의 본질 (1998)
이 에세이에서 월리스는 "기형적인 아기"라는 비유를 사용하여 소설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경험하는 사랑과 혐오의 혼합된 감정을 탐구한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글쓰기의 '재미'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이 짧은 에세이는 (무엇보다도..!)각주가 없다는 점이 눈에 띄고, 수록글 중 가장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작품 중 하나이다. 글쓰기에 대한 팁이라는 면에서도 나 개인적으로는 가장 호감이 높았던 에세이였다.

 

 

 

 

조지프 프랭크의 도스토옙스키 (1996)
월리스는 1976년부터 2002년 사이에 작성된 Joseph Frank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전기 5권을 감상, 비평한다. 월리스는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동시에 그의 도덕적, 열정적, 창의적, 깊은 인간적 자질을 섬세하게 강조한다. 그는 진지한 이념적 참여가 결여된 현대 문학의 흐름 속에서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가치와 중요성을 생생하게 입증해낸 프랭크의 전기글을 진심으로 칭찬한다. 

랍스터를 생각해봐 (2004)
몇 년 전, 랍스터, 문어, 생선과 같은 해산물이 요리하는 동안 겪는 고통을 논의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미 월리스는 그보다 20여 년 전에 해산물 섭취의 윤리적 영향에 대해 언론 매체를 통해 다루었다. 한때 소수자들의 (유난스럽다고 폄훼되는) 견해였던 월리스적 관점은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더 폭넓고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그럼에도 이 주제는 여전히 논쟁을 지속하고 있고(지구에는 도저히 식성을 바꿀 수 없는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 특히 반론을 가하는 측의 사람들은 그런식이라면 먹을 만한 것들이 하나도 없게 될 거라 주장한다. 월리스 역시 이를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는 진정으로 이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이 글을 통해 어떤 생명에 끔찍한 고통을 가할 수밖에 없는 찜찜하고 불쾌한 아주 오랜 관행에 깃든 도덕적 의미를 정면으로 폭로하기로 결정했다.


 


책 속의 에세이들을 하나같이 월리스의 예리한 지성과 독특한 목소리를 드러낸다. 그의 에세이는 독자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각자가 기존에 고수하고 있던 관점을 재고하도록 유도한다. 비록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보이는 일부 문체는 끝내 적응되기 힘들긴 하지만 일상적이면서도 다양하고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월리스 특유의 성찰은 유머, 비판적 분석, 심오한 윤리적 탐구를 혼합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좀처럼, 다시 없을 '글쓰기 자체에 대한 집요한 탐구'의 본색을 알려준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다른 대표작들은 조금더 쉼을 고른 후 도전, 해봐야 할 것 같다.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레시피가 구태여 언급조차 하지 않는 사항은, 당신이 솥에 집어넣을 때 랍스터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랍스터를 김이 오르는 솥에 넣으면 랍스터가 꼭 지붕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처럼 솥 입구에 집게발을 걸치고 매달린다. 더 끔찍한 것은 랍스터가 물에 완전히 잠겼을 때다. 당신이 뚜껑을 덮고 돌아섰더라도, 랍스터가 뚜껑을 밀어내려고 하는 바람에 뚜껑이 달그락달그락거린다. 혹은 랍스터가 몸부림치면서 집게로 솥 옆면을 긁는 소리가 들린다. 한마디로 랍스터는 여러분이나 내가 끓는 물에 던져졌을 때 취할 법한 행동을 거의 똑같이 취한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랍스터는 꼭 끔찍한 고통을 겪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어떤 요리사들은 작고 가벼운 오븐용 타이머를 챙겨서 아예 부엌을 떠나 딴 방에 가 있다가 이 과정이 다 끝난 뒤에야 돌아온다.

동물이 통증을 느낄 줄 아는가, 느낄 줄 안다면 어떤 방식으로 느끼는가, 우리가 그들을 먹기 위해서 그들에게 통증을 가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정당화된다면 어떤 이유로 되는가 하는 질문은 극도로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들이다.
더 중요한 논점은, 이 ‘동물 학대와 음식 문제’가 비단 복잡할뿐더러 우리에게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다양한 음식을 즐기지만 스스로를 잔인하고 냉담한 사람으로 여기고 싶지는 않아 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내 생각에는 <고메>독자들도 이 문제를 생각하기를 바라지 않을 것 같다. 혹은 미식 월간지 지면에서까지 자기 식습관의 도덕성을 추궁당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 같다.

 

 

 

 

본 리뷰는 개인의 노동 에너지가 들어간
창작물(2차창작물)로 지적재산권에 의해
보호됩니다
인용문 외의 모든 내용의 권리는 작성자에게
있으며 작성자의 동의 없이 상업적 용도로
무단 배포, 수정, 복제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원제 : Consider the Lobster and Other Essays (2012년)

 

지은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옮긴이 김명남

펴낸곳 바다출판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