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자살률일등 출산율꼴등의 '불행한 한국인 보고서'/좁은 시각을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시간/한국에서 수십년 산 독일인의 진정성 넘치는 애정어린 쓴소리

by 돌냥 2024. 5. 29.
반응형


한국인들은 외부에서 보기에는 활기차고 포용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뿌리 깊은 자기혐오가 감춰져 있다. 이러한 내면 속 자기 의심과 불확신은 겉모습, 즉 외모와 허영심에 대한 강박적인 추구로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일본인에 비해 한국인의 자기비판 경향이 더 크다고 보는 편이다. 저출산, 부동산 위기, 교육, 차별, 불공평과 같은 만연한 문제가 지배하는 온라인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동료 간의 일상적인 오프라인 대화 속에서도 얕고 넓게 퍼져있는 자기 비하적인 면모를 관찰할 수 있다. 거리에 나가 한국 사회의 현재와 앞으로 전망에 묻는 인터뷰를 한다면 '매우 좋다'라고 긍정적으로 답변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예상보다 어려운 일이 될지 모른다.

 

독일에서 온 안톤 숄츠(Anton Scholz) 는 수십 년 간 한국에 살면서 스스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한국인의 이상한 행복 - 기쁨과 즐거움을 잃은 사람들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책을 썼다. 처음 듣는 이름의 작가였지만, 제목에 흥미를 느껴 책을 펼치게 됐다. 읽자마자 끊김 없이 쭉 끝까지 읽게 될 정도로 각 장마다 저자의 깊은 통찰력이 담긴 글들이 가득 차 있었다.

 

 

 

 

케이문화, 즉 K-Pop이나 드라마, 영화 등의 영향으로 최근 몇 년간 한국은 세계적으로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인적 자원 외에는 거의 모든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경제적 성장을 이뤄낸 후 받은 뜻밖의 선물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글로벌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인간 개개인의 가치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책에서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진 않지만 '개인의 존엄성과 능력이 일상적으로 무시되는' 삶의 현장들은 한국 사회의 인적 가치에 대한 여전한 경시를 반증하고 있다. 

 

뉴스나 예능 등 방송들만 보면 한국은 이미 글로벌화된 것처럼 득의양양하지만 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글로벌하게 살아본 적이 없'다. 의욕적으로 영어를 배우고 관련 자격증을 쌓는다고 해서 그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니다.

리(대부분의 한국인)는 어려서부터 '다름'이나 '다양성'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교육받거나 받아들여 본 적이 없다. 이것 아니면 저것,의 양분만이 있고 다양성에 대해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문화적, 소통적 경직성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 중 하나이다. 학교, 직장, 가정 등 일상의 곳곳에서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압력과 공동체적 강요로 개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이 빈번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사람들은 어딜 가든 자신이 전체 기준에 비추어서 뒤떨어지거나 이상해 보이지 않도록, 쉬지 않고 '눈치'를 보며 살아간다. 공동체 안에서 튀어 보이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기방어를 하며, 무의식적인 경계 태세 속에 사소한 일상도 마치 전쟁을 치르듯 살아간다.

 

 

 

 

이러한 우리사회의 쓸모없는 부작용과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내부'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외부로부터의 시각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 안에서 우리끼리 아무리 파고들어 봤자 시각 자체가 동일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정확한 관찰이 힘들다. 운동선수가 코치를 필요로 하듯이, 기업이 컨설턴트를 고용하는 것처럼, 한국 사회를 관찰하고 안내하는 우리 밖의 새로운 시야가 필요한 것이다. 넓어졌다한들 여전히 우물 안에 있는 우리에게 우리 사회 속의 '이방인'들의 목소리는 전과 다른 관점에서 새롭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게 하는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저자인 숄츠는 한국에서 수 십년을 살면서 언론인이자 교수, 사업가, 학부모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아 왔다. 다양한 장소에서 우리 사회의 여러 면들을 직접 경험해 왔기에 어쩌면 보통 한국사람들보다도 다채롭고 깊은 시야를 갖고 있는지 모른다.

숄츠는 자신이 이 곳에 처음 발을 들인 1994년 당시보다 한국이란 나라가 훨씬 부유하고 강해졌지만 그에 반대로 한국 사람들은 훨씬 큰 고통을 느끼며 불행한 날들을 보내고 있음을 목격했다. 부유한 나라의 불행한 국민들(책에 나온 표현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를 소개하기에 이만큼 간명한 표현이 없다)을 보며 그는 한국이 여기는 행복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본능을 느꼈다. 한국에 오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을 찾는 여정에 투자하고 도전하고 여러가지 문화적 경험을 쌓은 숄츠는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자신만의 관찰과 사유를 질서있게 정리했다. 

 

 

 

책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숄츠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를 인정받고 존중받으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사회에 대한 애정과 응원으로 가득 차 있는 그의 메시지는 내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방송에서 서슴없이 자신의 견해를 '눈치보지 않고' 그대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종종 악플과 공격을 종종 받았다는 숄츠는 책의 내용을 보면 반박보다는 공감과 동의의 여지가 훨씬 많이 보인다. 

 

케이문화와는 반대적 입장에서 위상을 높이고 있는 분야가 또 있다. 이미 악명 높은 한국의 높은 자살률(OECD 전체 압도적 1위이자 평균 수치 2.3배)과 최저치 출산율(OECD 최하위)이다. 서열러버이자 랭킹러버인 우리나라가 드디어(?)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순위에 고정 자리매김하고 있다. 통계결과는 그 자체로 우리사회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자살률의 경우 지나치게 오랜 기간 지속되온 탓에 이제는 무덤덤해져버린 '체감의 둔화'가 더 충격적이고 심각히 여겨야 할 문제다. 경제적, 사회적 문제는 심리적, 정신적 건강 문제와 깊이 얽혀 있다. 부동산, 학교, 직장 등 모든 면면에서 불필요한 비교를 지속하며 불필요한 고통을 자초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 한국인들의 정신적 건강이 지금 같은 상태에 이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와 반대로, 비교나 껴맞춤없이 자신의 인생의 하나의 독자적이고 종합적인 예술로 가꾸듯 살아가는 숄츠의 삶의 방식은 매우 대조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국인이 왜 불행한지에 대해 쓴 독일인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뜻밖에도 새로운 목적의식을 갖게 됐다. 숄츠의 삶을 향한 복합적이고 포괄적인 철학적 자세는 단순히 외국인의 시각이란 제한범위를 뛰어넘는다. 이곳이 한국사회라서가 아니라 내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내 인생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습득해가야 할 부분들을 책을 보며 많이 참고하게 되었다. 사회의 부정적인 면에 덩달아 흡수되지 않고 각자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고 도전하며 살아나갈 때 느끼는 '삶의 자발적 기쁨'은 시대와 국적을 초월하여 적용되는 것이다. 특정 사회의 대세(大勢)가 어떠하든 특정 개인의 태도와 의지는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숄츠의 책 이후로도 앞으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외부인'들의 의견에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드디어, 늘 말 안듣던 청개구리가 좁은 우물 안을 떠날 때가 된 모양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