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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소설<아우라>마술에 걸린 듯 빨려드는 환상소설/카를로스 푸엔테스 중남미소설 고딕소설 서스펜스소설 추천

by 돌냥 2024.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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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학자 펠리페 몬테로는 마치 자신을 특정하는 듯한 기묘한 구인 광고를 보게 된다. 이틀을 망설인 끝에 몬테로는 전화를 걸어 광고에 적힌 돈셀레스 거리 815번지를 찾아간다. 그는 인적 없는 구시가지의 돈셀레스 거리에서 누군가 살고 있고 일을 구한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낀다. 을씨년스러운 대저택에 도착한 몬테로는 침상에 누워 있는 백발의 노파로부터 일을 받는다. 그것은 60년 전 사망한 노파의 남편 요렌테 장군의 회고록을 정리하고 출판하는 것이었다. 노파는 몬테로에게 저택에 머물며 일을 완성하길 요청한다. 몬테로는 노파의 집에서 일하는 것이 거북했지만 그 순간 노파의 옆에서 나타난 초록빛 눈을 가진 여인 '아우라'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결국 그는 매혹적인 젊은 여자에 이끌려 이 저택에서 지내기로 결정한다(금사빠).

 

저택에서의 첫날, 몬테로는 난데없이 고양이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를 듣게 된다. 그 후 아우라와 단 둘이 식사하며 플러팅을 주고받은 몬테로는 노파로부터 두루마리 서류를 받고 일에 착수한다. 글솜씨가 썩 훌륭하진 않은 요렌테 장군 비망록을 읽다 잠든 몬테로는 새벽녘에 또 한 번 들려오는 고양이들의 신음소리에 잠이 깬다. 소리의 근원을 따라간 몬테로는 정원에서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이 줄줄이 엮여 화염 속에 불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몬테로는 그 순간 아우라가 지나가는 것을 발견한다. 식사 중 몬테로는 노파에게 (좀 전에 고양이들을 본)정원 구경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 노파는 지난 대화에서 이 집엔 '고양이가 없다'고 말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이 집엔 '정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식사 중 몬테로는 섬뜩한 광경을 발견한다. 아우라가 마치 누군가의 힘에 의해 포크와 나이프를 쥐고 있는 듯하고 기계적인 느낌으로 입을 벌리는 것이다. 게다가 콘수엘로 부인이 동작을 멈추면 아우라도 포크를 놓고 똑같이 동작을 멈춘다. 몬테로는 노파가 아우라에게 마술같은 힘을 쓰고 있다고 믿게 되고, 아우라가 원치 않음에도 노파의 저택에 감금되어 포로의 삶을 살고 있다고 의심한다. 아우라에 대한 자신의 성적 욕망을 합리화시킬 명분을 찾은 몬테로는 아우라를 구출하려는 결심을 한다. 피곤해 잠이 둘어버린 몬테로는 악몽을 꾸고 순간 어둠 속의 아우라를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향해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아우라와 동침한다.

 

장군의 회고록 작업을 하는 동안 몬테로는 이상한 일들을 계속해서 목격한다. 부엌에서 아우라는 새끼 양의 목을 자르고 있고, 방 안의 노파 콘수엘로는 허공에 대고 무언가를 자르고 벗겨내는 동작을 한다. 그런데 둘의 행동은 완벽하고 기이하게 동시적이다. 아우라의 방으로 이끌려 들어간 몬테로는 두 번째 동침을 하고, 충격적이게도 줄곧 그 자리에 있었던 콘수엘로 부인을 보게 된다. 콘수엘로는 의자에서, 아우라는 바닥에서, 함께 일어난다. 콘수엘로와 아우라의 똑같은 행동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 몬테로는 아우라에게 자신과 이곳을 떠나 새 삶을 살자고 말한다. 아우라는 새 삶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한다는 말을 남긴다. 그러던 중 몬테로는 요렌테 장군의 일기를 계속 읽어나가면서 노파 콘수엘로가 결혼 생활 중 불임으로 인해 절망하고, 젊음에 대한 집착과 마약 중독(임신 시도로서 약초를 복용하다가)으로 인해 병적인 상태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이어서 몬테로는 서류에 섞여있는 은판 사진들에서 아우라와 함께 있는 늙은 요렌테 장군의 모습, 아니, '자신'의 얼굴을 발견한다. 밤이 되고 몬테로는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아우라를 찾는다. 그는 평소처럼 아우라를 안고 키스한다. 순간 한 줄기 달빛에 비친 아우라의 얼굴을 보게 된 몬테로는 깜짝 놀라 떨어져나간다. 새하얀 백발, 주름진 얼굴은 자신이 알던 아우라의 모습이 아니었다. 몬테로, 아니 요렌테는 콘수엘로의 은빛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포옹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처음 출간된 연도가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된 감각이 돋보이는 이 소설은 마치 최근 개봉한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 숨 돌릴 틈 없는 긴장감 속에 전개된다. 사실 이렇게 (흑)마술적이고 환상적인 내용인지 모르고 나처럼 무심코 소설을 보게 된 독자들이라면 소설이 유도하는 불안감과 긴박감에 다소 당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뭔가 너무 현대적이라 더 신기).

 

1장까지 평범했던 전개는 2장으로 넘어가며 '본색'을 드러낸다. 곰팡내가 날 듯 빛 한 점 없이 캄캄한 복도와 축축한 공기로 둘러싸인 으스스한 저택은 마치 '마녀의 공간'으로 사용되기 적합한 공간으로 느껴진다. 소설은 자세한 설명을 마치 군더더기처럼 생략한 채(이런 점이 참 요즘 영화들의 연출, 편집처럼 느껴진다)상상력을 자극하는 묘사들만으로 미스터리한 서사를 집중력 있게 이끌어 나간다. 처음 만난 아우라의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몬테로의 육체적 이끌림과 잦은 (그리고 불순한) 상상은 이후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분간하기 힘든 순간마다 몬테로가 느끼는 현기증과 혼란을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아우라>는 복선과 상징이 '이미지'들로 함축되어 있어 읽을 때마다 새로운 상상의 장면이 더해지는 작품이다. 초반에 읽을 때는 의미심장한 장치들이 노파와 아우라 사의의 께름직한 관계에 집중하게 만들지만, 거듭 읽을수록 노파의 몬테로에 대한 '통제 욕구'와 몬테로의 아우라에 대한 '갈망'에 몰입되도록 만든다. 이미 각오하고 있었음에도 결말은 다소 충격적이다.

 

 

 

 

 

 

<아우라>는 짧은 길이 속에 99% '분위기'로 압도하는 소설이다. 내용 자체가 마술스럽기 때문에 신비롭고 두려움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배경은 필수적이다. 공간이 주는 이상야릇하고 불안한 느낌은 주인공 몬테로가 미로처럼 갇혀버린 저택 안에서 경험하는 모든 ‘모호함’과 어우러져 더욱 수수께끼 같은 궁금증을 자극한다. 욕망, 집착, 그리고 심리와 실존에 대해 드러내는 작가 푸엔테스의 묘사는 각 캐릭터를 마치 열연하고 있는 배우들의 표정과 동작을 보듯 생동감 있게 구현해낸다. 인물의 입체성을 살리면서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복선의 소재들을 찾는 것 또한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아우라의 녹색 눈빛, 창문을 가린 녹색 벨벳 커튼, 아우라의 녹색 모직 치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녹색이라는 컬러, 촛불, 램프, 성냥 등 어둠 속의 불빛들이 조성하는 영적인 분위기, 과거와 현재의 미스터리를 풀어주는 사진, 두 여자와 얽힌 몬테로의 운명을 예고하는 요렌테 장군의 일기장, 중세시대의 악마적 마술을 연상시키는 희생당하는 고양이들 등 초현실적 색채가 느껴지는 소품들은 이 소설의 농도 짙은 흡입력을 더욱 고조시켜준다.

 

 

 

 

 

아우라가 다른 문학 작품과 가장 차별화되는 것은 ‘2인칭 시점’이라는 혁신적인 서사 기법 때문이다. 이 설정 때문에 (이해력이 느린 관계로) 나는 소설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나도록 자꾸만 나오는 ‘네’가 누구인지, 혹시 이 글이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글인 건지 이해가 안 가서 헷갈려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아마도 처음 읽는 것 같은 생소함을 주는) 2인칭 시점은 아무래도 1인칭보다 간접적이기 때문에 환상과 혼수 상태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몬테로의 현실 감각의 상실을 더 극적으로 표현해 주는 기능을 한다.

 

지루할 틈 없이 간결하게 이어지는 문장들은 강렬한 상상을 일으키는 소설 속 장면들을 더욱 밀도 높은 내러티브로 만들어낸다. 마치 주술에 걸린 듯 시선을 홀리는 몰입감, 심리적 깊이, 모호한 상징성, 혁신적인 2인칭 기법,  명료하고 스피디한 문체 등 <아우라>는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독자들을 매료시킬만한 요소들로 가득하다. 

 

이 작품은 2001년 멕시코 노동부 장관의 발언으로 인해 판매가 급증했으며, 2009년에는 푸에르토리코 교육부 커리큘럼에서 ‘음란한 언어 사용’ 혐의로 교육이 금지된 바 있다(음란 단어라고 해봤자 젖가슴 정도인데, 남미 교육부가 생각보다 보수적인 모양이다).

 

 

 

 

욕망과 광기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지,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안개 같은 상태를 묘사하는 푸엔테스의 독특한 스토리텔링은 신비하고 몽환적인 분위기 하나만으로도 재미를 보장한다.

서스펜스가 가미되어 고급화된 우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소설 <아우라>는 ‘고딕 소설 + 마술적 사실주의 + 심리 소설 + 환상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 번 읽은 소설을 좀처럼 재독하지 않는 내가 5회 이상 정독하게 만들 만큼 임팩트 있는 작품이다(짧아서 자주 읽기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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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 Aura>

지은이 카를로스 푸엔테스
옮긴이 송상기
펴낸곳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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