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이 책은:
예전에는 돈키호테, 고흐 같은 사람이 희귀했고 소수였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돈키호테가 돈키호테를 알아본다
고흐는 고흐끼리 약하게나마 연대한다
그리하여 누구도 완전히 고립되지 않고 완전히 낙담하지 않을 수 있는지 모르지만
어쨌건 당장 고흐와 돈키호테같은 마지막을 맞진 않을 지라도 그들 인생의 현재진행형 운명이 지금이라고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성직자처럼 본다 이것이 모욕처럼 들리지 않길 바란다
자기 표현, 자기 관철의 욕구를 그에 수반되는 모든 장애와 고통을 견뎌낼 만큼 (자기 이상을) 성직자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성직자에 준하거나 실은 그 이상으로 더 어려운 일이다(목사님들도 어려우면 투잡을 뛰긴 한다..)
모든 작가 또는 돈벌이와 관련 없는 순수 창작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모두 이 땅에 잘못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계의 문제를 '대신해' 창작할 수 없다 생계의 문제와 '함께' 창작을 해야한다
작가의 현실, 주변의 대우..
그들은 늘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채워가지만 우리가 이름 모를 작가들은 대부분 이 별에 있을 동안의 존재감은 외눈박이이며, 경우에 따라 완전한 외계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어쨌든 그만큼 숭고하고 그만큼 짝사랑이 깊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이 일, 역시 예상보다 훨씬 가시밭길이었고 그러나 그 만큼 중독성이 강해보인다
그렇다고 나까지 뛰어들기에는,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들, 나보다 숭고한 의지를 가진 이들이 많아 보이는 게 사실이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공감하고 싶고 박수쳐 주고 싶고 빈 말이 아닌 온 맘과 삶(그들의 책을 읽는 것)으로 응원을 보내고 싶다.
(글쓰고자 하는 이들은 응원하려고 출간된 책인데, 주제넘게 책의 의도를 왜곡한 것이 아니길..!)
언젠가는 작가가 되고 언젠가는 책을 낼 것이다, 라는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다
현실 쓴 맛을 보지 않아 치기와 낭만주의가 뒤섞인 착각일 뿐,이라는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다
어쨌든 기존에 내 마음에 있던 ‘글을 쓰고 살아가는 인생’에 대한 구체적 인상과 입장이 어떠하든
이 책을 보면서 글을 쓰며 사는 삶에 대한 호기심, 도전욕구 같은 건 합죽이 입 다물 듯 쏙 들어가 버렸다
책을 다 본 뒤에 느끼는 것이지만 그것은 그들이 꼭 ‘글을 쓰는 직업’을 택해서만은 아니다
세상에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더라도 ‘돈이 되지 않는 직업’이 생각보다 많다
당장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당장 최우선 필요하지는 않지만, 쾌락감을 주어 돈을 쓰게 하는 일들이 그나마 주로 돈이 된다(알코올, 게임, 사치품 등)
그러고보면 글을 쓰는 것 그리고 글을 읽는다는 건 최우선의 ‘필요’도, 최강의 ‘쾌락’도 가지지 못한 생각보다 매력이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니, 그렇지 않다 아주 오랜 세월 우리는 글이 주는 매력에 빠져 살아왔다
글보다 영상이 대중을 장악하는 시대가 된 지 오래임에도 사람들은 오히려 더 다양한 형태를 통해 글을 쓰고, 팔고, 읽는다
하지만 생산자 입장이 되어보자면 글쓰는 일이란 언제나 정말 ‘원하는’ 사람들 아니면 그 ‘가치와 매력을 아는’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언제나 천대받아 왔던 건지도 모른다
특히나 거의 모든 항목에서 ‘이미 자본을 갖고 시작한’ 것들이 주목과 인정을 받는 오늘날 이 시대에, 그렇지 못한 개인이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상대로 해 자신이 설 자리를 갖는다는 것을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말그대로 ‘먹고살면서’ ‘글쓰는’, 위태위태한 두 줄 타기 삶을 살아가는 글쓰는 이들의 책 건너편 세계의 현실에 대해 가감없이 담아놓은 이 책은 좀 위험스럽다
말 목장에서 일하며 사람몸만한 똥 푸댓자루를 나르는 것, 수목장에서 일하며 주변 사람들이 꺼려하는 골분을 묻고 장례를 치르는 것, 땀범벅이 되는 플랫폼 택배 노동을 하는 것, 최저 시급의 까페 알바, 그 밖에도 요가 강사, 서점 주인, 주짓수 무도인..
글을 쓴다는 자체가 고난이의 정신+육체 노동임에도 그들은 글을 쓰지 않는 일반인이 하기에도 하드한 레벨의 육체 노동을 겸하며 동시에 글을 써나갔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는 회한, 비참, 무력, 애상으로 가득차면서도 동시에 그 온갖 악악악조건들을 이겨나갈 만큼이나 의욕이 창일하고 분기가 탱천하다 나 같은 사람들은 이들의 세상 영화 주인공 같은 분투에 그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내가 개인사업자로 살아가면서 앓았던 벙어리 냉가슴이나 부질없이 쏟은 한맺힌 눈물 같은 것들은 이들의 숭고하다고 밖에 표현할 길 없는 ‘노빡구’ 일방향 삽질에 비하면 한낱 애교 수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출간에 각자의 이야기로 원고를 모은 작가들도 이들 세계에선 쉽지 않은 등단과 수상을 몸소 획득해낸 엄연한 ‘위너’들이다
나는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칭하는 위너는 보통 평균 이상(그것을 평하는 기준 또한 ‘나의 현실’이 아닌 ‘넘의 현실’을 살아가는 넘들이 정하게 마련이지만)의 연봉과 스펙을 요구하는데 여기서 개인의 성취와는 완전한 별개의 불일치가 일어난다
이런 면에서는 글쓰는 일만 가진 것이 아닌 모든 창작자들이 갖고 있을 만한 딜레마, 모든 생계소득자 사람들이 겪는 욕구 불일치의 한계가 일어난다 나의 소중한 한 걸음, 한 계단이 전체 사람의 걸음과 계단 높이의 평균치에 의해 다른 가치값으로 매겨지고 현실에서 또한 그렇게 취급되고 마는 불일치다
어쨌건 그 불일치, 란 내가 글쓰는 일에 대해 갖고 있는 애착과 열정, 그리고 그 결과값(돈)사이의 불일치다 아무리 노오력을 해도 그 고상한 노오력 만큼의 대우는 비슷하게 주어지지가 않는 것이다
예체능, 예술, 이 방면은 ‘생산력과 직결되는 스킬(작곡을 비유하면 ‘음원 잘 팔릴 만한 곡’ 짓기 강습처럼)’ 같은 것이 아니면, 영혼을 살찌운다는 ‘세상 막연하고 덧없는’ 효능같은 건 있어도 없는 것,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는 게 현실 속 불편한 진실인 것 같다
각자의 에피소드는 내 과거 일기장을 들추듯 지난 삶의 비슷한 기억과 비슷한 연민을 소환한다
대부분은 내가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시절의 한 순간이다 그러나 그들 일부에게는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들이다
한마디로 ‘아픈 손가락’처럼 자기 내면의 한 일부를 그렇게 가슴에 묻고 짊어지고 또는 머리에 이고 하루 하루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애써 포장한 해피엔딩의 기미가 전혀 없는 한 작가의 이야기가 끝나면 “도대체 글을 왜 계속 쓰는 거야?” 질문이 떠오르고 다음 작가의 글에서도 여지없이 “도대체 어쩌자고 계속 쓰겠다는 거야?” 똑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그들은 그들 삶의 날 것을 그대로 줄줄줄 꿰다가 결국 그들의 눈물에 겨운 보상을 받게 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른 뒤 또 다른 이유로, 가장 어려웠던 상태로부터 크게 나아진 것 없는 '기적 없는 남겨진 현실'을 살아간다
그냥, 인생이다 인사치레 같은 격려도 없이, 애꿎은 환상을 우겨넣지도 않고, 자신들의 살아온, 살아가는 인생을 쓴 것이다
이들의 글이 다 남의 것 같지 않았던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야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그래서 이 책이 읽고 또 다시 읽어도 소중하다
누가, 이렇게 쉽게, 감히 살 수 있을 것인가?
정신승리가 절대 아니다
그것이 당장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닥치는 대로 하고 있는 어떤 일들을 수반한다고 해도 기꺼이 그것을
‘내면이 가장 욕망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어리지 않고, 절대 치기 어리지도, 낭만에 속지도 않는, 아주 지성적이고 냉철하며 의지가 강한, 사람들.
이성과 감정 모두 자신의 내면 앞에 납작 엎드릴 줄 아는, 그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너무 부럽다
내 안의 어떤 욕망이 그토록 나를 완벽히 삼키고, 동시에 나를 온전히 살게 만드는 상태에 이를 수 있을까?
그들은 모두 한번쯤 전업작가를 꿈꾸지만 현실적으로 시대적으로 그것이 자기 몫이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고 가능한 메인 생업을 놓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글을 쓸 수 있도록, 글을 쓸 시간을 제공하는’ , ‘글쓰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구하고 해내는 부분에 있어서, 그리하여 ‘자신이 가장 염원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환경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위너들일지도 모른다 결과가 나오게 하는 원인까지 필요한 모든 절차와 과정을 스스로 힘써 제공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리고 모든 일이 그렇듯, 늘 결과는 운의 작당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이 부분에서는 마지막 글을 맡은 작가 이원석님의 ‘감나무 밑 입 벌리기’ 비유가 상당히 와 닿았다.. 쓰고, 기다리고, 작가는 입을 늘 벌리고 있어야 하는 존재니까)
‘누가’ 아닌, ‘돈’이 아닌, ‘내가’ 나를 나아가게 하는 것, 저 옛날 그리스인들이 말한 ‘자유인’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두고 말한 것일 것이다
글을 쓰는 일에 수반되는 각종 고단함을 유별나지 않게 평범한 자기 몫처럼 여길 줄 하는 글쓰는 이들의 마음가짐이야말로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노예의 삶과 태도로부터 독립된 자율과 권리, 책임을 모두 지닌 참된 자유인의 것일 것이다
이 사실을 일단 독자인 나 한 명만큼은 제대로 알게 만든, 아주 값진 ‘먹고 살면서 쓴’ 책이었다
회사 일이 좀 가벼워지고, 아이가 손이 가지 않을 만큼 적당히 자라고, 승진 후라 이제 한숨 돌리고, 중요한 시험이 끝나면 이제 글 쓸 시간이 날 것 같지만, 그런 날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 그날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그날이 찾아오도록 하려면, 내가 그날을 끌어당기는 수밖에 없다. 내가 그 날을 만들어야 한다. 그날을 만들려면, 지금 당장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면 된다. 당장 오늘부터 시작하여 아직은 글 쓸 여유가 없다는 머릿속의 속삭임을 꽉 누르고 묵묵히 쓰는 것이다.
프리랜서는 ‘프리’해서 자유로운 것 같지만 때로는 ‘공짜’라서 ‘프리’다. 싸구려 취급받아서 ‘프리’인 것이다. 자유로운 것은 혼자라는 뜻이다. 그래서 일을 받으려면 맨몸으로 어디에든 부딪혀야 한다. 인맥을 모조리 스스로 개척해야 하고, 쥐꼬리만 한 원고료도 속이 아플 정도로 후려치기를 당하거나 벼룩의 간만 한 돈을 조금만 기달려 달라 해서 기다리면 지칠 때쯤 입금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글쓰기 같은 예술 쪽 분야에 뜻이 있다면 절대 돈 나오는 구멍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간혹 생업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전념하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도시락을 몇 개씩 싸들고 쫓아다녀서라도 말리고 싶다. 첫째는,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직장에는 붙어 있어야 한다. 배가 고프면 글도 쓸 수 없다. 두 번째는, 지금은 아닌 것 같더라도 그 직장에서 일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역시 펜을 쥔 당신의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이런 걸 보면 도매시장쪽에서도 가장 하드한 상가건물에서 장사를 했던 내 지난 경험은 당시 일기장 속 욕지거리 외엔 글로 안써지는 걸 보니 난 작가가 되긴 글렀나보다.. 고통스럽거나 아팠던 생계의 경험을 누구나 볼 수 있을만한 의미있는 글로 재탄생시킬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불과 30년 정도 전만해도 몇백만 부 정도 팔아 돈방석에 앉는 작가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우리는 잘못된 때에 태어났다. 책으로 재미를 보기에는 아주 좋지 않은 때에 태어나 버린 것이다.
컴퓨터게임, 스마트폰, 유튜브 등 책보다 재미있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시대에 태어나 글 같은 걸 쓰겠다고 이렇게 애를 쓰고 있으니 우리는 한 명 한 명이 죄다 돈키호테인 셈이다
-김현진 <우리는 한 명 한 명이 죄다 돈키호테인 셈이다>
늦게 태어난 게 죄라고, 우리의 문학적 상황은 카프카 보다 좋지 않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남김없이 죽어야 할 자본가, 건물주 들을 제외하고 오늘날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이들 중 ‘전시상황’에 놓이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 고난을 저마다의 자리에서 함께 돌파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면 그 분투는 덜 외롭거나 최소한 덜 억울할 것이다. 아니, 사실 그래도 억울하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으니까 정신 무장이라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당신도 퇴근하고 읽고 써라. 그 일이 가치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설령 무가치 하더라도 그러는 게 재미있다면, 그 재미를 위해 힘을 들여라. 재미야말로 당신이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니까. (뭐? 부모나 돈이 많아서 일을 안 해도 되서 시간이 남아돈다고? 꼴 보기 싫으니까 다른 데로 가세요.)
-송승언 <사실 당신이 쓰는 글에는 별 가치가 없다, 내 글이 그렇듯이>
소설 쓰는 마음을 잘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 쓰는 마음은 지키기가 어렵다.
청탁이 없으면 발표지면을 얻기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힘들고, 가까스로 책을 내도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팔리지 않는 중요한 문제도 있다. 그럼에도 소설을 계속 쓰는 마음은 뭘까.
아마도 사람마다 다른 답변을 하겠지만, 내 경우엔 소설 쓰기만큼 재미있는 일은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싱거운 답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면서 계속할 수 있고, 할수록 새롭게 느껴지는 일은 나에겐 소설 쓰기밖에 없다.
-이서수 <미안하지만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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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고 글쓰고>-일하며 글쓰는 작가들이 일하며 글쓰는 이들에게
지은이 : 김현진, 이서수, 송승언, 김혜나, 정보라, 전민식, 조영주, 김이듬, 이원석
펴낸곳 : 빛소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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