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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한 여자 Une Femme>아니 에르노/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인적'체험 속 '모두의'역사

by 돌냥 2023.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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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에서부터 덮는 순간까지 눈물이 계속 났다

슬픔을 묘사하는 부분은 단 한문장도 없지만 나와 겹치는 것이 거의 없는 그녀와 그녀 어머니의 삶에서 나는 ‘나의’ 지나간 삶들을 계속 확인했다

 

내 지난 행보가 그녀처럼 ‘계급 이동’을 이루지 못했어도, 내 어머니가 그녀 어머니만큼 세상에 관철되기 위해 끊임없이 다양하게 억척을 부리지 않았어도 이미 그녀의 글이 내 삶이 된 기분이다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과 장년 삶을 관통하는 그녀 어머니의 삶은 이제 개인적이고도 유일한 그녀만의 것이 아니라 그녀의 책으로 인해서 모두가 경험하고 공감하는 ‘유일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많은 부분이 실제로부터 변형된 다큐나 드라마로써가 아니라 그녀의 인식과 기억을 따라 띄엄띄엄 이어지는 단조로운 축약형 문장들을 통해 나는 도리어 가장 본래에 가까운 수준으로 현재 또는 이후의 보게 될 나의 부모의 모습을 본다 나를 본다 어쩌면 내 부모가 맞이할, 최근 더 급격하고 더 자주 예견하게 되는 그들의 노후를 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게 될 나를 본다

 

자신의 경험이 되어봐야지 안다는 말은 이 책 앞에 너무나 상투적이다 우리는 경험을 말하기 이전에 그 무지함이 '애처로울만큼' 단지 모를 뿐이다

이미 경험한 자들의 경험이 나머지 사람들의 이성을 차리고 산다고 여기는 순간은 모두 착각으로 느껴질 만큼 궤도 이탈을 하는 것들이라서 그런 비현실적 상황을 감당하는 자체에 모든 에너지가 소요되고, 그래서 밖으로 외쳐지거나(외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기에 자체 음소거 되는 것이겠지만) 공유되지 못하고 무엇보다 여전히 '보이는' 어떤 울타리, 그런 그들과 언젠가 그들이 될 우리를 응당 감싸줘야한다고 생각되는 비상구(제도라고 부르는 것들)를 아직도 마련해놓지 못했을 뿐이다

 

 

 

 

 

이 글은 전기도 소설도 아니고 (초반만해도 소설인 줄 알았으나 몇 장 넘기지 않아 작가의 현실이었음을 곧 알게된다) 문학 사회학 역사 그 어딘가 걸쳐진 누군가는 기록해야만 하는(마치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였더라도 -당연히 나의 일기에만-쓰게 됐을, 감히 말하건대)기록이다

또 논리적인 설명도, 구구절절한 하소연도, 목적을 가진 글도 아니지만 ‘효과’의 면에서 본다면 (그녀가 그녀어머니의 삶에 대해 기억하는 모든 흩어진 퍼즐의 짜집기는) 어떤 장르와 어떤 수단보다도 강력하다

 

나는 지금 이 나이에 이 책을 보며 '-죽음이 임박한-노년이라는 것'에 대해 전처럼 실제라고는 완전히 생략된 추상화가 아니라 '하이퍼 리얼리티'로 그려보게 됐다

 

 

 

 

가족 존재의 가치에 대해서 어떤 신념도 의구심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나 역시 작가처럼 부모 개인을 유일하고 독자적인 캐릭터로서보다 단지 시대의 영향력에 완전히 종속된 구성원-한시대의 한계급의 전형-(나 역시 그러하듯)으로 좀 더 멀리 떨어져서 보게 되는 날이 올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의 비참한 오만함은 아마도 예전처럼 당장의 긴장 해결을 덮어버리길 바라며 그들이 으레 바라는 반응을 내어주던 일방향으로 다시 회귀하도록 허락하진 않을 것이다

그저 새로운 반응이 나에게 오게 될는지 그럴 수 있을런지-내게 그러한 준비가 될 만큼 현실적 역량도 준비되있는 지-궁금할 뿐이다

 

 

 
 

 

‘모두 무엇을 꼭 안 해도’(결혼을 출산을 부양을) 언젠가는 ‘모두 노인을 겪게’ 된다

내가 부모와 가족에게 갖는 인식과 감정과는 별도로 이미 날짜라도 잡힌 종말처럼 그 날을 미리 상상해보고 실감 없이 그대로 맞아야 한다

 

내가 세계를 인식하고 있는 연결고리는 가장 가까운 존재들을 통해 형성된다

당장 입에 풀칠하는 것이 버거운 아침과 밤을 보내면서도 이 머나먼 프랑스 여자의 1986년산 ‘남의 어머니’ 얘기는 내 부모, 아니 곧 일어날 내 얘기처럼 쨍한 살얼음 만지듯 당장의 위급하고도 슬픈 촉감을 느끼게 만든다 좋은 것 나쁜 것 없이 ‘잃어버림’ 자체는 우리를 결코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가족들 대부분이 그렇듯, 내 어머니의 가족은 하나의 부족 같았다 외할머니와 그녀의 자식들은 행동하는 방식도, 반농민 반노동자로서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동일해서 누구라도 그들이 <D……네 식구들> 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남녀 모두 어느 상황에서든지 소리를 질러댔다.. 특히, 자신들의 노동력에 대한 자부심.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더 씩씩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자신들을 가둔 한계에 스스로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확신을 맞세웠다

 

 

나는 어머니의 폭력, 애정 과잉, 꾸지람을 성격의 개인적 특색으로 보지 않고 어머니의 개인사, 사회적 신분과 연결해 보려고 한다 그러한 글쓰기 방식은 내 보기에 진실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며, 보다 일반적인 의미의 발견을 통해 개인적 기억의 고독과 어둠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돕는 것이다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뻗대고 있고, 어머니에 대해 순수하게 감정적인 이미지들을, 온기 혹은 눈물을, 의미 부여 없이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함을 느낀다

 

 

 

나는 그녀가 말하고 행동하는 거친 방식이 부끄러웠는데, 내가 얼마나 그녀와 닮았는지 느끼고 있는 만큼 더더욱 생생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다른 세계로 옮겨 가고 있는 나는 내가 더 이상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여전히 내 모습인 것에 대해서 어머니를 원망했다 그리고 교양을 갖추려는 욕망과 실제로 교양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 사이에 깊은 구렁텅이가 존재함을 깨달았다 내 어머니는 반 고흐가 누구인지를 말하자면 사전을 필요로 했고, 위대한 문호들에 대해서는 이름만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내 학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랐다 나는 어머니를 너무나 찬미해 왔었기에, 나를 곁에서 지원해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집에 서재가 있는 친구들과 학교라는 세계에 방치된 것이 대해서, <누구랑 있었니? 적어도 공부는 하고 있겠지>라며 자신의 불안과 의심을 쓸데없는 짐으로 안겨줄 뿐인 그녀를 아버지보다 원망했다

 

 

어머니는 자기 자체로는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며, 자신이 주려는 것으로 사랑받기를 바랐다 우리 학업이 끝나는 마지막 해에는 재정적으로 우리를 도우려 했고, 나중에는 우리가 무엇을 받으면 좋아할지에 대해 늘 염려했다 나머지 또 다른 가족은 유머와 독창성을 지녔고,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식네에 얹혀산다는 것, 그것은 그녀가 자랑스러워했던 생활방식(친척들에게 하던 말, <걔네는 아주 잘산다고!>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현관 입구의 라디에이터 위에서 걸레 말리지 않기, 위생에 신경쓰기, 사회면 기사 범죄 사건사고, 이웃과 좋은 관계 유지하기,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게 될까봐 계속 마음 쓰기 등 자신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나머지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함. 그것은, 한쪽으로는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다른 쪽으로는 자신을 내쫓는 세계 속에서 사는 것. 어느 날, 분통을 터뜨리며 한 말. 『이 그림 속에서 나 혼자 튀는구나』

 

 

 

 

어머니는 이름들을 잃어버렸다 어머니는 사교적이고 예의바른 어투로 나를 <부인>이라고 불렀다 손자들의 얼굴도 그녀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식탁에서 손자들에게 이곳에서 급료를 제대로 쳐주는지 물었고 자신이 있는 곳이 농장이고 손자들은 그곳 일꾼들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어머니의 망각 증세들이 마치 그녀가 일부러 저지르는 개그인 양 굴었다 나는 어머니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들은 나를 아무 말 없이 바라봤고, 나 역시 미쳐 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다시 어린 계집아이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고, 그녀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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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 원제 : Une Femme (1987년)

지은이 아니 에르노
옮긴이 정혜용
펴낸곳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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