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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혼자라는 가족>1인 가구로 살아가는 모든 혼족들을 추앙하며/ 나혼자늙는다 극공감 에세이/ 환상과 왜곡없는 홀로 저물어가는 삶에 대한 자기관찰기

by 돌냥 2023.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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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 책은:

요즘 날마다 불특정 묻지마 범죄에 대한 뉴스들로 인터넷 포털이 도배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일본의 거의 모든 면을 시험지 배끼듯 빼곡히 따라온 만큼 경제 급성장 정점 이후의 부작용, 고질병 또한 모두 빼곡히 그대로 따라가는 수순 중에 있을 뿐이라 단편화하는 생각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히키코모리나 1인 가구 고독사 등 그 자체로는 옳고 나쁨을 단정지을 수 없는 결과론적 사회현상들 말이다 물론 그 생각은 변치않았다 

변한 것은 사회 구조의 변화와 그 속의 나 자신일 수 있는 개인에 대하여, 그동안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뉴스 사회면의 사건사고를 보는 듯한 겉핥기식이 아닌, 한국에서 2차 재생되는 일본식 잃어버린 삼십년 불황 속의 한 단면도 아닌,

'당장 실제 나의 삶으로' 스미는 듯한 평범한 일상 속의 생생한 일인가구 체험은 이 책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일인으로서의 분투하는 삶, 견디고 버티는 삶. 이미 충분히 겪었다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을 수 있으며 오히려 본격적으로는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라는 자각을 하게 해준, 개인적으로 각별함이 느껴지는 책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집안일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질러지면 치우고, 쌓이면 버리고, 쓸고 닦아도 끝이 없고, 표시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별도리가 없다. 힘들다고 내팽개치면 집 꼴이 엉망이 되니까.
그저 묵묵히 견디고 버티는 수밖에.

 

 

 

‘혼자’의 사전적 의미: ‘다른 사람과 어울리거나 함께 있지 아니하고 그 사람 한 명만 있는 상태’.

 

혼자 사는 삶이 독립적이고도 낭만적으로 포장된 것에는 최근 십여년간 주류로 자리 잡은 예능의 힘이 크다

미디어의 묘사나 사회적 인식과는 별도로(사회적 인식이라는 자체에 평소 감이 잘 없긴 하다)최근 몇 년 사이 혼자 사는 삶이라는게 생각만큼 그다지 특별하게 쓸쓸한 것도, 처량하거나 비참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됐다

 

감정의 문제를 넣을 것 없이 작년 기준 1인 가구 수가 전체 인구 3명 중 1명을 넘을 정도로 수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고, 이제 더는 노인이 아니어도 청장년층에서도 고독사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할 만큼 일반화된 가구 형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장 나부터도 전과 달리 고독사 뉴스들을 볼 때 더는 넘의 문제가 아니라 향후 고독사만큼은 피하려면 어떤 조치를 해야하나 덩달아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곧 한번 더 생각해보면 내가 이미 죽은 후의 일까지 굳이 미리 당겨 고민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혼자 죽으나 같이 있을 때 죽으나 살아있을 때 혼자듯 죽음도 혼자가는 것이기에)

 

늘 혼자 살고 있다고 여겨왔지만 ‘놀랍게도’ 물리적으로는 단 한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혼자 사는 삶에 대하여 더 보탤 것 없이 낱낱하게 담아놓은 이 책에 이렇게 깊이 공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

느낌과 경험 모두 마치 예전에 내가 썼던 일기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내 스스로 썼더라면 민망함에 다시 들출 일도 없었을 테지만 이렇게 타자화된 나와 유사한 경험과 생각들은 내용의 그 지극한 사적인 면모에도 불구, 동시에 그 지극한 보편성으로 인해 하나 하나 소중히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먹고 사는 상념에 많은 문장들을 내 안에서 지워낸 나와 달리 작가는 순간 순간의 마음들을 포착하고 보듬어주었다 그저 자신이라는 존재를 지키기 위한 일환으로 스스로 산 고달픔들, 그 안에서도 단순하고 소소한 정신적 원함과 충실의 순간들- 이것들은 적어도 내 눈에는 결코 헛고생과 무의미가 아니라 자신을 지켜주면서 동시에 자신을 건사하는 그녀의 순간 순간 삶 자체가 그대로 참 아름답다,고 느껴지게 만들었다

 

 

 

 

황송하게도 만 나이로 사십대에 들어서려면 내겐 아직 얼마간의 시간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올해는 특히 작년과는 다른 생각들, 그러니까 다른 종류의 새로운 두려움들,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생경한 공포감들을 느끼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가 딱 그러한 내 마음 상태를 그대로 문자화해서 옮겨준 느낌이다

죽음까지 길어진 삶에 더 길어진 질병의 고통, 급격히 쇠약해진 부모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 채 그들의 노년을 지켜보는 고통, 자녀 또는 배우자 없이 혼자 보내는 일상 채움의 고통 등등.

이 시대와 사회에 1인 가구가 많아진 것은 단순하게 사람들이 전보다 독립적인 성향이 되거나 자주적인 삶을 원해서가 아니다 사회와 산업의 구조와 무관치 않은 세대의 흐름 속에 개개인 낱낱은 각자의 서로 다른 사정을 품은 채 표면상 1인 가구의 형태로 살아간다

 

작가는 현실적인 이유와 개인적인 이유 모두에 의해서 1인 가구로의 삶을 오랫동안 유지해온 사람이다

비혼과 무자녀의 요건을 모두 갖춘 1인의 삶은 '현실'적 이유와 '성향'적 이유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살아갈 수 있는 형태인지도 모른다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가까운 측근들만 보아도 현실적인 이유로 1인의 삶을 선택하는 이들의 경제적인 배경에는 ‘넉넉함’과 ‘궁핍함’ 이 양 극단이 모두 해당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애매한 경제수준과 더 애매한 독립성을 가진 나는 그래서 결혼을 했었는지도)

 

돈을 벌어도 내집마련과 자녀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부모에게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는 주변의 수많은 유자녀부부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보면 오히려 집문제와 갖은 살림문제, 생계근로 등 삶의 모든 부분을 독야청청 혼자만의 힘으로 해내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1인 가구 고인물들이야말로 필연적으로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하고 주도적이고 근면한 이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이들에겐 각자 다른 현실 사정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일 테지만)

실제로도 어느 정도 그러한 것이, 현실적으로 대체인력이 오로지 자기 자신 몸뚱이 하나밖에 없기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당장 ‘그저 보통 수준의 건강과 위생이라는 복지’라는 목표를 이루려 해도 일상의 자질구레한 면면을 볼 때 2인 이상 가구 이상의 '특별한 바지런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삶은 어찌 보면 편함보다 스스로도 지각조차 할 수 없는 무수한 불편한 조각들을 홀로의 몸에 온전히 다 지니고사는 건지도 모른다 (둘이 살아도 거의 혼자 살고 혼자 부양해온 삶을 십 년 넘게 살다보며 느낀 것이다)

단순한 경제 문제를 떠나 하나부터 열까지 세상살이의 모든 알아봄과 책임(한마디로 처세) 에 있어 나 자신 하나만을 ‘부양’하는 것은 매 순간순간 기이할 정도로 힘에 부친다 차라리 누구를 도와주기 위해 책임지기 위해 벌고 알아보는 것이 힘이 덜 든다고 생각될 정도다

생계와 외로움 가운데서 매일 나 자신과 씨름하고 우쭈쭈 달래어 일으키고 신체노화를 받아들이고 먹이고 돌보며 살아가는 것. 지금은 유사 1인 가구이지만 나 역시 어느 순간에는 정말 완전한 1인 가구의 삶이 될지 모른다 전통적인 가족 구성원 숫자가 얼마가 되었든 생존 생계의 속성상 1인 가구 역시 스스로를 '돌보며' 스스로와 '함께 살아간다'는 면에서 작가의 말처럼 엄연히 ‘혼자라는’ ‘가족’에 해당하는 것이다

 

 

 

 

어림 짐작으로 나와 열살 정도 차이가 날 듯 싶은 저자의 삶과 고민은 현재의 나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작가의 말들을 통해 내가 맞닥뜨리게 될 머잖은 삶의 모습들을 미리 보고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동떨어진 위너의 경험담과 승리와 극복 전략 같은 것을 기대하고 자기계발서를 보곤 한다 내 경우는 그런 것들을 보면 더 열패감을 느낄 때가 있다 루저 위너 이런 개념을 떠나서 내가 겪은 한계 모순 딜레마들을 동일하게 겪는 사람의 이야기 고충 그리고 여전히 길을 찾고 있는 사람의 '어떤 것도 (감히) 타인에게 확답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만을 길을 찾아가고 걸어가는'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훨씬 더 큰 힘이 되고 때로 그 자체로 해결책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나에게 <혼자라는 가족>은 딱 그런 책이었다 굵고 짧은 에피소드들 속에서도 경험의 최전선에서 마주하게 되는 날선 단상들과 조근조근한 묘사에서 되살아나는 현장감들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또 다른 내가 먼저 나이 들어 쓴게 아닌가 싶을만큼 나와 내면이 비슷한 작가의 책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새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기분이다

 

이미 일 이년전부터 내게도 변화의 흐름이 시작됐었다

누구도 알아줄 필요 없다 이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별할 것 없는 삶이라해도 상관이 없다 아무 욕구가 없는 중에도 이 하나만큼은 버킷리스트처럼 내 속 어딘가에 깊이 박혀있던 스스로 우스울 정도의 의무감-책을 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강박도, 사라졌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진정으로' 괜찮다는 생각이 스스로에게 아주 편하게 납득이 되었다 그리고 단어만 살짝 다르지 작가와 거의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던 것 같다 

 

 

이미 이 미친 세상에서 파도에 타기 위해 진력을 쏟아봤고(경제적 생존), 남아있는 삶은 이제 내 방식으로 나로 살아남기 위한 버팀(자아의 생존)으로 살아가야겠다고. 그렇다고 전처럼 뭐가 됐든 마냥 열심히,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은 금물이다 

어디까지나 너무 쉽지는 않게, 그러나 너무 열심은 아닌 선을 지킬 것이다 내가 쉽사리 빠지고마는 선을 넘는 열심들은 곧잘 '세상에도, 나 자신에게도 득이 안되는 방향으로' 변질되기 마련이기에.

 

적당히 곁눈질하고 한눈도 팔면서, 늙어가는 모든 시간을 밥알 한알 한알 꼭꼭 씹을 때 배어나오는 단물을 느끼면서, 그런 '음미의 열심'으로 한 날 한 날의 나이를 채워가고 싶다

 

 

 

 

 

 

 

 

무언가가 된다는 것.
그건 이 미친 세상에서 품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지만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인간실격>의 첫 대사는 이렇다.
“난 아무것도 되지 못했어요.”
나도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항의를 받거나 질타를 받지는 않는다.
나의 죽마고우는 무언가 되기를 바라는 삶을 진즉에 버렸다고 했다. 애초에 무언가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은 늘 누군가에 맞춰 살아갈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고 말했다.
나는 늘 무언가 되고 싶었다. 작가든, 교사든, 무엇이든.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나에 대한 위로의 문장이다.
고로 나는 이렇게 쓴다. 무언가 되지 못해도 어떠랴. 삶이 주는 멀미를 잘 버티고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짧기만 하다.나는 나를 고백할 용기가 없었다. 아니 솔직하지 못했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번뇌로 점철된 날들, 모진 말조차 내뱉지 못해 끙끙댔던 비굴한 모습, 제대로 저질러 보지도 못하고 애면글면했던 기억들을 미사여구로 포장하고 싶지 않았다.
젊은 시절 대의라 생각했던 것은 자기 합리화였으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려 했지만, 삶의 법칙을 따라가는 치졸한 삶의 모습만 남았을 뿐이었으니까. 고백이라는 단어에 지치기도 했다. 더 늦기 전에 나를 처연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마음을
, 내인생을 들여다보기 위해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작가로서가 아닌 나라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무엇이 되지 못해도 된다

 

 

나에게 가족은 언젠가는 떠나고 싶은 곳이었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한 곳에 복작거리며 사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런 경험은 어릴 적 기억만으로도 충분했다. 반드시 모여 살지 않아도 서로의 안위를 살피고, 각자의 영역을 인정해 주며, 다툼과 화해, 오해와 이해 사이를 반복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관계가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지금, 그렇게 되어가고 있음에 감사한다.

-혼자라는 말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나는 과도하게 업무에 몰입했고, 직장 내 관계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예민했다. 
관계 맺음에 대한 내 생각은 항상 과도한 기대와 실망감 그 중간 어디쯤을 오락가락했다. 마치 황색 신호등이 켜졌을 때 브레이크와 엑셀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관계는 나에게 남아 있는 체기 같은 것이었다.관계맺기는 이 괴로운 체기를 극복하려는 가엾고 끈질긴 희망인지도 모른다. 그리하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관계를 그저 불능이라는 단어와 같은 것으로 여겼다. 허용되는 수준은 그저 아주 조금만 엿보기, 그리고 이내 소통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종국에는 침묵하기, 단지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의 필요에 의해 연락하고 관계를 맺는다. 깊은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관계가 돈독해지지라 생각하고 깊어지지 않음에 절망한다. 관계에서 오는 고단함과 일에서 오는 피로감 둘 사이의 균형이란 과연 가능한 일일까.

모든 관계는 노동이다.가족이나 직장에서 힘들게 유지되는 관계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 같은 것이다. 그것은 정서적 유대감이나 인간관계의 유연함이라는 탈을 쓰고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노동이다. 
어쩌면 진짜 혼자 살아가는 일은 퇴사한 지금부터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관계는 노동이다

 

 

 

어느 날이었다.
일요일 오전9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다가 어머니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

“식사하셨어요?”
“아니, 아직. 지금 일어났어.”
“늦었네?”
“일찍 일어나봤자 밥 먹는 거밖에 할 일도 없는데 뭐.”
나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렸다.
비혼자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다가올 나의 노년을 생각하면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겹친다.
물론 자식이 없고 남편이 없으니 그저 나 혼자만을 책임지고 선택하면 되지만.

-어쩌다 비혼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삶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
비록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경제적 생산 활동은 아니지만 세상에 삶이라는 직업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까.
마을을 다니면서 만나는 칠팔십대 할머니들이 하는 말씀이 있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절반은 “내가 아는 사람 있는데 만나볼텨?”라고 말한다. 나머지 반은 “여자가 능력 있으면 결혼 안 해도 괜찮어. 그냥 혼자 살어. 돈 많이 뫼았지?”라고 한다. 첫 번째 질문에는 기겁하고 도망하며, 두 번째 질문에는 입꼬리를 올린 채 슬슬 뒷걸음질을 친다. 어떤 질문이든 속 시원하게 답변하지 못한다.

한 달에 90만원 정도 생활비가 소요되었던 사람은 은퇴 후에는 조금 더 아껴 60만원에도 생활할 수가 있게 된다. 하지만 한달 150만원 생활비를 지출했던 사람이 월 60만원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규모와 태도의 문제인 것이다.
스스로의 생계의 규모를 어떻게 결정할 지, 생산적 삶을 위한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오직 자신만의 몫이다.

[우리는 돈을 벌려고 애쓰는 대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년 1년을 그럭저럭 지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현금이 얼마지?”
우리는 모든 계획과 목표를 고려해 필요한 현금을 정한 뒤, 그 액수를 벌어들일 수 있을 만큼만 환급작물을 생산했다. 그리고 일단 목표액이 채워지면 다음 예산을 세울 때까지 생산을 중단했다.
시골 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접하면서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한다는 것이다. 생계를 위한 노동 4시간, 지적 활동 4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하며 보내는 시간 4시간이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 <스콧 니어링 자서전>]

-혼자 살아가는 일


 

 

우리는 노동집약적인 삶을 산다.
내가 잠을 자는 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쉼 없는 노동이 이뤄지고 있다.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굴레다. 피곤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래야만 겨우 먹고산다.
빈곤은 우리 삶을 조롱하듯 노동의 최전선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다.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자식들 뒷바라지하니 노후를 준비할 여력이 없다. 아직 결혼하지 못한 자식도 있다.
이쯤 되면 ‘일한 자, 떠나라’가 아니라 ‘일한 만큼 더 일해라’가 되어버리고 만다. 죽을 때가지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지옥 같은 세상이다.
나 역시 일을 찾아 시골로 내려왔다. 그리고 퇴사를 했다. 나 같은 작업자가 겨우 몇 년 회사 생활로 많은 돈을 모았을 리도 없고 속절없이 나이만 먹었다. 생각해보니 단 한번도 노후를 생각해 본적이 없다. 노년이 되었을 때의 내 모습을 그리며 대책을 마련하고 살기에 나는 너무 하는 일에만 급급했다. 지금도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가끔씩은 인터뷰를 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기록 노동자이기도 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삶의 고달픔에 대한 문장들이 떠올라 멀미가 나기도 한다. 이것도 어쩔 수 없는 나의 인생이라는 자조를 섞는다.

-삶이라는 직업

 

 

우리 사회에서 중장년층은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보다 안온한 거처에 머무르기를 원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이 맞는 것인가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가진다.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부채는 그대로이며 중압감을 느낀다. 비혼의 경우 먹고사는 생계의 문제를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야 한다. 즐겁게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회사 생활에서 자아실현은 언감생심이다.

-먹고 살아가는 일

 

 

 

처음엔 매일 오는 어머니의 전화를 그저 나이 들어 혼자 사는 딸내미를 걱정하는 마음으로만 여겼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예전에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릴 때도 이 정도의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었다. 하긴 그 때는 어머니도 젊었다. 당신의 일과가 있었고, 돌볼 아버지가 있었다. 나에게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전화가 뜸해지면서 나는 어머니의 잘 지내, 라는 의미가 외로워, 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로움은 그리움이다


 

 

황씨 아저씨는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봤다고 했다. 그러나 소소하게 자연의 섭리처럼 다가오는 육체의 변화 외에는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자기는 자식도 없고,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다가오는 삶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어 보였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더 남았고 특별히 아픈 데도 없었다. 그럼에도 아직 오지 않은 병에 대해, 다가오지 않은 곤궁한 미래에 대해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인생이란 자신이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한 신의 조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그저 일을 찾아다닐 뿐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복잡함과 어지러움 속에 나를 숨겼다. 일이 끝난 후에는 관계의 피곤함과 삶의 남루함만이 남았다. 아무에게도 벗이 되어주지 못했고, 나이가 들어서도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지 못했다.
그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자기만의 몫으로 주어진 시간을 견디고 버티어 낼 뿐이었다. 다만 버티는 방식이 다를 뿐이었다. 영원으로 이어질 것 같았던 순간도 그저 망각된 현실일 뿐이었고,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도 현실 앞에서는 무기력할 뿐이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슬픔보다 오늘의 안위와 평화로움을 기대하는 것이 지금의 현재로서는 최선일 따름이었다
.

눈을 뜨니 아침이고, 어딘가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며 사는 것이 노년의 삶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나의 이 힘겨운 젊음의 시간이 속히 흘러가 버리기를, 더 이상은 세상에 휘둘리지 않기를 말이다. 내 생각과 의지로 자유롭게, 얽매임 없이 움직이고 실천할 수 있는 이때가 현재임을 알고 있다. 그 현재가 지나서 나의 과거가 된다. 내게 남은 미래는 현재를 충실히 살아내서 과거를 생산해 내는 일이다.
단지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단지 오늘을 살아갈 뿐

 

 

어머니는 이제 혼자다. 나도 혼자다.
우리는 지금 가진 것도 없이 자신만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이 사회의 혼자 사는 노년이고 중년이다. 어머니도 버텨내고 있었던 것이다.나 또한 노년의 삶을 맞게 될 것이다. 아마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 힘겨워질지도 모른다. 더 많은 문제가 생기고, 더 많은 고민을 하며 살지도 모르겠다.
경제적인 부분은 지금까지 어떻게든 살아왔으니 늙어서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먹고살 것이다. 물려줄 자식이 없으니 재산 걱정 같은 일로 애쓰지 않아도 된다. 육체적 늙음이야 자연의 법칙이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 다가올 문제는 '어떤 것들로 하루의 일상을 채울 것인가' 그리고 '누군가와 여전히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인가'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 어떻게 하면 잘 늙어갈지, 그보다 어떻게 하면 천천히 잘 저물어 갈 것인지 고민해 볼 일이다. 지금도 이미 중요한 문제지만 말이다.

-남아 있는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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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라는 가족>

지은이 김보리
펴낸곳 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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