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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일하지 않는 사람들 일할 수 없는 사람들>어긋난 것이 아니라, 조금 느릴 뿐 (리뷰2)

by 돌냥 2023.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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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1에 이은 리뷰2. 생각을 덧대다보니 이번 포스팅도 길어졌다. 

대단한 스압..을 최대한 색깔펜으로 수습해보도록 하겠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2005년 일본 출간된 일본 니트족, 히키코모리 상황과 대책에 대한 책이다.

우리나라의 캥거루족, 쉬었음 청년들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에 무리일지 모르지만 유사 가치관, 유사 고용형태로 인한 근본적인 원인은 비슷해보인다. 아무튼 시대적 차이와 그럼에도 존재하는 공통점들을 동시에 인식하며 읽는다면 도움이 될만하다

 

 

인생이나 일에 희망이 없기 때문에 니트족이 된다

학교나 직장에서 자신이 있을 장소를 찾지못하는 사람을 니트족이라고 한다면, 은둔형 외톨이는 니트족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 정의로 ‘반 년 이상 가족 이외 사람과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는 상태’가 은둔형 외톨이, ‘가족 이외 사람과 인간관계는 갖고 있어도 일이나 학업을 정상적으로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가 니트족이다. 일과 학업 모두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는 상황은 니트족이나 은둔형 외톨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니트족에 대한 설명 중 순서가 뒤바뀐 것이 있다. 학교나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나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은둔형 외톨이나 니트족이 된다는 인식이다. 즉 니트족의 원인을 ‘인간관계의 정체로 인해 생긴 개인의 문제나 병’처럼 본다는 것이다. 실제 언론보도는 그런 관점이 많다(우리나라 역시 그렇다)

우선 이것은 오해다. 일이나 배우는 것에서 희망이나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자동적으로 운둔형 외톨이나 니트족 문제는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나 일에서 희망이나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다소 싫은 일이나 싫은 사람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이나 일, 공부에 희망이 없으면 사람은 사소한 인간관계의 문제에 신경질적이 되어 필요 이상으로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리고 결국 학교나 직장에 다닐 수 없게 된다. 거듭말하지만 유럽에서는 1980년대부터 청년층 실업문제를 개인의 책임이 아닌 고용문제로 취급해왔다. 고용문제라는 것은 사회구조 변화에 의해 생겨난 사회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해결방안을 모색해왔다는 것이다. 즉 프리터족이나 니트족 문제를 젊은이의 개인책임 또는 가족책임으로 파악해온 일본이야말로 특수한 나라라고 저자는 말한다(그 특수한 나라에 한국도 추가요). 

 

 

출생률 저하, 만혼화, 패러사이트 싱글의 급증, 니트족

저자는 거품경제가 붕괴된 후의 일본 사회의 실정이 니트족 문제를 일으키는 모든 문제의 배경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오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기업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정사원을 계약직과 파견직 사원으로 전환시켰다. 사원 수 감소로 업무량이 급증하고 야근이 일상이 되었으며 자녀교육은 어머니와 아이 둘만의 일이 되어벼렸다.

만혼과 패러사이트 싱글과 출생률 저하는 결코 개별적인 일이 아니라 상호연관되어 다 같이 진행된 문제다. 버블 붕괴 속에 자라난 아이는 사회에 나가 일을 하는 것은 곧 밤낮없이 가족을 위해 오로지 인내하는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아버지가 즐겁게 일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자신의 상황을 보면 제대로 취업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학생의 연장선상에서 아르바이트로 용돈 정도는 벌면서 사회인으로 일하는 것은 뒤로 미루게 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불가피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취업을 기피하게 되어 결국 니트족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만혼, 니트족, 출생률 저하 모든 것이 일본사회가 돌아가는 방법, 인생을 즐기는 방법의 부재에 기인하는 사회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십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여전히 히키코모리와 니트족 문제를 당면하고 있다. 그는 또 어떻게 원인을 분석하고 있을 지 너무 궁금해진다..

 

 

자녀에게 회사원 인생의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아버지들

아이가 니트족이 되면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무력해진다. 저자가 상담한 한 가정의 아버지는 보험회사를 조기 퇴직했다. 퇴직 전 부하직원들을 해고시키는 등 안좋은 일을 겪었으나 아이들을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참았다. 퇴직까지도 갈팡질팡 불안함을 견뎌야 하는 60세 전후 아버지들이,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한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인생 선배로서 아버지는 샐러리맨 인생의 장단점, 일에 대한 사고방식, 사회에서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아이에게 말해주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좋은 방법일지 모른다. 저자는 퇴직 전까지의 10년을 돌이키면 자녀의 직장인 인생 또한 상당히 혹독할 것이기에 자녀의 대학 졸업 이후로는 아무 말을 해줄 수 없다고 얘기한다. 말해주고 싶어도 말할 만한 모델을 아버지 자신이 갖고 있질 못하며 그것이 대부분 아버지들이 놓인 현실이다(과거 종신고용 문화가 뿌리깊었던 일본 상황이기에 우리나라와는 좀 차이가 있긴 하다 한국의 경우 손에 꼽는 상위 대기업을 제외하고 한 직장에 10년 이상 근속하는 직장인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매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자신들에게도 취업은 혹독한 현실이다. 아버지처럼 생애를 회사에 다 바치고 살아도 결국 마지막엔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다. 자신 또한 좋아하는 일이나 흥미를 생각할 여유 없이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진학을 하고 공부해왔다. 때문에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게 공중에 떠 있는 젊은이들이 바로 니트족인 것이다. 그렇게 공중에 떠 있는 아버지들이 니트족 아이들 가진 아버지들이다.

 

 

표면적으로만 친한 친구같은 가스라이팅을 하는 어머니들

일본에서는 하라주쿠, 오모테산도 등 시내중심가에 ‘친구 모녀’ 관계의 딸과 어머니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요새는 어머니들도 젊기 때문에 모녀가 실제 연령만큼 차이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친구’와는 의미가 좀 다르다. 

친구 모녀라 불리는 어머니는 표면적으로만 이해심 많은 모녀관계를 가장하는 경향이 있다. 함께 가족여행을 하거나 기분이 좋으면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같은 말을 하거나 한다. 그런 어머니가 다양한 인생관을 갖고 있냐 하면, 그렇지 않다. 일정한 직업적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 역시 보통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학교, 좋은 회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평소 자녀에게 ‘쿨하고 편안한 애티튜드’를 가진 주변의 엄마들이 속속 떠오를 것이다..)

그렇기에 딸이 조금이라도 ‘좋은 학교, 좋은 회사’라인에서 벗어나려 하면 전력을 다해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하거나 그저 허둥대기만 한다. 진심으로 친구 같은 모녀 관계를 원한다면 아이의 장래에 대한 지식을 아주 폭넓게 갖고 있어야 한다. 또한 수많은 인생의 선택권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아무리 친구모녀라 해도 아이가 등교를 거부하거나 취업하지 않고 니트족이 되는 순간 태도가 싹 바뀔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지금까지는 부모를 거스른 적이 없던 아이가 은둔형이나 니트족이 되면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친구 가면’을 벗고 부모라는 권력자로서 미친 듯이 화를 내거나, 아이의 변신에 허둥대거나 하는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어떤 타입이든 아이의 문제해결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가족제도의 권력적이고 딱딱한 가족 스타일은 과거의 것이 되었고 현대의 핵가족은 표면적으로는 좀 더 평등하고 온화하다. 특히 친구모녀는 ‘언뜻 보기에는’ 서로 이해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실상 부모 자식의 기본 구조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있다.

 

 

 

 

은퇴한 노년 직장인들의 ‘사회적응력’

1940년대 출생인 저자는 명문대를 나왔음에도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고, 니트족의 세월도 보내는 등 ‘평균적이지 않은’ 삶을 보내온 셈이다. 저자의 동창들은 도쿄나 오사카의 대기업에 취직해 평균 연봉 1000만 엔을 받으며 대도시 외곽에 집을 갖고 두 아이를 기르는 출세의 삶을 살았다. 고도 성장 시대이자 종신 고용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한 삶이었다. 

전후시대 대가족과 가부장제도에 환멸을 느낀 그들은 부모 자식이 평등한 뉴 패밀리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모순된 현상이 일어났다. 일본에서 1948년을 전후로 태어난 세(우리나라로는 베이비부머 세대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가 가족 내에 은둔형 외톨이나 니트족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또는 패러사이트 싱글인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즉 은둔형 외톨이나 니트족, 패러사이트 싱글을 비판하는 사람도, 그러한 젊은이를 가족으로 안고 있는 사람도, 모두 비슷한 세대의 부모들인 것이다. 

한편 이들 중 아버지의 대부분은 정년이 될 깨까지 회사 조직 속에서만 살아왔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동창생 중 60세가 넘어 차례로 정년퇴직 후 제2의 인생에 들어갔지만 자기 나름 삶의 보람을 갖고 즐겁게 살고 있는 사람은 10명 중 1명 정도라고 한다. 정년이 된 또래 남성들은 모두 망연자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후세대는 회사조직 안에서 언제나 상부명령에 따라 움직여 왔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능력이나 개인의 사회적응력 없이도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었다. 기업에서는 부장이 과장에게, 과장이 대리에게 “이것 좀 해”라고 말하면 곧바로 누군가 처리해준다. 회사조직이라는 것은 실제 사원 개개인의 사회적응력 없이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는 세계이다(우리나라도 그런가? MZ운운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사내정치가 중요하고, 약육강식의 발빠른 사회적응력도 매우 중요해보인다..) 그런 ‘조직의 행동습성’이 오랜 기간 몸에 밴 사람이 정년퇴직 후 지역사회에 돌아가도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제대로 할 수 있을 리 없다. 다시 말하자면 정년퇴직한 샐러리맨이나 니트족 젊은이들이나 모두 사회 적응력이 없다는 점에서는 의외로 그리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저자와 우리 아버지는 25살 차이가 나고 직장인이 아닌 자영업자이지만, 개인의 상황은 거의 비슷해보인다. 우리나라의 첫번째 베이비부머(1955년~1963년 태생)의 첫 은퇴 후 삶 역시 녹록치 않아보인다. 얼마전 동창들과의 여행 후 부쩍 수심에 가득해 서울로 돌아온 아빠로부터 동창 친구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해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생각처럼 제2의 인생을 즐길 만한 경제적 여유도, 신체적 건강도 없는 그야말로 괴로운 노년의 일상인 것이다. 인생은 60부터 라는 말은 모두 입에 발린 말이었던 걸까? 어쩐지 그날 뒤 아빠는 당뇨로 좋지 않은 몸으로 평소보다 더 과로를 하고 좀처럼 제대로 쉬지를 않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일의 보람보다 돈을 중시하는 부모

저자가 니트족 자녀를 둔 부모들과 대화를 나누며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그 부모들에게 ‘일에 대한 보람보다 돈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혼자 살든 결혼해서 가족을 부양하든 돈은 필요하다. 그러나 니트족 부모들은 ‘일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그 이외의 보상보다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은 거품경제 붕괴 이전에는 은행에 취직하면 고수입의 안정적 직업으로 여겨져 주변의 많은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거품경제 붕괴 후에는 은행의 각종 악행이 보도되면서 은행 취업에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의 직업관은 겨우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니트족 또는 히키고모리들이 직업훈련 후 그들 나름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일 시작해도, 부모는 고작 월 20만엔(약200만원) 수입으로는 가족도 먹여살릴 수 없으니 더 안정적인 일을 찾길 원한다. 일에 대한 성취감의 관점에서 일을 선택한 자식이, 단지 집과 자동차만을 위해(물욕과 단순확장) 일해온 자신보다도 ‘인간으로서 성실’할지도 모른다는 발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자식이 지금껏 일과 사회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인식이 부모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니트족을 비판하는 어른들 자신도 자신들의 회사가 대졸 채용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과 대졸 취업률이 몇 년간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 듣고 알고있다. 그럼에도 자신이 취직할 때 당시의 감각만으로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며 자신의 아이들과 니트족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 교육의 결과는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예나 지금이나 맞벌이 부부의 아이라도 잘 자라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어머니가 전업주부라도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도 있다. 여기에는 명확한 원인과 결과 같은 것은 없다.

일본 내에서 학교폭력이 심각했던 때, 미디어는 아이의 낮은 성적에서 나오는 열등감 또는 부모 불화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했다. 흉악한 소년 범죄의 범인들이 성적이 좋은 우등생으로 밝혀지자 화살은 게임 중독 또는 학구열 높은 부모에게 향했다. 한마디로 매우 손쉽고도 편리한 범인추적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아침에도 최근 묻지마 살인 범죄자 명단과 그들이 ‘은둔형 외톨이’였다고 원인을 꼽는 기사들이 나왔다 댓글창은 예상외로 은둔형 외톨이와 범죄자와의 상관성이 없다며 기자의 무논리를 반박하는 내용들로 가득했다(오히려 일반인보다 낮은 수준으로 밝혀졌다고도 한다) 진짜 은둔형 외톨이는 사람을 때리기는 커녕 가족을 포함하여 사람 마주치는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하긴 그 가해자들은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물색하는 동시에 매우 계획적으로 범죄방법을 연구해온, 일상의 다른 부분에서도 범죄자적 성향이 발견되는 그냥 범죄자였을 뿐이다)

물론 심각한 학대를 받은 경우라면 자녀 교육의 결과가 우연이라는 말이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까운 내 친척들만 봐도 오히려 알코올중독과 폭력을 일삼는 삼촌이나 끝없는 부부싸움 속에 자라난 사촌들이 도리어 자립성(빨리 독립해 집안을 벗어나려는 욕구로 인해)과 경제적 능력이 더 발달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물론 정서적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자기 앞가림’을 이른 나이에 더 빠릿빠릿하게 하고 살아나가는 것이다(우리집 역시 충분히 비참한 집안이라고 생각했으나 객관적인 형편상 그들과 감히 같은 수준으로 섞일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패자부활전을 재촉하는 부모

본래 우등생은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 쉽다. 공부는 방에 틀어박혀 혼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가장 풍부한 10대에 입시 경쟁의 한복판에 놓여져 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홀로 공부를 한다.  그 결과 성적이 좋으면 부모는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한다 친구와 그리 교제가 많지 않더라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 자체는 성적과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나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부모는 가능한 긴급조치 후 새로운 학교나 회사에 보내려 리턴매치, 즉 패자부활전을 재촉한다. 아이의 성적이 우수하면 할수록 더욱 그렇다.

부모에게 다른 선택사항이 없어 다시 경쟁의 연장선상으로 아이를 등 떠밀면, 아이는 또다시 좌절을 맛보며 더 깊은 절망으로 빠져든다. 부모는 좀더 느긋한 방법을 생각해야하는데 하루 빨리 패자부활전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해 한다. 아이 역시 현실적으로는 ‘좋은 학교, 좋은 회사’ 노선에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머리만은 부모와 같은 사고방식이어서 부모 자식이 함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노동의 의미 변화와 미세 노동의 증가

니트족 증가가 본질적으로 다뤄지는 데에는 '노동의 의미'가 포함된다. 일본의 전후세대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외제차와 집 등을 손에 넣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하는 등 여러 물욕을 충족시켜 왔다. 일의 의미나 노동의 의미는 상대적으로 경시되었다. 그리고 그 자녀세대는 물욕 중심의 부모가 대학까지 보내준 것에 감사하면서도 물욕을 우선시 하는 부모 삶의 방식에는 비판적이다. 니트족들은 부모의 물욕이나 일벌레같은 태도를 못마땅해하기도 한다.  

코로나 전후로 각국의 경제상황이 훨씬 더 급변했기 때문에 아마 저자가 이 책을 쓰던 시대만해도 '플랫폼 노동'이라는 개념은 활발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된다. 그러나 당시에도 이미 거의 로봇 수준의 아주 단순하고 반복된 파트타임 노동들이 젊은 청년들의 인력의 질을 발목 붙잡고 있었다. 은둔형 외톨이나 니트족 경우 타인과의 의사소통이나 공동작업에 서툰 경우가 많으며 때문에 아르바이트도 지속적으로 할 수 없다. 그런 중에 사회적응력도 없이 하루 종일 무나 당근만 자르는 그런 류의 노동인력을 요구한는 회사가 늘었고 '파트 노동력'의 사회로 변화하게 되었다. 저임금에 성실한 노동력을 착취하듯 고용하는 사회움직임은 현실이 되었다. 일을  하는 사람을 언제든 교환 가능한 부품으로 여기는 행태는 모습만 바뀌었지 지금도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당시 일본 현실이나 물론 지금은 이것이 부당하기 보다는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된 것 처럼 보인다)

 

 

버블이 꺼진 후 또 다른 버블을 꿈꾼 댓가

저자가 느끼기에 일본 사회는 버블 침체 후 처음부터 다시 일어설 기회가 있었음에도 또 한번의 고도 경제 성장 노선을 꾀하려 했기에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 결과 승리자, 패배자라는 표현이 너무 진부한 메마른 사회가 되었고(우리나라에서는 헬조선, 흙수저를 이어 '이생망'이 등장했었다)니트족 역시 그들 자신도 낙오자, 패배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심지어 경제지상주의를 이끈 기성세대 일부는 니트족이 성장률을 몇 퍼센트 떨어뜨렸다는 식으로 비난한다. 모든 것이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관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일본은 아닌 줄 알았는데, 어찌보면 우리나라보다 더 심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경제 순위 1,2위를 짚었던 나라가 한순간 주르륵 미끄러졌는데 부작용이나 후유증도 우리나라의 성장통보다 심하면 더 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라고 양식있는 기성세대들은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회사 유지를 위해 사회 부정조차 눈감아 버리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대의견을 그들은 자각 하지못하지만 니트족이라는 존재는 그것을 실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차별, 인종차별, 성차별 그리고 이제는 노동차별이 사라질 시대

니트족 문제는 대도시보다 지방쪽이 훨씬 더 심각하다. 저자는 전국 강연으로 지방을 자주 갔었기에 일본 내 지방의 니트족 현상을 더 실감할 수 있었는데 니트족을 향한 비난, 이웃들의 눈초리 모두 지방 쪽이 훨씬 혹독함을 느껴야 했다. 

저자는 니트족 문제=게으르며 부모에게 기대는 젊은이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앞으로 니트족이 살아가기 쉬운, 인간에게 좀 더 친절한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말한다.

일 그 자체에서 기쁨을 얻고 싶다는 욕망은 어쩌면 니트족이 일반인에 비해 훨씬 강할 지 모른다. 그리고 그 일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철부지같은 수준이 아니라 '직업관'의 차이일 뿐이다. 

 

갑자기 든 생각은, 과거 종교의 신본주의에 의한 인간의 자주성 말살과 학대, 또 그만큼 오래된 여성 차별이나 인종차별이 그랬듯 이제는 '노동의 카테고리'에서 고정관념과 차별이 사라져야 하는 차례가 온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미 AI나 여러 디지털상용화로 조만간 제2의 물결에서 제3의 물결로 변화될 때의 격차만큼이나 급격하게 인간의 노동 미래가 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지금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적게 일하고 쉬는 것을 떠나 노동 자체에 대한 오랜 편견과 굳은 사고방식을 전환하는 것일지 모른다

 

 

연봉 1억원과 연봉 3천만원의 삶이 똑같이 '존중'받는 사회

약 이십년 전 쓴 책에서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말을 반납하며 가족도 돌보지 않고 연봉 천만 엔, 이천만 엔을 목표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과, 야근은 적당히 하고 주말엔 확실히 쉬며 연봉 500만엔, 300만엔을 버는 사람의 생활방식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 '존중'이라는 지점이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당연히 각자에겐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라고 여길테지만 막상 똑같이 존중받고 있는가 생각했을 때 우리 또한 과거 일본과 같은 지대에 머물러 있는 상태는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연봉 천만 엔의 인생은 승리자로 찬사받고 연봉 삼백 만 엔의 인생은 바보취급 당하는 사회에(우리 자신도 모르게 이런 인식수준 정도는 이미 벗어난 것으로 볼 때, 다양성 선진국 대열에 살포시 들어선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트족 갱생보다도 우선적으로 '니트족의 존재에 대해 올바로 인식한 후 비로소 니트족이 살아가기 쉬운 사회로 변화시켜 나가야'한다고 저자는 제의한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니트족에 대한 시선이 일본만큼 일상적이어질 때가 과연 올까?).

 

저자는 니트족 뿐만 아니라 구조조정을 당한 중년, 고령층이나 출산으로경력단절된 여성에게있어서도 이런 직업관이 더 반가울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어찌보면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러한 인식 수준을 따라잡았는데 코로나로 인한 실직, 파업 등으로 인해 실용적 생존이 우선시 되면서 적게 벌고 아끼며 살자는 주의가 더는 이상해보이지 않게 된 것 같다. 취업이 힘든 20대 청년층이 거지방을 만들며 극도로 돈을 아끼는 것, 퇴직 후 정기적 벌이가 없는 노년층이 푼돈 알바에 뛰어드는 것 등 부수입 수준의 벌이에익숙해진 일상이 전보다 널리 확산되게 된 것같다. N잡러 직장인은 물론 가정주부의 미시소득도 마찬가지다. 

 

신기생주의를 추천함

책의 말미 부분에서 다룬 '신 기생주의'를 보고 살짝 소름이 돋았다. 저자는 앞으로 일본에서 부모의 연금과 아들 딸의 얼마 안되는 월급으로 손자까지 함께 기르는 '새로운 기생 주의'가 확산될 거라고 예견했는데, 일본은 둘째치고 정확히 현재 한국의 '기혼 캥거루족'유형이 바로 그런 신 기생주의의 표본인 것이다. 늙은 부모의 돈과 노동력을 이용한다는 면에서 어찌보면 기생이 맞으나 우리에겐 이미 현실적 필요에 의해 보편화되고 가족주의로 유두리있게 포장되다보니 니트족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비난받진 않는 것 같다. 작가는 지방 어린이집 선생님의 한탄을 옮겼는데 이 또한 이십년 채 안되어 우리나라의 현실이 되었다. "아이를 위해 집을 산다고 부모가 열심히 일만 하고, 정작 중요한 아이는 잘 살피지 못하고 어린이집에만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작가는 정년퇴직한 60대와 니트족의 교류가 좋은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작가의 상상력은 우리 입장에서보면 조금 순수하게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지만 오히려 이것이 더 현실적인 안목일지 모른다. 한마디로 니트족은 '크게 잘나거나 특별할 것 없는 한 곳에서 정년까지 근무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강한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눔으로써 그 환상을 기분좋게 깨어버리고 깨끗이 없애기를 바라고 있다. "뭐야 우리랑 별로 다른 게 없잖아. 이런 사람들이 큰 기업이나 은행에서 40년 가까이 일했단 말이야?" 존중을 버리고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안심하게 된다는 관점이다. 

'하느님 이외에 인간은 모두 장애인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늙거나 젊거나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는 저자는 효율지상주의만 일관했던 일본사회가 올바르고 재미가 있는 방향으로 완화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 수가 적다해도 일본사회에는 이미 이십년 전 이런 노년층이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언제 이런 어른들이 생길까? 내 기준에서 기성세대와 그나마 가장 구분되는 어른층은 유재석이다(갑자기?ㅎ)물론 너무 성공한 일인자이긴 하지만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가진 '덜꼰대'를 찾기 어렵다는(유재석보다 더 어린 사람들이 더 꼰대..)점에서 자기 시대의 척도로 남의 인생에 왈가왈부하거나 요구하지 않는 어른, 노인으로 늙어가야겠다는 걸 니트족 분석책을 보면서 다시금 상기해본다.

 

[사회현상 용어]

패러사이트 싱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전적 의존하면서 사는 인간을 가리키는 1980년대 일본의 신조어. 보통 30대 40대가 되어서도 혹은 그 이상 나이에도 독립하지 않고, 가정도, 직업도 없이 아르바이트조차 거의 하지 않는 이들이다. 그러다가 부모에게 의존하는 인간군상 전체를 가리키는 단어로 점차 변화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히키코모리와는 비슷하면서도 약간 의미가 다르다. 히키코모리 가 단순히 방구석에 틀어박힌 인간이라면 패러사이트 싱글은 집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사회생활에 참여는 하기 때문이다. 

캥거루족: 어른이 된 후, 경제적인 어려움 또는 다른 이유로 인해 부모님과 계속 사는 젊은 성인들을 지칭하는 사회적 용어로, 캥거루가 오랜 기간 동안 주머니에 새끼를 넣고 다니는 데서 유래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높은 청년 실업률, 생활비(특히 주택 가격) 상승, 부모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태도 변화 등의 요인으로 인해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더욱 흔해진 것이 되었다. 이 용어는 일본에서 처음 소개된 후 한국으로 전해졌다(이것만큼은 한국산인줄 알았더니..). 이는 서구 사회에서 한동안 집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청년들을 일컫는 '부메랑 세대'라는 용어와 유사(->리터루족이라는 말인 듯)하며, 가족집에서 잠시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젊은 성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리터루족: 돌아가다(return)'와 '캥거루(kangaroo)족'의 합성 신조어다. 결혼 후 독립했다가 높은 전셋값 등의 주택문제와 육아문제로 인해 부모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미국과 같이 성년이 되면 부모를 떠나 독립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문화에서도 경기침체로 인해 최근 이러한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저자의 세대와 우리나라 세대 비교]

전후세대인 저자는 1943년 생으로, 우리나라로치면 베이비붐 세대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대중적으로 가장 널린 알려진 베이비붐 세대는 보통 1955년~1963년 태생으로 정확히 내 부모가 이 세대(1차 베이비붐 세대)다. 이들의 출생 시기는 한국 전쟁 이후 경제가 회복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시기로, 이들은 한국의 빠른 산업화와 경제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부모에게 영원히 미안한 이유..아무리 밥벌이 노동이 힘들다해도 그들의 근면 수준을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
베이비부머 세대는 그들이 활발하게 경제 활동을 했던 1980년대와 1990년대 당시에 한국 경제의 큰 변화를 겼어내었다. 그들은 교육열이 높았고, 자녀들의 대학 진학률이 크게 증가하였으며, 여성의 사회 진출도 확대되었다.
그러나 베이비부머 세대는 현재 은퇴를 앞두거나 이미 은퇴한 상태로, 그들의 고령화는 한국 사회에 많은 도전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은퇴 후 생활비 지원과 건강 관리 등에 대한 문제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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