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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한 수줍음쟁이의 세상 정복기>사회공포증 극복하기/ 이제는 막 살고싶은 나를 위한 응원의 책/ 소심이들을 위한 성장 독려 지침서

by 돌냥 2023.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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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음쟁이=숫기가 없고 부끄러움과 불안과 스트레스를 자주 느끼는 사람

책의 제목을 직역하면 ‘숨기는 건 통하지 않는다’이다(여러 번역기 돌려가며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찾음)

이 책의 주 고객층은 ‘수줍음쟁이’이다 우리나라 말에서의 ‘수줍어하다(동사)’라는 뜻은 ‘수줍은 태도나 기색을 하다’라고 써있다 나는 ‘수줍-‘자체가 품은 뜻을 알고 싶었을 뿐인데 사전의 풀이 또한 그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서 설명했기에 호기심이 해결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수줍음(명사)’을 써볼까 이런, ‘수줍은 느낌이나 마음’이 나온다 아직도 수줍다는 말의 의미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수줍은(형용사)’이라는 단어로 찾아볼까 오, 드디어 나왔다

 

‘숫기가 없어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어렵거나 부끄럽다’

 

그래, 이거지. 그렇다면 나는 수줍음쟁이가 맞다.

한동안 좀처럼 쓴 적 없던 이 단어가 주는 생소함 때문인가 내용상 나에게 많은 부분이 해당됨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 케이스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아닌 척’을 했는데(나는 그런 여성여성한 쑥스러움쟁이가 아니야.. 하고 엉뚱한 착각을) 사전풀이를 하고나서야 내 증상이 맞다는 걸 인정하게 되다니. 오히려 뭔가 더 후련해졌다

 

 

수줍음쟁이는 단순한 성향이 아니다 성장에 ‘독’이 된다

사실 오랫동안 나의 이러한 성향에 대해서 무시하고 살았다

수줍어하다,라는 다소 귀여운 여지가 느껴지는 표현보다는 그냥 폐쇄적, 염세적, 초민감사람 HSP(Highly Sensitive Person) 이 정도가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어림 짐작으로 표현하는 단어들이었다

 

성년이 될 때까지 수줍음쟁이의 극한 상태로 살아온 저자는 또 다른 수줍음쟁이인 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 단호하게 말한다 ‘손해’라는 것이다 그래, 그것이야말로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늘 쭈그러든 채 삶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심리 자체는 확실히 많은 가능성들을 스스로 차단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그것을 힘든 현실을 외면하는 면죄부로 사용한 적 없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행한 것은 그렇기 때문에 타인보다 힘든 인생을 2,3배 공연히 더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하루에도 수시로 받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은 인성이 아닌 ‘사회공포증’만 손보면 되는 것이니 안심하라고 말한다 아니 그런데, 사회공포증이라고..?

[참고삼아 알아봄]

사회 공포증 [social phobia]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거나 바보스러워 보일 것 같은 사회 불안을 경험한 후 다양한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기능이 저하되는 정신과적 질환.

- 친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거나 타인으로부터 심사받을 수 있는 사회적인 상황 또는 일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현저하고 지속적인 공포가 있다. 개인은 창피를 당하거나 난처해질 만한 행동을 하는 것을 불안해하는 증상을 보이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 두려워하는 사회 상황에 노출되면 거의 예외 없이 불안반응을 일으키며 공황발작이 상황에 의해 반드시 나타나거나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경우도 있다.
- 공포가 과도하고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다.
- 두려워하는 상황이나 일을 회피하거나, 심한 불안이나 고통을 느끼며 인내한다.
- 이로 인해 정상적인 일상 생활, 직업적 기능, 사회적 활동이나 관계에 현저한 방해를 받거나 공포증이 있는 것에 대해 현저한 불편감이 있다.
- 18세 미만인 경우에는 기간이 적어도 6개월 이상이어야 한다.
- 다른 불안장애, 성격장애, 그리고 발달장애로 인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 다른 병(신체질환 또는 정신질환)이 있을 때에는 그것과 관련이 없어야 한다.

 

 

 

중요한 건 ‘부여받은 카드’로 어떤 게임을 할 것인가

음.. 내 경우는 공황발작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당된다

덴쟝. 사회공포증이 맞았다 지난 내 솔직한 상태들을 돌이켜보면 말이다

 

지금은 그나마 생존 노동이라는 삶의 파도에 민감도가 많이 침식되어서 전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지나치게 전전긍긍하고 살아갔던 것 같다 어떤 상황에든 ‘이상하게’ ‘낙오되어’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고, 밖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면 열에 아홉은 ‘못 본 척’했으며 딱히 의미도 이유도 없는 스몰토크는 인생에 가장 고역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어떤 생각에 꽂히면 쉽게 떨쳐내지못하고(특히 불쾌함을 당한 일) 그 상황을 두번, 세번, 네번 다시 재현해보며 만약 나였다하더라도 나는 죽어도 안 그랬을 것이라는 결론을 반복하며 분노에너지를 한참 불태우기도 한다

 

유전적요인, 불우한 유년기와 트라우마(사주로도 증명된 아주 불행한 내 유년기..)여러 환경에서 남들보다 열악한 조건, 비참한 느낌 이런 것들이 종종 나를 포함한 많은 수줍음쟁이들의 평생 변명이 되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우리 자신이 알고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을 낱낱이 파헤친다해서 앞날은 달라지지 않으며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걸. 그래서 나도 ‘내 구미에 맞는 경험들’을 찾아가며 나를 조금씩 바꿔가야 겠다는 쪽으로, 결국은 설득 당했다

 

미디어에 나오고 책도 낼 만큼 외향성이 왕성해보이는 현재의 저자는 치과나 미용실 예약 하는 것조차 너무나 힘들고 동료들이 피자를 먹으러 가자고 하는 것도 마다할 만큼 ‘불확실한 요소들에 대한 불안함’이 컸던 사람이다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니다, 했지만 해당되는 부분이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나도 동일하다

마트에서 물건 찾는 것을 질문하는 것을 어려워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지만 나의 수줍음 위험도가 그들보다 나은 것은 결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나는 일상생활에서는 수줍음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많은 부분들을 갖고있으면서도 삶의 퀄리티를 좌우하는 부분들에서 결정적으로 결코 극복하지 못하는(특히 일에 있어서의 지속적 관계성), 나 스스로 느끼기에 크게 답답할 만큼의 '두려움'이 있다는 걸 자주 느끼기 때문이다

 

 

 

안전지대가 사람마다 다르다 보니 수줍음을 간단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모두가 이 개념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다. 내 경우 수줍음은 내가 주변 세계에 다가가기 위해 넘어야 하는 사회적 불안의 집합체다(내가 바로 그렇다..!)수줍음은 실제로 여러가지 두려움을 아우르는 상위개념이다

 

 

외향적인 사람들도 수줍음을 탄다

수줍음과 내향성은 절대 같지 않다. 사람들은 이 두 속성을 한통속으로 묶는 경향이 있다. 수줍음은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거나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깊은 두려움과 관계되기에 고통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수줍음이 타인과 관련한 소심하고 불안한 태도라면, 내향성은 기질로서 내적 두려움과는 별 관계가 없다(내향적인 사람은 혼자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외향적인 사람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수줍음을 극복해도 내향성은 남는다 인간의 실존적인 필요이기 때문이다 외향성과 내향성은 과도한 사회적 불안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마느냐를 결정하지 않는다

 

 

완벽주의는 부디, 쓰레기통에

예상은 했지만 수줍은 사람들 중에는 통제광이거나 완벽주의자들이 많다고 한다 안전과 통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완벽해지려는 경향을 보인다. 서툰 모습을 보였다가 상처받을까 두려워 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의 고질적인 병이다

우리의 잠재의식은 매우 영리해서, 구체적으로 기억이 남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세계상을 바꾼 일이 언제 일어났는지, 누군가 언제 자신에게 실망하는 눈빛을 보였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 실망이 앞으로 반복되지 않도록 탁월한 보호 메커니즘을 구축하는데 우리가 충분히 노력만 한다면,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해내면,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고 멋진 모습으로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며 완벽을 추구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정말 오산이다! 나는 완벽주의가 실망을 줄여주기는 커녕 삶을 지옥으로 만든 경험을 반복해왔다. 완벽주의로 인한 끊임없는 자기의심은 마지막 신경까지 갉아먹었다. 이 글이 이대로 괜찮을까? 오늘 내 모습이 어떻지? 최상이 아니지 않아? 끊임없이 자기 비판에 얽매이는 것은 정말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완벽주의 다음으로 내가 두손 두발 들고 시인한 것이 ‘흑백논리’다 엄마로부터 또는 친구로부터 생각이 표현이 극단적이라는 얘기도 종종 들었다 내겐 그것이 '객관'이었는데 그들에겐 어딘가 한참 치우쳐진 '극단'이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은 기분도 0 아니면 100의 것으로 만든다 이십대의 극심한 감정기복은 이제 나이가 들어 거의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모 아니면 도, 처럼 나 자신을 대하는 습관만은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저자는 어릴 때는 경험 부족으로 인해 어느 정도 흑백사고를 하게되지만, 자존감 자체가 낮다면 이런 흑백논리에 영원히 갇히게 될 수 있다고 한다 오, 그건 절대 안돼..!!!

 

내 감정 세계에는 두 가지 상태밖에 없었다흑 아니면 백, 좋은 것 아니면 나쁜 것. 엄청나게 좋은 것 아니면 지독하게 안 좋은 것. 중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흑백논리는 양자택일식 사고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거나, 아니면 루저다라는 식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양극단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하는 대신 무엇을 하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걸 좋아한다. 롤모델을 찾고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 대신 우리는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부유하고, 가장 매력있고, 가장 지적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아이돌이 이룬 것에 도저히 필적할 수 없음을 슬퍼한다.

 

살면서 내가 내 자신의 걸림돌이 된다는 걸 얼마나 자주 느꼈는지 모른다! 머뭇거리다 놓쳐버린 기회는 또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만 해도 정말 짜증이 난다. 수줍음은 당사자가 평생 맺었고, 맺고 있고, 맺을 모든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싫어도 할 수 없다. 시종일관 잠재된 가능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당신은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경험한 적이 없고, 다른 사람들 또한 당신이 뭘 할 수 있는지 경험한 적이 없다. 이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그리고 완전히 불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빌 클린턴을 비롯해 흥미로운 인물을 다수 코치했던 토니 로빈스 Tony Robbins는 “머릿속에 머무르면 죽는다”라고 말했다.
단순하게 들리지만 진실이 담긴 말이다. 자신의 머릿속에 갇혀 ‘내적 현실’만 신뢰하는 한, 우리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수줍은 사람들은 늘 자신의 견해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나는 멍청해/서툴러/못생겼어/이상해/능력이없어/모두가나를비웃을거야’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한다

 

 

 

안전지대를 넓혀줄 훈련들

생각이 바꾸어야 행동이 바뀌는 법이다 수줍음쟁이들에게 필요한 건 더는 가시적인 행동이 아닐지 모른다 3초만에 행동개시!같은 나오는 실행력 높이는 지침서들은 우리들에게 더 역효과를 줄 수 있다(최근 읽었던 니트족, 히키코모리에 관한 연구서에도 그런 연결되는 유사 내용이 있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이용당하기 쉽고 존중받지 못한다 잠재력을 잃고 자신의 재능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못하며 자신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렌즈”인지도 모른다

조금 뻔한 말이지만 있는 그대로 괜찮음을, 사랑받을 만하고 온전한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이것은 그저 행동방식이다 그런 행동을 하더라도 내면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내가 지난 이십년 그런 ‘표면’만 열심히 핥으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내적 현실과 외적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 하지 않는다. 그냥 눈을 가린 채 세상을 누비다가 밤이면 피곤해서 곯아떨어진다. 늙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산다. 올바른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스스로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에 인생에서 열릴 수 있었던 문들이 닫힌 채 남는다. 많은 것이 그런대로 잘 돌아가, 자신에 관해 성찰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수줍은 이들은 부탁하기 전에 이렇게 자문한다. 공연한 민폐끼치는 건 아닐까? 부탁하면 싫어하지 않을까? 부탁이 약함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는 걸 객관적으로는 알지만 소용이 없다. 그러나 당신을 도울지, 돕지 않을지는 상대의 판단에 맡겨라. 지레 안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상대에 대한 월권행위다! 상대에게 선택권을 주고 강요하지 않는다면, 상대도 기꺼이 도움을 베풀려 한다는 걸 확인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도우면 뿌듯함이 느껴진다. 당신을 도울 때도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늘 확인하는 바, 한 가지는 확실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청하지 않기에 이 모든 경험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부탁했을 때 도와주지 않는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었다.”

 

 

 

 

자신을 더 많이 인정하는 쪽으로 마인드셋하기

자신의 감정의 경로를 추적하고 감정을 정리하고 성공일기를 쓰고, 진솔한 감정을 드러내고, 미소로 스몰토크를 하고, 인터넷으로 의견을 표명하고…이런 식으로 자신을 위한 안전지대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지속적으로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 또한 특별한 것은 아니다 습관, 모닝 루틴, 자기 긍정 확언쓰기, 운동, 균형잡힌 영양 등. 어떤 부분은 전형적인 서구인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돋보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강조하고 설파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모닝 루틴은 나 역시 얼마 전에 6개월을 돌파하면서 예전과는 여러모로 달라진 삶의 질을 스스로 체험하고 있다(적어도 생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게끔 해준다 오직 나를 우쭈쭈 달래고 독려해서 행동하게끔)

생각을 바꾼 후 이러한 행동들이 따라 바뀌어질 때 이것이 나 자신을 위한 응원의 연료가 된 다는 것을, 이 특별하지 않고 뻔한 실천 조항들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행동을 통해 스스로 돕지 않으면 우주도 나를 돕지 않기 때문에 나로서는 뭐가됐든 내게 이로운 것으로 판명이 난 것들을 계속 해나가는 수 밖에 없다

 

 

친구가 우를 범하는 지점은 당신에게 무엇이 더 좋은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단순히 ‘호의에서’ 당신이 세운 새로운 계획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당신에게 용기를 주기보다 그냥 지금처럼 살라고 충고한다. “아, 됐어. 생긴 대로 살아. 지금도 잘 살고 있잖아! 그리고 우리가 있잖아.”
그들과 입씨름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방법이다. 변화를 모색하다가 저항에 부딪히면 그냥 이렇게 말하라. “시험 삼아 해보려고. 해보다가 별 효과가 없으면 그만둘게.” 공연한 말씨름을 하지 말라. 자신을 변호할 필요도 없다. 시험 삼아 해본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당신이 더 좋은 방향으로 변했음을 감지하고 친구들도 더는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잠재력이 있는지를 보여줄 기회를 우연에 맡기지 말라. 인생은 캐스팅 쇼가 아니다. 가만히 있는데 누가 와서 발견해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꿈만 꾸어선 안 된다. 성공을 원한다면 하고 싶은 일을 밀고 나가야 한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리는 건 정말 끔찍하다. 나는 나이 들어서까지 근거 없이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라는 자기의심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 싶지 않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기회를 포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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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줍음쟁이의 세상 정복기 - 소심해서 손해 보는 사람을 위한 사회생활 안내서> 원제 : Verstecken gilt nicht (2017년)

지은이 멜리나 로이어 
옮긴이 유영미
펴낸곳 심플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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