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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풍부의 추월차선

[책]<문맹>운명으로 만난 적(敵)의 언어, 문맹의 끝없는 도전을 담아낸 '언어 자서전'

by 돌냥 202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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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는 <문맹>은 도서 분류상 소설로 분류되어있고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하지만 거의 팩트에 가까운 일기와 같다. 짤막짤막 간결하게 떨어지는 문체는 ‘요즘 사람들’에게 예외 없이 먹힐 만한 군더더기 없는 세련됨을 지녔다. 읽다 보니 내용상 시대도 그렇고 아무리 번역된 문장이라해도 ‘옛날 사람’같지가 않기에 작가 프로필의 생년을 봤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는 1935년 태생이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헝가리에서 태어났지만 창작활동은 평생 프랑스어로 해온 헝가리인 소설가다. 제2차세계대전(1939~1945년) 속에 유년시절을 보냈고 1956년 조국인 헝가리를 떠나는 순간까지, 아니 그 후로도 시대와 환경의 무자비한 수레바퀴는 쉬지 않고 돌아가며 그녀를 고통과 외로움으로 몰아갔다.

 

 

 

 

이 작품은 본인이 살아온 시대에 맞추어 당시의 일상을 기록한 것으로 짧은 자서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큼직큼직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과 과거 어떤 한 순간의 단상을 그려냈기에 에세이에 더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연초 읽었던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와 같이 냉담하리라만치 덤덤한 문체가 돋보인다. 그러나 일반적인 무미건조함과 반대로 그것은 더 없이 투명한 솔직함으로 이 짧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 독자를 휘어잡는 일종의 재미가 된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뒤늦게 배운 외국어, 저자의 말에 의하면 평생 정복하지 못한 적국의 언어(프랑스어)로 하고 싶은 말보다는 할 수 있는 말들을 선택해 쓰며 말이 가난해진 것, 단순해진 것이라고 한다.

 

작가 입장에서는 한스러운 개인사와 맞물린 아픈 구석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책의 모든 문장은 마치 단순함의 제왕처럼 전에 느껴보지 못한 작가만의 언어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책 말미에 실린 옮긴이의 글에도 나와있지만 번역으로 출력된 문장도 이럴진대 번역 이전의 원문은 얼마나 더 매혹적일까, 원문을 읽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다고 하니 그 능력자들에게 느닷없이 심심한 질투를 느꼈다.(원문은 모르지만 옮긴이가 잘 옮긴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예전에 잠시 지정학-역사적으로 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는 폴란드라고 들었는데, 이 소설을 보며 헝가리 역시 한국과 유사한 비운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에게 적국은 그녀가 어쩔 수 없이 배워온 적어(敵語)의 숫자만큼 한두 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1914-1918)때 헝가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로 프랑스와 전쟁을 벌였고그 결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해체됐다이어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에 헝가리는 추축국인 독일과 이탈리아를 지원해 참전했고 연합국인 프랑스와는 이번에도 또 다시 적이 되었다전쟁 후반기 독일이 헝가리를 점령하면서 헝가리는 소비에트 연합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러다 전쟁 후반 독일이 헝가리를 점령하면서 헝가리는 소비에트 연합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러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이 터지면서 남편과 갓난 딸과 함께 스위스의 뇌샤텔로 이주하게 되고 어릴 때 떨어져야 했던 가족들과는 기약없이 더 멀어진 채로 낯선 이방땅의 외국인 노동자의 삶을 살게 된다.

 

결론적으로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시대적 풍파 속에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독일어, 오스트리아어, 러시아어, 그리고 프랑스어를 써야했다. 그녀가 마지막까지 창작 언어로 썼던 프랑스어의 경우 프랑스에 살아서도 아니고 조국 헝가리를 떠나면서 ‘전적으로 우연에 의해’ 프랑스어를 쓰는 스위스 안에 도시인 뇌샤텔-스위스에는 제네바(Geneva), 로잔(Lausanne),뇌샤텔(Neuchâtel),프리부르(Fribourg)가 프랑스어를 쓴다-에 정착했기 때문이었다. (스위스어를 썼더라면 그녀는 작가가 되지 못했을까? 그녀는 책 속에 이미 답을 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완벽한 미지의 언어와 맞서는 것, ‘평생 동안 지속될 길고 격렬한 전투’를 죽을 때까지 계속하게 된 것이다.

 

 

낯선 나라의 이방인이자 문맹으로, 또 노동자로 살았던 그녀는 동시에 글을 썼다. 시계제조공장에서 온종일 일한 후에도 집에 돌아와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재우고 글을 쓰고 잠이 들었다. 그녀는 도리어 시를 쓰는 데는 공장이 아주 좋다고 말한다. 작업이 단조롭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으며 심지어 기계가 시의 운율에 맞춰 규칙적인 리듬으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삶은 혹독했지만 그녀는 글에는 여전히 감정이 부재하다. 이방인의 질고는 단순히 언어와 노동과 음식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일을 하고 대화도 하지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삶. 짧은 문장들 사이로 그녀가 겪은 사회적, 문화적 사막이 느껴진다. 혁명기의 열광이나 역사에 참여하고 있는 기분은 사라지고 고향과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향수만 남았다. 이제 전쟁도 더는 없고 물질적으로는 약간 나아졌지만 이미 사라진 것들에 비하면 너무 비싼 값을 지불한 일상이었다. 활기도 희망도 없는 부동의 삶. 갇혀있지 않지만 갇혀있는 것과 다름없는 삶. 그녀와 함께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 새 삶의 터전을 찾아온 사람들 중 몇몇은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그녀는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 써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라도 말이다. 전쟁, 이별, 가난 속에 희망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그녀의 삶 속에서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자 구원이었던 '글'에 대한 그녀의 믿음은 어쩐지 맹목적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쓰는 것’은 그녀의 인생을 구해냈다.

스위스로 이주한 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긴긴 세월을 계속 배우고 썼고, 드디어 프랑스어로 희곡 두 편 완성했다. 그럼에도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 누구와 어디에 보내야 하는 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뇌샤텔의 한 식당에서 그녀가 쓴 첫 희곡<존과 조>과 상연된다. 그 시도와 성공은 그녀에게 계속 써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러다 다시 또 원고들이 선반 위에서 천천히 빛바래가는 시간을 보낸다.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라디오 방송작가로 경력이 시작된다. 전문 배우들의 그녀의 글을 읽고, 그녀는 진짜 저작권료를 받게 된다. 그 후 그녀는 연극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한 희곡을 쓰게 된다. 이번에도 그녀는 이 원고를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편집자를 한 명도 알지 못하는 그녀는 한 친구의 말을 듣고 파리의 3대 출판사에 자신의 원고 세 부를 보낸다.

 

 

 

 

네 살부터 글을 읽고 어린 시절 내내 활자중독증이었던 그녀는 스위스 이주 후 5년 동안 어떤 것도 읽지 못했다. 말은 했지만 읽지 못하는 ‘문맹’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학교를 다시 다녔다. 그리고 2년 후 그녀는 빅토르위고, 루소, 사르트르, 카뮈의 글과 스타인벡, 헤밍웨이의 프랑스어 번역본까지 모두 읽게 되었다.

 

외국어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그녀가 선택한 것이 아닌 상황에 의해 강제된 일, 하나의 도전이었다. 쉬이 어림잡게되는 현실적인 사항들은 그녀의 글세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어쩌면 그녀 자신만이 자신의 작품을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는 것에 확신과 신념에 차 있었다고 한다. 그런 세월을 다 보내놓고서 자신의 글에서만큼은 믿음을 잃지 않은 것이다.

 

짧은 그녀의 자전적 에세이를 보면서 그녀의 ‘쓰는 것’을 다른 행위로 대체해본다.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한다면'이라는 전제로 그녀가 자신에게 가졌던 확신과 믿음을 내 자신에게도 덧씌워본다. 나는 문맹은 아니지만 ‘삶맹’이다. 이 나이까지도 처세는 나에게 강제된 일이고 도전이다. 이번 생에 일어난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처럼 유년기와 청년기를 내내 거친 전쟁이 그녀의 선택이 아니었듯이. 스스로 남탓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 삶은 여전히 매일 어렵다. ‘모른다’. 그러나 나 역시 그녀처럼, 모른다고 말하지 않고 “한번 확인해볼게”, 이런 마음으로 살고 싶다. 지치지 않고 ‘알기를’ 시도하고 싶다. 잘 되든 안 되든 상관은 않지만 내 삶이 ‘좋은 삶’이라는 확신을 잃지 않고 믿음을 잃지 않고 말이다.

 

 

 

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모든 것을 읽는다. 신문, 교재, 벽보, 길에서 주운 종이 쪼가리, 요리 조리법, 어린이책, 인쇄된 모든 것들을.
나는 네 살이다. 전쟁이 막 시작됐다.

 

"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매일 읽기만 해."
"쟤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줄을 몰라."
"저건 소일거리 중에서도 가장 나태한 소일거리야."
"저건 게으른 거지."
그리고 특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쟤는 .....을 하는 대신에 읽기만 해."
무엇을 하는 대신에?
"더 실용적인 것은 아주 많잖아. 그렇지 않아?"

여전히 지금도, 매일 아침, 집이 비고, 모든 이웃들이 일하러 나가면 나는 다른 것을, 그러니까 청소를 하거나 어제 저녁 식사의 설거지를 하거나, 장을 보거나, 빨래를 하고 세탁물을 다리거나, 잼이나 케이크를 만드는 대신 식탁에 앉아 몇 시간동안 신문을 읽는 것에 가책을 조금 느낀다....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쓰는 대신에.

 

1950년대. 몇몇 특권을 누리는 이들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은 가난하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난하기까지 하다. 물론 기숙사는 우리를 돌봐준다. 우리에게는 먹을 것도 있고 지붕도 있지만, 음식이 정말 형편없고 부족해서 우리는 언제나 배가 고프다. 겨울에는 춥다. 학교에서 우리는 외투를 그대로 입고 있고, 15분마다 몸을 데우기 위해 체조를 하러 일어나야 한다. 공동 침실에서도 우리는 추워서 양말을 신고 자야하고, 학습실에 올라갈 때면 모포를 가져가야만 한다. ..책가방이 없어서 친구의 책가방에 내 책과 공책을 넣기 때문에 학교에 갈 때 나는 친구의 책가방을 든다. 책가방은 무겁고, 장갑이 없어서 손가락이 얼어붙는다. 내게는 연필도, 펜도, 체육 준비물도 없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빌린다. 
수선공에게 신발을 고쳐달라고 맡겨야만 할 때면 나는 그동안 신을 신발도 빌린다. 빌린 신발을 되돌려줘야 할 때에는 수선공이 신발을 고치는 사흘 동안 누워서 지낸다. 나는 기숙사 관장에게 학교에 신고 갈 여벌 신발이 없다고 말할 수가 없다. 기숙사장에게 아프다고 말하면 그녀는 내가 모범생이기 때문에 그 말을 믿어준다. 그녀는 내 이마를 짚으며 말한다.
"열이 나는 것 같구나. 적어도 38도는 되는 것 같아. 이불 잘 덮고 있으렴."

 

내가 프랑스어로 말한 지는 30년도 더 되었고, 글을 쓴 지는 20년도 더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언어를 알지 못한다. 나는 프랑스어로 말할 때 실수를 하고, 사전들의 도움을 빈번히 받아야만 프랑스어로 글을 쓸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프랑스어 또한 적의 언어라고 부른다. 내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하나 더 있는데, 이것이 가장 심각한 이유다. 이 언어가 나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의 버스 안에서 검표원은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내 옆에 앉아 나에게 말을 한다.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가 나에게 스위스가 소련인들이 여기까지 오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나를 안심시키려고 한다는 것 정도는 이해한다.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더 이상 슬퍼할 필요도 없고, 내가 지금 안전하다고 말한다. 나는 웃는다. 나는 그에게 소련인들이 무섭지 않고 만약 내가 슬프다면 그것은 오히려 지금 너무 많이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직장과 공장, 장보기, 세제, 식사 말고는 달리 생각할 것도, 할 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잠을 자고 내 나라 꿈을 조금 더 오래 꿀 수 있는 일요일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에게 말하지 못한다
어떻게 그에게,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짧은 프랑스어로, 그의 아름다운 나라(스위스)가 우리 난민들에게는 사막-사람들이 '통합'이라든지 '동화'라고 부르는 것에 다다르기 위해서 우리가 건너야만 하는 사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때까지 나는 어떤 이들은 끝끝내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잇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이 언어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운명에 의해, 우연에 의해, 상황에 의해 나에게 주어진 언어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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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원제 : L'Analphabète (2004년)


지은이 아고타 크리스토프
옮긴이 백수린
펴낸곳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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